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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魔王 #22] Crom´s Road : 자취를 찾는 여정 Part.1 (1988~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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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신해철이 홀연히 떠난 후, 그의 자취를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호기로운 도전이 절규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더군요. 그가 남긴 발자국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습니다.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고, 들을 수 있는 건 모두 다시 들어봤지만, 아예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트랙들도 적잖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도 여기서 다룬 싱글이나 앨범들은 대부분의 음원사이트들에서 들어보실 수 있는 곡들입니다. 이 글이 독자여러분들께 마왕의 발자취를 쉽게 추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01. 무한궤도 『88 MBC대학가요제』 (1988.12)
-「그대에게」 (글/곡/노래)

신해철을 음악인의 세계로 본격 진입하게 해준 기념비적 작품. 도입부의 키보드 선율이 무대를 압도하자, 방송을 지켜본 모든 이들은 무한궤도가 대상임을 직감할 수 밖에 없었다. 솔로 2집 『Myself』에는 대학가요제 수상 당시와 다른 버전으로 편곡 후 수록되어 있다. 신해철은 인터뷰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이 나인줄 모르지만 불리워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곡"이라는 애착을 표한 바 있다. 여전히 어딘가의 응원석에서 울려퍼지고 있고, 울려퍼지게 될 싱글이다.

02. 공일오비 『015B』 (1990.07)
- 「슬픈 이별」 (노래), 「난 그대만을」 (글/곡/노래)

무한궤도 해체와 더불어 신해철은 솔로 데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곧이어, 정석원이 중심이 되어 90년대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또다른 팀 015B가 데뷔한다. 해체과정이 비교적 우호적이었는지 신해철은 본작에 정석원이 만든 「슬픈 이별」을 노래하고, 자신의 곡 「난 그대만을」도 수록했다. 「난 그대만을」은 신해철의 장기인 키보드 백킹으로 리듬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짝사랑의 설레임과 밀당을 묘사한다. 신해철의 초기 뉴웨이브 댄스 스타일에 방점을 찍는 싱글이다.

03. 공일오비 『Second Episode』 (1991.05)
- 「이젠 안녕」 (참여)

공일오비의 전작에 비해 참여도는 없다시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를 즈음해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015B와의 마지막 협연작.

04. 윤종신 『처음 만날 때처럼』 (1991.05)
- 「떠나간 친구에게」 (참여)

곡 자체는 그냥 피아노를 단촐하게 두고, 윤종신과 신해철이 주고받는 방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발라드 싱글이다. 데뷔 이후 그는 타 아티스트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본 싱글은 (특수관계였던 015B를 제외하면) 피쳐링의 첫 작품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05. OST 『영화 《하얀 비요일》』 (1991.07)
- 「하얀 비요일」 (노래), 「그대 품에 다시 안기어」 (노래)

김민종과 짝을 이뤘던 작곡가인 서영진의 작품이다. 신해철이 최초로 참여한 사운드트랙 앨범이기도 하다. (영화는 당시에 범람하던 '별 의미없는' 하이틴물이다.) 노래로만 참여했기 때문에 딱히 무슨 특징이 있거나 하진 않다. 다만, 90년대 초반 자주 들리던 드럼에 기반한 리듬 패턴은 낯익다. 이 두 곡은 나중에 김민종의 데뷔 앨범에 재수록된다.

06. 김혜림 『때가 되면』 (1991.08)
- 「그 비에」 (참여)

박주연 글, 박강영 곡, 하광훈 편곡 작품이다. 하광훈이 자주 구사했던 슬로우 록 스타일의 곡으로 역시 별다른 특징은 없다.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전, 도입부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로 신해철의 보컬이 사용을 한다.

