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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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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여름과 휴식이 연관 검색어로 연결되던 나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다. 스무살 중반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노동과 쉼이란 단어와 경계 사이에서 꽤나 눈물 흘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여름이라는 시기에는 일부러라도 뭔가를 챙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물기 가득한 여름을 보내며 최근에 다시 꺼내들었던 음반을 조용히 곱씹어 보고 싶어졌다. 지루하고 느릿하지만 규정되지 않은 삶의 한부분속에 마음을 기대고 싶은 분들은 이 음악에 한번쯤은 의존해도 나쁘지 않다. 인생의 음반으로 넣기에는 부담스러운 트랙이 실려 있는 앨범도 있지만 선택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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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 『Death And The Flower』
Impulse / MCA | 1974년 발매


처음 앨범을 구입했을 때 자켓을 놓고 레코드 가게 주인과 벌였던 사소한 실랑이가 생각난다. 사막 위에 핀 장미, 아니면 암석 위에 핀 꽃. 보이는 시선에 따라서 음악을 해석하는 방향이 달라질거라는 얘기를 했었다. 아빙가르드와 즉흥 연주에 많은 비중을 두는 프리 재즈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70년대 중반을 지배하던 편안하면서도 가식적이지 않은 팝 멜로디를 차용하려던 Keith Jarrett의 모험심이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앨범의 초반을 지배하는 묵직하고 조용한 긴장감과 그위를 부유하는 플룻 소리의 향연을 생각하면 기존의 프리재즈와 별 다를바 없다고도 생각할수 있지만, 긴 호흡으로 앨범 트랙을 정주행하면 테크닉 자체가 주는 매력보다, 제 시간에 당도하는 멜로디의 언어에 압도당할 것이다. 조용하게 흐르는 선율만큼 끈끈한 것도 없다.



Nick DeCaro 『Italian Graffiti』
Blue Thumb Records | 1974년 발매


라틴 혹은 재즈의 카테고리로 보는 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지리스닝 계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존에 FM라디오에서 나오던 정형화된 팝 사운드라 규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부드러움이 넘치며, 주워담지 못할 정도의 여유로움이 사람을 당혹시키기도 한다. Nick DeCaro가 가진 보컬의 특성 때문에 이런 부드러운 나태함이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발라드나 팝이 가진 청승과 낭만의 성격보다는 잘 꺼내지 않는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색깔의 감정들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그래서 이 음악을 듣다보면, 나태와 불안을 동시에 주입받았던 이들은 이렇게 풀어져도 되는지, 행복한 기분을 느껴도 되는지, 이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상관없는지를 문득 느끼며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 자체가 아무 소용없다는걸 이 앨범을 두 번정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회피하기 위한 낙원이 아니라 짊어지고 가는 고뇌 속에 남아있는 미소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이미 1992년에 세상을 떠난, 그리고 한참 전 세대의 알려지지 않은 싱어송라이터가 주는 인생의 혜안을 약간이나마 들여다 보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다.



Plastic Cloud 『Plastic Cloud』
Allied Record | 1969년 발매


Allied라는 레이블이 있다. 주로 6~70년대 사이키 음반을 주로 발매했던 레이블인데, 평범해보이지만 듣는순간 예민한 특징이 나타나는 음반들을 많이 소개해왔다. Plastic Cloud도 그런 팀 중 하나다. 60년대말 싸이키델릭 붐은 사람들의 분란과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발생지였던 미국에서는 서둘러 끝난 듯 보였지만, 그 짧은 한 때가 보여준 파급력과 영향의 점도는 강렬하고 끈적했다. 영미권을 넘어 유럽에서는 사이키델릭 장르를 계속 업그레이드 시켰을 뿐 아니라 한참 무르익었던 69년 당시에는 고만고만한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포크록 성향의 음악에 싸이키델릭을 끼얹거나, 아니면 밴드의 기량을 다 짜내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연주력과 정신세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좀더 오리지널에 가까운 싸이키델릭으로 뛰어들 것인가를 좀더 고민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Plastic Cloud의 셀프 타이틀 정규반은 그런 시대와 상업적인 선택의 고민이 동시에 담겨있는 작품이다. Byrd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Byrd 보다는 Tutles의 음악에 좀더 기댄 것처럼 보이는 스타일에 당시를 휘어잡던 몽환적이고 심연에 가깝게 접근하는 마이너 스케일의 연주 역시 60년대 후반을 주름잡던 정서를 단박에 캐치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기존의 생각을 비트는 것 자체가 평범하게 느껴지던 시절이라 그때의 시각에서 이 밴드의 음악은 너무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업적 지향점과는 별개로 그들이 담아내고 싶어했던 무형의 형태속에 몽환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그리고 그 가운데 부드러운 멜로디를 나열하는 이런 스타일은 상업적으로 평면성을 유지하던 밴드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기 충분했다. 이 시간이 지나 70년대가 되면 전혀 다르게 뒤틀리는 음악이 주가 되는 시대의 변혁기를 맞게 되지만 그 이전에 상업 음반의 틀 안에서 추구하고 싶었던 싸이키델릭을 풀어놓았다는 점만으로도 애틋하지만 속이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다른 싸이키델릭 밴드 들과 비견했을때는 평이하다. 그러나 이것저것을 모두 받아들이던 시대의 평범함은 지금 시대와는 분명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앨범을 통해 그 지점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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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앨범들은 학구적인 소양이 아니라 일상의 한 축으로 포개놓고 들을만한 음반들이라는 점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일상의 아름다움 안에서 더 예민하게 움직이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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