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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리액션 #3 : 트랙마다 알알이 맺힌 기억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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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항상 우리의 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 기존 수록곡이 앨범 리스트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에 나누어 배치되었는데, 이중 전반부의 「Stranger」와 「Damage」는 곡 순서가 EP에서와 반대가 되었다.

 

: 기존에 낸 두 장의 결과물은 일단 밴드가 활동을 해야 하는 만큼 곡과 밴드를 소개하는 명함처럼 낸 목적이 있다. 밴드의 사운드를 잡기 위한 레코딩 결과를 남기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고, 테스트 하는 느낌이랄까? 이번 앨범은 콘셉트와 흐름이 훨씬 명확했고, 그 맥락을 고려했기 때문에 각 곡의 적절한 위치를 고민해 지금의 배치로 결정하게 되었다.

 

: 라이브 때도 이 곡들을 많이 연주했는데, 실제로 앨범 순서대로 연주했을 때 자연스럽고 연결이 잘 되기도 했다.

 

: 또 한가지 궁금했던 게, 첫 싱글 「In The Beginning : Album ver.」에 대한 얘기다. 이번 앨범을 통해 이 곡은 4가지 버전이 존재하게 되었다. 정규앨범 타이틀이자 체인리액션이 현재까지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곡인 셈인데, 이 곡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 제일 처음, 밴드를 구상할 때 만든 노래다. 펑크록을 한 직후, 쉬는 시기에 작업했다. 그래서 장르가 더 섞여있는 느낌도 있다. 하드코어도 아니고 펑크도 아니고.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 들었을 때 접근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짧지만 기승전결이 분명해서 한 곡으로 우리 정체성을 표현하기에도 용이하고. 하지만 “이 곡을 타이틀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내부 논의가 꽤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전 버전을 들은 사람이 많지 않고, 더 다듬어지고 완성된 느낌의 사운드로 이 곡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 곡을 타이틀로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속도감도 있고.

 

: 제목과 가사, 심지어 뮤직비디오까지 '온전한 시작'보다는 '재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뮤직비디오 주인공도 죽었다가 살아난다.

 

: 어렸을 때부터 산등성이 동네에 갈 일이 많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겨울이 찾아오면, 계절이 바뀌며 차가운 입김이 확 나는 순간이 있었다. 왜인지 그때의 인상이 개인적으로 강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11~12월쯤인데, 그렇게 한 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겨울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게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정리하기 위한 시작처럼 느낀 것 같다. 그런 느낌을 곡의 주제로 정한 것이다.

 

: 「In The Beginning : Album ver.」을 타이틀로 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 외에 어떤 곡을 타이틀곡으로 고려했었는지?

 

: 「Noir Society」, 「We Wander」, 「Exist Here」. 이렇게 세 곡을 고민했다. 이 세 곡이 가진 매력이 각각 다르다. 「Noir Society」는 메시지가 깊고, 뉴스쿨 하드코어 느낌이 난다. 「We Wander」는 가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가사를 들었을 때 생각할 거리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Exist Here」는 심플하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엔딩이 화려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좋아서 고민해 보았다.

 

: 말씀하신 것처럼 앨범 내 곡마다 구성과 전개가 달라서 다채로운 인상을 주는 반면, 보컬은 계속 일정한 톤으로 진행된다. 지난 싱글하고 비교하더라도 이런 균질함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같은 스크리밍이라도 이전에는 음의 고저를 표현한 반면, 이번에는 균질하게 톤과 피치를 잡았는데 왜 이렇게 했고, 어떻게 한 건지?

 

: 밴드 결성 후 공연을 정말 많이 했다. 하다보니 처음 싱글 녹음할 때보다도 목소리가 점차 변해 어느 정도 굳어진 목소리가 되었다. 특히 해외 투어 다니면서 단련이 되었다. 처음에는 거친 목소리였고, 다듬어지지도 않은 생톤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톤을 일정하게 잡게 되었다.

 

: 옛날 세훈의 톤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고, 지금도 지금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다.

 

: 그 부분이 강점이기도 한데, 정반대의 관점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하기에 따라 연주 스타일도 다채롭고, 멜로디 역시 음의 고저가 분명한데, 보컬은 일정한 톤과 피치의 스크리밍만 하다보니 단조롭고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 이에 대해 특히 무혁 형과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무혁 형은 러프한 사운드를 추구하다 보니 초창기 목소리가 좋다고 많이 이야기했고, 나는 지금의 정제된 목소리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이견이 오가다가 지금 잡힌 게 최종 조율의 결과다. 다른 장르 밴드에서는 멜로디가 중심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목소리도 스크리모에서는 하나의 악기이기 때문에 악기로서의 독자적인 표현 방식에 뚜렷한 주관을 갖고자 했다.