07. Split 『변진섭/신해철』 (1991.11)
- 「미소」 (신재홍 글/곡), 「커피 한 잔」 (신해철 편곡), 「째즈카페」, 「안녕」 (송재준 편곡)

변진섭과의 스플릿 앨범이다. 외부의 도움(신재홍, 송재준)을 받은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유추해보면, 아마도 당대 최고의 스타 2명을 하나의 앨범으로 묶는 전형적인 70년대식 기획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평이한 싱글들이기도 하다.) 신해철 자신도 본작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기획사가 진행한 결과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신해철 본인이 편곡한 「커피 한 잔」의 리메이크는 1991년 당시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이면서도, 신해철 본인이 전자음악을 구사할 때 즐겨 사용하는 리듬 운용의 뼈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리듬 패턴은 「1999」에서 강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08. 박영미 『쉽게 말하지만』 (1991.11)
- 「쉽게 말하지만」(글/곡), 「어디로 가야 하나」(글/곡)

《'89 강변가요제》로 데뷔한 디바형 가수 박영미의 2집 타이틀곡과 마지막곡에 참여했다. 넥스트 결성 전의 신해철은 훵키한 스타일의 팝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었고, 이는 본인의 솔로작이 아닌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하지만」의 도입부 키보드 솔로에도 드러나듯이, 신해철의 특기인 간명한 멜로디와 복잡한 리듬 구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본작은 신해철 외에도 심상원, 조규만, 엄인호, 조규찬 등 당대의 송라이터들이 참여했으나, 그만큼 히트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운 수작이다. 이 후 신해철과 박영미는 『Red Devil 2002 Official Album: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각자의 수록곡으로 조우한다.

09. 조정현 『비애』 (1992.01)
- 「사랑한 후에」 (글/곡)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로 단숨에 탑 가수의 위치로 등극한 조정현의 두번째 작품. 당시 흔히 유행하던 키보드 비중이 높은 댄스곡이다. 앞서 박영미에게 선사한 「쉽게 말하지만」에 비해서 템포가 뒤쳐지는 경향이 있는데, 박영미에 비해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가 강한 조정현을 배려한 부분이 있지 않나 짐작해본다.

10. 신해철 『91 Myself Tour』 (1992.02)

신해철 최초의 라이브 앨범. 1,2집의 히트곡과 「The Greatest Love of All」, 「Rainbow Eyes」 등 유년기의 팝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션의 면면에서 향후 넥스트의 황금기를 설계하고 만들어간 동료들인 정기송, 이동규, 김영석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11. 민해경 『Love In Me』 (1992.08)
- 「Prologue」(곡), 「서툴렀던 사랑」, 「쉽게 다가온 사랑」 (글/곡)

90년대 댄스형 디바의 한 축. 민해경의 12번째 앨범. 기타 연주에 정기송이 참여한 것을 보면, 넥스트 결성 전후에 참여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서툴렀던 사랑」의 도입부 랩(?)파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색한 기운을 제외하면 『Home』 시절의 사운드와 매우 유사하다. (더구나, 「쉽게 다가온 사랑」의 신디사이저 효과음은 「도시인」의 그것과 많은 부분에서 매우 흡사하다.) 수록곡 전체가 '사랑'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제목으로 구성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흔치않은 컨셉트 앨범의 성격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작들에서 보여준 라틴 스타일의 아우라가 강렬했었던 것이 본작의 준수한 퀄리티를 가리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듯 하다.

12. V.A 『내일은 늦으리』 (1992.11)
- 「더 늦기 전에」(글/곡), 「1999」(글/곡/노래)

이전까지의 컴필레이션 음반은 음악적 동료들이 모였거나, 누군가를 추모하거나, 아니면 특정 작곡가의 곡을 여러 가수가 취입하는 형태에 국한되었다. 본작은 아마도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특정 주제를 다룬' 옴니버스 음반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최초의 작품일 것이다. 연관검색어로 Quincy Jones 가 주도한 『We Are The World』를 떠올린다면 적절하겠다. 여기서는 「1999」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불안함을 자극하는 복잡한 백킹 리듬을 기본으로 극저음의 나레이션, 질주하는 기타와 비명에 가까운 샤우팅 등, 향후 신해철이 전자음악을 다룰 때 즐겨 구사하는 기본적인 틀거리가 집약되어 있는 역작이다. 자신도 애정을 바친 작품이었는지 『Crom's Techno Works』에서 인더스트리얼의 요소를 강화한 버전으로 재수록하기도 한다.

13. 장혜진 『Whitism』 (1993.01)
- 「열정」 (글/곡)

「키작은 하늘」의 히트에 더하여, (당시에는) 충격적인 자켓으로 알려진 장혜진의 두번째 앨범 『Whitism』의 수록곡. 다른 디바형 보컬과는 달리 록 스타일의 발성을 구사하는 장혜진과, 정통적인 하드락 포맷의 호쾌한 연주(투베이스 드럼이라니!) 를 구사하는 이 곡은 장혜진의 보컬 역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앨범을 프로듀싱한 서영진의 성향 상 앨범 전체가 록 스타일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14. 신해철 『OST:영화《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993.01)
     
가창 참여를 제외하면 신해철이 지휘한 최초의 영화음악 작품. 《진중권의 문화마당》에 출연한 신해철은 "자신은 영화음악을 맡으면 무조건 흥행에 실패하는 '마이너스의 손'이다"는 자학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OST는 영상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완결성 있는 작품의 형태로 구성되는 특징이 있다. 본작에서는 우선 엄정화의 인상적인 데뷔곡 「눈동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찬찬히 들어보면, 『Home』에서 선보인 훵큰롤 스타일과 『Myself』의 주 레시피인 전자음악이 버무려진 꽤나 좋은 앨범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설레이는 소년처럼」, 「후회란 말은 내겐 없는 것」은 『Crom's Techno Works』에서 재녹음된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는) 버전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도시인과 유사한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는 초기 버전의 「Komerican Blues」는 『World』에 수록된 헤비메탈 버전과 비교해서 들을 때 감상의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15. 이오에스 『꿈, 환상, 그리고 착각』 (1993.06)
- 디렉팅, 「각자의 길」, 「E.O.S」, 「지울 수 없는 기억」, 「꿈, 환상 그리고 착각」 (글)

한국 최초의 전문 일렉트로니카 밴드 이오에스의 데뷔작이다. 신해철이 타 팀 앨범의 전체 방향성을 기획한 첫 작품으로 무려(?) 네 곡의 가사를 직접 맡고, 코러스에도 참여하는 열정을 보였다. 본작은 당대를 풍미하던 유로 하우스를 본토에 근접하도록 구사하는데 성공했고, 이 성과를 기반으로 「각자의 길」과 「꿈, 환상 그리고 착각」은 노이즈와 2unlimited 등 전자음악을 앞세운 당시의 클럽가를 일정 부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본작의 질적인 측면은 작곡가 안윤영의 역량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지만, 신해철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인지도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에스는 차기작 「넌 남이 아냐」로 폭망했고, 김형중은 그 몇 년 후에 다시 복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16. 이동규 『The;Next Man』 (1993.12)
- 프로듀싱,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곡), 「안녕이라 말하고」 (글/곡)

초기 넥스트를 함께 했던 이동규의 솔로 데뷔반. 사실상 『Home』 당시의 멤버들이 모든 연주와 프로듀싱을 진행한 결과물로, '그냥' 넥스트의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신해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Home』과는 달리, 본작은 이동규를 포스트맨으로 삼고, 정기송이 음악의 중심을 맡는 방식을 취한다. 마치 신해철이 생전 꿈꾸었던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시초 버전에 해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다지 기교를 부리지 않는 이동규의 보컬은 신해철에 비해 좀 더 팝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데, 헤비한 리프가 돋보이는 (더불어 록과 어울리지 않는 이동규의 보컬을 확인할 수 있는) 「소시민들의 사회」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발라드 앨범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이는 본작이 얻은 낮은 평가의 원인으로 보인다. 평균 이상의 외모를 소유했던 이동규지만, 신승훈과 김건모를 상대해야 했던 1993년은 이처럼 평범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넘어서긴 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동규는 이후 넥스트를 탈퇴하고 장호일, 신성우와 함께 팝펑크 밴드 지니를 결성하여 90년대 후반까지 음악생활을 이어 나간다.

17. 전람회 『Exhibition』 (1994.05) / 18. 전람회 『Exhibition 2』 (1996.04)
- 프로듀싱, 「세상의 문앞에서」 (참여)

《93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후 대영AV와 계약한 전람회는 같은 소속사이자 대학가요제 선배인 신해철과 자연스럽게 조우한다. 신해철은 전람회의 1집과 2집을 프로듀싱했고, 독자여러분들이 기억하다시피 두 작품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의 반열에 오른다. 신해철은 전람회 2집 당시 "처음 가져온 데모를 사정없이 내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쿨한 반응을 보인 바 있고, 김동률은 신해철의 프로듀싱에 대해 "본질적인 음악성이 있으니 문제없다" 며 "보컬을 대하는 뮤지션십 같은 광범위한 내용을 전수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에 수록된 신해철과 김동률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람회의 앨범들은 일정 부분 송라이팅이 되는 아티스트와 함께 할 때 신해철의 프로듀싱이 보다 빛을 발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19. 미스터투 『Baby In New York』 (1994.09)
- 「둘만의 꿈속」 (곡)