 

: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마냥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와중에도, 무척 섬세하게 보컬을 컨트롤한다고 느꼈다. 스크리밍의 경우 '절규'다 '고함'이다 로 많이 구분하는데, 이번 앨범은 확연히 '고함'에 가깝다고 느꼈다. 말했다시피 톤이 균질하고, 소리의 여운이 길지 않고 짧고 굵다.

 

: 맞다. 체인리액션에서의 스크리밍은 고함에 가깝다. 절규는 슬픈 감정인데, 스크리밍 하는 데에서도 깊은 여운을 중시한다. 반면 체인리액션에서는 곡이 다루는 주제와 부합하기 위해서도 있고,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슬픔보다는 짧고 굵게 소리가 치고 빠진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제가 해석하는 방식과 무혁 형이 해석하는 방식이 곡마다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전반적으로는 쿨하고 빠른 느낌을 주려고 했다. 우리 밴드의 사운드나 연주와의 조화를 생각했을 때, 절규하고 질질 끄는 것보다는 빨리 치고 빠지는 템포에 맞추려고 했다.

 

: 보컬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이쪽 장르에서 스크리밍 할 때 우리말 가사를 쓰는 일도 흔치 않은데, 가사가 또렷하게 잘 들리는 건 더욱 흔치 않다. 어떤 경우는 일부러 뭉그리기도 하는데 정말 잘 들린다.

 

: 발음에 정말 신경을 썼다. 어떤 메시지, 이야기를 우리가 하고자 하는지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보통 유사 장르가 분노나 슬픔 같은 감성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가사와 이야기는 전달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걸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보컬 퍼포밍 자체를 다르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 세훈과 녹음 하면서 발음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우리가 한국어로 가사를 쓰고 한국어로 노래를 하는데, 팬들에게도 우리말이 우리말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예전에는 잘 안 들린다고 생각했는데, 내 귀에 익어서 그런건지 정말 더 잘들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가사가 잘 들린다.

 

: 가사는 주로 어떻게 작업했는지?

 

: 각 곡의 토대는 무혁 형이 잡고, 저와 중간 수정하고 하면서 논의를 했다.

 

: 가사를 보면 문장을 온전히 마치지 않고, 여운을 주며 앞뒤로 모호하게 연결되는 문장이 많다.

 

: 가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 관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가사를 먼저 써오고 세훈이 수정을 할 때, 단번에 받아들여질 때도 있지만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도 많이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메시지도 있지만 듣는 사람은 슬플 때, 기분이 좋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들을 수 있기에, 가사 안에서 여러 다른 메시지와 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가사가 전부 우리말인 반면에 제목은 외국어로 다 지은 이유는?

 

: 혹시 외국인이 들었을 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의 추상적인 느낌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앨범 전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모호한 정서와도 맥락이 닿는다고 생각했다.

 

: 영어제목을 보면, 가사가 한국어라도 어떤 내용일지 대략적으로 라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쉬운 점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 앨범에서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 조금 더 군더더기 없이, 더 담백하게 곡과 앨범을 만들고 싶다. 아직 완벽하지 않게 느껴지는 게 조금 아쉽다.

 

: 항상 우리의 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녹음이나 믹싱을 하면서도 그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나름 잘 담았다고는 생각한다. 리스너 분들도 좋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 아까도 이야기했듯, 무혁님은 원래 러프한 사운드를 추구했는데?

 

: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래도 영향을 주고 받았다. 중간 과정에서는 연주라던가 그런 것도 지금보다 엄청 복잡했다. 그래서 진행하면서 복잡한 요소들을 쳐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 정제된 결과를 낸 것에는 만족하지만, 사운드와 별도로 멤버들이 온전히 밴드만 하고 더 많은 시간 모여서 작업을 했다면 연주에 있어 더 만족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에는 이런 연주의 디테일에도 더 많이 신경쓰고 싶다.

 

: 사실 국내에서 스크리모 라는 장르 자체는 비주류라기보다 씬 자체가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레퍼런스도 없을 것 같은데. 밴드가 레퍼런스로 했던 구체적인 팀이나 사운드가 있을까?