당시 같은 소속사 (대영AV) 였던 미스터투의 두번째 앨범 수록곡. 신해철이 참여한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을 찾기 힘든 싱글 중 하나이다.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은 (더구나, 전작에서 어마어마한 히트를 경험한) 팝 듀오에게 있어, 곡에 참여하는 정도로는 어떤 방향성을 확립해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본작은 전체적으로 「하얀 겨울」의 메가 히트를 넘지는 못했고, 미스터투는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20. 넥스트 『The Return of N.EX.T Part Ⅰ:The Being Live Concert Chapter 1,2』 (1995.05)
     
『Being』 이후의 관심사는 '과연 이 곡들이 Live가 가능할 것인가'였다. 넥스트 결성 후 첫번째 라이브 앨범인 본작의 결론은, 레코딩과 거의 동일한 라이브를 구현해냈다. 라이브 연주의 엑기스를 몰아넣은 파격적인 구성을 보이는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하나만 들어도 본작의 가치는 확실하다. 전반부 키보드 솔로를 과감히 덜어내고, 곡의 전반을 두성으로 관통하는 신해철의 괴력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김세황이 선보이는 후반부의 현란한 솔로잉 연주는 1990년대 헤비메탈 연주 중 단연 백미라 하겠다.

21. 더블루 『나의 곁엔 언제나』 (1995.05)
- 「X Club」 (곡), 「나의 곁엔 언제나 : Club Remix」 (리믹스)

신해철의 음악은 메탈과 전자음악의 양대 축으로 구성할 수 있다. 참여한 두 싱글은 초창기에 비해 전자음악의 방법론에 보다 확실히 경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X Club」에서는 손지창과 김민종이 갖는 트롯 성향의 보컬 톤과 화끈하게 내달리는 신디사이저 리프가 묘하게 엇나가듯이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냥 그런 비주얼록 성향의 원곡을 뒤집은 「나의 곁엔 언제나 : Club Remix」에서 구사하는 신디사이저 메인 리프는 90년대 초반을 달리던 클럽의 곡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22. V.A 『'95 내일은 늦으리』 (1995.10)
- 「붉은 바다」(글/곡/참여), 「Maximum Overdrive」(글/곡/노래)

신해철은 3년전에 이어 다시 《내일은 늦으리》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92 내일은 늦으리》와 동일하게 테마곡은 웅장한 슬로우 록에 쉬운 멜로디를 얹어 모든 아티스트들이 약간씩의 지분을 얹을 수 있도록 설계한 반면, 자신들의 곡인 「Maximum Overdrive」에서는 정통 스래쉬 메탈을 구사한다. 이는 당시로서는 기존의 작품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퀄리티를 헤비메탈로 구현해낸 『The Return of The N.EX.T Part.2 : World』의 발표 직후 참여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정규앨범에 그대로 실렸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곡이지만 기획성 음반에 수록되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23. 넥스트 『N.EX.T IS ALIVE [The World] Tour』 (1996.02)
     
『World』는 『Being』 때보다 더욱 헤비해진 사운드로 무장한 앨범이다. 그러나,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는 이미 스튜디오 레코딩의 사운드와 연주를 무리없이 라이브로 소화한다는 것을 지난 라이브앨범에서 증명한 바 있다. 본 라이브 앨범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달리 표현하면, 지난 라이브앨범과 본작은 '원곡의 충실한 재현'에 목표를 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기실 『Being』, 『World』, 『Lazenca』는 이미 굉장히 촘촘한 (다른 말로는 과한) 사운드와 편곡이 이미 똬리를 틀고 있는지라, 라이브 앨범에서 큰 폭의 변주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포인트라면 「The Age of No God」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물놀이와 드럼 솔로의 연계플레이, 훵키와 헤비를 한 큰술씩 더 끼얹은 「Turn Off The T.V」 정도라 하겠다.

24. 봄여름가을겨울 『Banana Shake』 (1996.08)
- 「이기적이야」, 「X라고 부르지마」 (참여)

친한 형들의 작품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듯한 싱글이다. 본작에는 신해철 외에도, 이현도, 김현철 등 당대의 젊은 음악인들이 목소리를 보탰으며, 김세황도 「X라고 부르지마」에서 기타 연주를 보탰다. 앨범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과거 작품과는 달리 보다 록 성향에 가깝다.

25. 이한철 『되는 건 되는거야!』 (1996.12)
- 「안되는 건 안돼 : New Wave Mix」, 「안되는 건 안돼 : Ambient Rave Mix」 (리믹스)

신해철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인터뷰에서 이한철을 두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아티스트"라 안타까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작에서 들려주는 이한철의 리듬을 다루는 능력은 이미 당시의 다른 음악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신해철은 타이틀곡 「안되는 건 안돼!」에 수록된 2곡의 리믹스에 참여했는데, 앨범의 원래 분위기와는 일부 동떨어진 인상을 주게끔 리믹스되어 있어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한철은 《MBC 스페셜》의 인터뷰에서 "자신(이한철)의 곡으로 담긴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조언과 함께 편곡 등을 도와주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비춰보면 아마도, 이한철 본인이 작업한 것과 자신의 작업을 명백히 분리 배치하여 이한철을 온전히 보여주는 전략을 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6. 김민우 『후애』 (1997.04)
- 「I'm Sorry」 (글/곡)

김민우는 신해철과 같은 1990년에 데뷔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신해철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급 가수였다. 하지만, 「입영열차 앞에서」를 《가요톱10》 1위에 올려놓자마자 군대로 끌려가는 희대의 사건을 겪었고 - 당시 매니저였던 김광수 사장 (모두가 아는 그 분!) 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케팅이 아니었다'고 항변한 바 있다. - 이후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I'm Sorry」는 가벼운 팝록 스타일의 곡으로, 당시 신해철이 넥스트를 통해 들려주던 작품에 비해 힘을 매우 많이 뺀 결과물이다. 여전히 미성인 김민우의 보컬톤을 배려한 편곡이라 짐작된다.

27. 에메랄드캐슬 『Invitation』 (1997.04)
- 「형과 아우」 (글/참여)

팝록을 구사하는 4인조 밴드 에메랄드캐슬의 데뷔작. 김영석의 주도하에 신해철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같은 소속사이기도 하다.) 신해철은 「형과 아우」에서 가사와 더불어 목소리도 보탰다. 「발걸음」의 원히트원더로 잘 알려져 있는 밴드지만, 작품 전반이 꽤 괜찮은 록넘버로 그득하다.

28. 넥스트 『The First Fan Service:R. U. Ready?』 (1997.05)
- 「R.U.Ready?」 (글/곡/노래)

앞서의 라이브 앨범들은 '각잡고' 만든 인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본작은 'The First Fan Service'라는 부제에 걸맞게 신곡 「R.U.Ready」를 에피타이저와 디저트 삼으며, 당시 진행했던 《Tea Time with N.EX.T》 콘서트 실황을 다채로운 구성으로 버무렸다. 「R.U.Ready」는 신해철 디스코그래피 사상 가장 훵키하면서도 (불러보면) 굉장히 어려운 리듬 및 보컬 테크닉으로 구성된 싱글로, 70년대를 풍미한 훵크를 현재 넥스트의 스킬에 맞게 구현하려 한 의지가 엿보이는 곡이다. 게다가, 앨범의 근간을 이루는 라이브 트랙들은 평소 숨겨둔 그들의 음악적 잡식성을 한껏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Roy Bucanan, Banana Rama, Lips Inc., Eric Clapton, Van Halen이 한 공연에서 나올 거라 누가 생각했을까. '팬서비스'의 역할에 충실했던 작품이다.

29. V.A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1997.08)
- 「텅빈 오늘밤」 (노래)

유재하 사망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김현철의 주도하에 발표한 작품. 김현철은 베이스가 단촐하게 주도하는 원곡을 브라스가 넘실거리는 재즈록으로 맛깔나게 편곡된 바탕 위에서 맘껏 질러대는 신해철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원곡의 빈 공간을 유재하의 클린톤 보컬이 메워주는 보완의 미학이 있었다면, 이 버전은 브라스와 치고 받는 거친 신해철의 보컬을 감상하는 것이 주 포인트라 하겠다.