 

: 코인록커보이즈 할 당시에 음악 취향이 멤버들과 달랐다. 멤버들은 펑크, 특히 멜로딕 펑크를 좋아했다. 저는 At The Drive-in, The Mars Volta, Deftones 같은 밴드들을 좋아했다. 또 The Cooper Temple Clauses 같은 밴드의 실험적인 음악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하고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이에 더해서 제가 한창 고민하던 당시, 홍대에서 간혹 나오는 스크리모 장르 밴드도 있어서 보곤 했는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저 보컬 스타일이 내 음악에 어울려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종합해 지금의 음악 이미지가 구축되었다.

 

: 듣다 보면 흐름이 있다. 곡이 짧은데도 변박이나 변주가 있고, 전체 흐름도 큰 파동을 이루듯이 흐른다. 앨범 소갯글에서 조일동 편집장님도 4곡씩 끊어서 서사적 흐름이 생기는 부분을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다.

 

: 저희가 공연할 때도 그 타이밍을 맞춰서 공연을 끊어서 진행한다.

 

: 앨범을 처음 기획하는 단계부터 테마를 어느 정도 정해서 가겠다는 방향성은 확실했다. 원래는 16곡을 생각했다. 이중에 너무 곡이 오래 되고 안 맞는다고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 담았다. 테마별로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전체 흐름을 잡는 데 있어서는 친구들이나 제 이야기가 영향을 끼쳤다. 간결하게 이야기하자면, 희망차게 시작해서 죽을 듯이 힘들다가 이겨내는 그 보편적인 스토리를 우리 방식으로 표현하여 담는 것을 방향으로 했다.

 

: 개별적인 곡 이야기를 해보자. 「Vertigo」의 경우 별도 영어 단어의 뜻이 있지만, 가사는 마치 우리말 “버티고”처럼 느껴졌다.

 

: 영어 제목의 뜻이 괜찮고, 가사가 표현하려는 주제와도 잘 맞았다. 한국어 표현의 경우 처음에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잘 맞더라. 실제로 합주하다가 힘들 때 이 곡을 하며 “버텨”라고들 이야기 한다. (일동 웃음)

 

: 지난 싱글 중 앨범에 수록한 「We Wander」는 EP의 타이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곡명이 되어 실렸다. 꽤 흥미로운 연결인데, 이런 그림은 어떻게 그렸을까?

 

: EP를 만들 때 즈음에 이번 정규앨범에 실린 「We Wander」의 형태가 거의 다듬어졌었다. 다만 당시에는 아직 완성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 곡을 수록하지 않는 대신 EP의 명칭으로 쓰고 싶었다. 그 곡을 만들 때 즈음 EP가 정리되는 느낌도 있었고, 제목의 뜻도 좋아서 그렇게 하게 되었다.

 

: 후반부 세 곡의 경우(「Exist Here」 - 「Hier」 - 「We Wander」), 녹음이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던데 오히려 엔딩은 뚝 끊기게 녹음이 되는 등 구성상의 다이나믹이 크다.

 

: 「Hier」가 불어로 ‘어제’라는 뜻인데, 곡이 끝나고 다음으로 연결되는 타이밍을 라이브 때와 거의 똑같이 담고자 했다. CD로 들으면 잠깐 멈춘 뒤 바로 시작하는데, 스트리밍에서는 그 느낌이 완전히 살지는 않게끔 되었다.

 

: 마스터링 할 때 음원 자를 타이밍을 엄청 고민했다. 애플 플레이어로 계속 앞뒤로 짧게 치면서 최대한 바로 다음 곡이 들어오는 느낌을 주려고는 했는데, 스트리밍에서는 아무래도 서비스 환경이 있으니 쉽지 않더라.

 

: CD로 들으면 이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웃음)

 

: 말씀하신 것처럼 「Hier」의 경우 불어 제목인데,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독일어로는 영어 'here'와 뜻이 같다.

 

: 제가 좋아하는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나중에 곡을 만들면 제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불어로는 「Hier」인데 영어의 'here'와 발음이 비슷하고, 두 가지 의미가 이중적이라는 점도 주목했다. 말씀하신 독일어로 'here'를 뜻한다는 점도 내용과 맞다는 점에서 고려됐다.

 

: 지난 싱글 같은 경우 다른 장르 뮤지션들과의 리믹스도 있었는데 이번 앨범이나 이후 작업에서도 그런 작업들을 생각하는지?

 

: 저희 곡을 다른 방식으로, 저희가 생각한 걸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지 궁금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 작업들에 만족했다. 다음 앨범에도 싱글 같은 경우엔 비슷한 시도를 할 것 같다. 트웰브와 여포는 원래 아는 지인들이었고, 그들의 음악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꼭 리믹스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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