30. 김덕수 『김덕수 40주년 기념:미스터 장고 - 김덕수 With His Friend』 (1997.08)
- 「난장부기」 (글/곡/노래)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국악과의 연계 플레이에 대한 관심은 타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물놀이와의 협연은 「The Age of No God」에서 이미 (어색하게) 한차례 보여준 바 있다. 본작에서 또한 드럼과 사물놀이의 북, 기타의 음압 배치가 불균형하다는 인상을 준다. 사물놀이의 북이 갖는 어마어마한 울림에는 감탄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이러한 불안정함이 있었기 때문에, 녹음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몰입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31. 토이 『Present』 (1997.10)
- 「마지막 로맨티스트」 (노래)

스탠다드 팝 스타일로 편곡된 「마지막 로맨티스트」 안에서, 신해철은 자신의 또다른 장기인 크루닝을 유감없이 구사하며 로맨티스트를 구현하기 위한 메쏘드 연기를 한다. 정작 본인들도 쑥스러웠는지 말미의 샤우팅과 마지막 멘트 "됐냐?"를 굳이 밀어 넣어서 반 농담임을 강조하는 (아저씨) 센스도 보인다. 나아가 이 작품과 「텅빈 오늘 밤」을 들어보았다면 『The Songs For The One』을 '돌발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기 힘들 것이다.

32. 한상원 『Funky Station (Sub 선정 100대 명반 #081)』 (1997.11)
- 「너의 욕심 : Funk Version」 (노래)

훵크가 넘실대는 한상원의 기타연주를 뚫고 나오는 신해철의 노래는 예상 외로 합이 맞게 돌아간다. 진성과 두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신해철의 보컬과 즉흥적으로 긁어대는 한상원의 솔로가 싸움박질하는 듯한 감흥을 주는 터프한 곡이다. 한상원 또한 《Sub》와의 인터뷰에서 신해철의 보컬을 두고 "가장 잘 불렀다"는 상찬을 선사한 바 있다. 자리와 상황에 어울리는 보컬톤을 구사하는 것이야 말로 신해철의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

33. 홍경민 『Free Throw II Shot』 (1998.09)
- 「50년 후의 내모습」 (글/곡)

신해철의 싱글들은 그 자체로 독특한 완결성을 갖는 경우가 많아서 리메이크가 쉽지 않다. 그러나 홍경민의 2집 앨범에 수록된 「50년 후의 내 모습」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마치 넥스트의 전성기 시절로 되돌린 듯한 인상을 준다. 각 연주 파트들이 눈에 띄도록 설계한 김영석의 편곡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중반부의 슬랩 베이스가 가장 눈에 띈다. 역시 김영석은 베이시스트.) 홍경민은 차기작 「흔들린 우정」의 대중적 히트로 인해 한동안 댄스가수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Free Throw II Shot』은 록을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은 홍경민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김영석, 이경섭, 서영진 등 당대 팝록 스타일의 메인스트림 작곡가들이 포진해 있는 본작의 개별 트랙을 비교해서 듣는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34. 변재원 『Simply 'Byun...'』 (1998.12) / 35. 변재원 『Wind From The Sun』 (2005.04)
- 프로듀싱 및 대부분의 작사/작곡에 참여 

변재원은 넥스트 보컬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후, 신해철의 소개로 토이의 3집 수록곡 「바램」의 객원 보컬로 데뷔하여 주목을 얻었다. 그러나 직후 발표한 솔로 데뷔작과 7년 후에 발표한 2집은 모두 큰 반향을 이끌지 못했다. 중음역대의 견고한 보컬을 구사하는 변재원의 역량이 빛나는 발라드 트랙에, 신해철 특유의 리듬감 있는 트랙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뷔작의 실패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짐작컨대 동시기에 데뷔한 조성모의 압도적인 히트에 휘발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집 역시 더블유(배영준), 얼바노(김중우, 전영진) 등 뛰어난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으로 작품의 질을 확보하고, MTV Korea의 음악드라마 《재원열전》 등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동원한 홍보를 시도했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신해철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비운의 가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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