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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Track Best 120]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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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들어가며

 
대중음악의 역사는 댄스뮤직의 역사다. 새로운 작곡법이나 화성의 혁신보다는 새로운 리듬과 춤의 발견이 새로운 유행을 추동하고, 또다시 새로운 리듬의 문법의 발견에 의해 그 유행이 대체되고 계승되는 과정은 현대 대중음악 역사의 핵심이다. 20세기의 문턱에서 미국에서 유행한 최초의 대중음악의 장르가 폴카(polka)나 마주르카(mazurka)에 얹은 볼룸 댄스(ballroom dance)였다는 사실을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코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었다. 20년대의 래그타임(Ragtime) 및 재즈(Jazz), 30-40년대의 스윙(Swing)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들은 모두 당대의 ‘댄스뮤직’으로, 연주용이나 가창용의 음악이 아닌 춤을 추기 위한 반주음악으로 널리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음악사가(史家)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다.


로큰롤 이후의 현대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척 베리(Chuck Berry)와 처비 체커(Chubby Checker)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의 댄스 송가였으며, 60년대의 소울과 서프 음악, 70년대의 훵크(funk)와 디스코, 80년대의 신스팝(synth-pop)과 뉴웨이브(New Wave), 90년대의 뉴잭스윙(New Jack Swing)과 테크노는 모두 동시대의 댄스 음악씬을 이끌었던 음악들이었다. 21세기에 가장 유력한 대중음악 장르로 떠오른 힙합과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클러빙과 비보잉등 ‘춤의 문화’와 연관되는 지점에 대해서는 따로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국 대중들의 음악적 ‘경험’에서도 댄스뮤직은 중요한 요소였다. 다만 자생적인 레퍼토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대중들과 교감하게 되는 시점은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80년대 이후였고, 대표적인 댄스뮤직의 소비통로들, 이를테면 나이트, 캬바레, 극장식당, 디스코텍, 고고장, 로라장 등의 공간 역시 90년대 중반 이전에는 가요가 아닌 외국 음악이 대부분의 레퍼토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댄스 음악을 전문적으로 만들거나 연주하거나 음악인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진출하게 된 것은 90년대 이후였고, 그때까지 댄스뮤직은 하나의 씬 내지 장르라기보다는 대중음악의 성격을 규정짓는 ‘정서’로서 남아 있었다.


한국형 댄스뮤직, 혹은 댄스가요의 정착 시기를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다소 좁게 잡더라도 이미 그 역사는 20여년에 이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댄스 뮤직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거나 토론하기를 꺼려한다. 대중음악평론에 있어서 댄스 음악 평론이 여전히 사각지대처럼 남아 있는 것은 그 방증이다. 그 어느 유명한 명반, 명곡, 명인 리스트에서도 댄스 뮤직은 다소 형식적으로 호명될 뿐이다. 댄스뮤직은 쉽게 흘려듣는 음악, 깊이 없는 음악, 하층민이나 여성이 즐기는 음악, 심오한 역사성이 없는 음악으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합의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음악이 본질적으로 보통 사람, 여성, 특히 젊은이가 선호해 온 비트와 리듬의 역사라고 가정했을 때 이미 우리는 대중음악 담론에서 그 절반 이상을 놓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발라드 싱글 베스트 100》에 이어, 우리는 이런 고정 관념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자 한다. 보통의 대중들이 가장 많이 즐긴, 그리고 그들의 삶과 정서와 가장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은 음악을 빼놓고 대중음악의 역사를 논하는 일은 정당할까? 하는 질문이다. 이는 댄스라는 장르 음악에 대한 연구가 아닌 ‘보통의’ 인기가요에 보내는 자연스러운 관심의 표출이다. 우리네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즐기고 몸을 맡겨온 주류 중의 주류 음악인 댄스뮤직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당대를 수놓았던 명곡들을 가려 뽑는 작업을 택한 것은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다.
 


차트의 의미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했던 문제는 불완전하게나마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안에서 댄스 뮤직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이었다. 필진 개개인이 반추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명곡이 아닌 주류 댄스 음악사 내에서 의미와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음악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작업, 발라드나 헤비니스 베스트 때도 비슷하게 겪었지만 이는 실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익숙했던 히트곡들의 장르, 스타일, 비트, 리듬의 특성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해 한국 대중음악 안에서 댄스라는 음악이 가지는 의미를 토론하는 일, 궁극적으로는 댄스로 명명될 수 있는 전체의 후보군을 확정하는 일이 그 주된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 리스트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를 두고 크게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게 되었다.


1. 퍼포머나 아이돌에 국한되지 않는, 댄스뮤직의 스타일과 문법을 따른 모든 곡들을 망라해 한국 대중음악의 ‘리듬과 그루브’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

2. 소위 ‘퍼포머’의 역할에 집중해 아이돌, 산업, 방송퍼포먼스 등등의 키워드만 한정적으로 절충시킨 범 ‘케이팝’의 역사를 재조립하는 것.


단일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음악의 성격을 규정할 납득가능한 단일 기준을 만드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고, 우리는 발라드 베스트 때와 유사하게 일종의 절충주의적 노선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즉 ① 퍼포머형 케이팝의 역사 (적어도 1980년대 말부터 이어지는 아이돌의 역사가 그 중심이 된) 를 그 큰 기본 줄기로 삼되, ② 그 이전 시기의 음악들 중에서도 댄스뮤직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여겨지는 곡들을 개별적으로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필시 불완전한 접근 방법이겠지만 적어도 한국형 서구 댄스뮤직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정서와 교감하기 시작했던 70년대 초반 이후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댄스의 ‘40년사’는 그렇게 대강의 모양새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선정 기준 및 방식


이 짧은 서문 안에 우리가 다룬 한국 주류 댄스뮤직의 장르와 스타일을 모두 나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후보 선정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몇 가지 기준을 상술하여 대략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다. 먼저 ‘댄스뮤직’의 기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1. 가수-댄서의 역할이 결합된, 혹은 뚜렷한 퍼포먼스(안무)가 동반된 음악
80년대 중반의 나미, 80년대 후반의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을 비롯한 댄스가수들, 그리고 90년대와 00년대에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케이팝 아이돌 댄스 뮤직 계열.


2. 퍼포먼스의 존재감은 미약하거나 부재하지만 곡 자체가 뚜렷한 댄스곡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
형태적으로는 singer-songwriter 나 보컬리스트 중심의 음악, 다양한 장르를 포섭했던 80-90년대 '작가'군들의 음악.


3. 통상적인 댄스곡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디테일에서 당대의 댄스 장르를 적절히 구현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음악
80년대 이전의 비-퍼포머형 음악들, 밴드 형태의 음악들, 댄스가수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이전 시대의 음악. 


무엇보다 댄스뮤직이 철저히 서구 대중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해 영/미팝, 그리고 한국 댄스뮤직의 중요한 레퍼런스로 자리 잡은 유럽 및 일본 음악과의 동시대성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그에 따라 한국적인 맥락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된 시대별 댄스 음악의 장르를 몇 가지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70-80년대 훵크(Funk) 혹은 훵키(Funky), 디스코 (유로(Euro), 이탈로(Italo) 포함) 계열

2. 80년대 신스팝(Synth pop), 뉴웨이브(New wave) 및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편곡이 진행되는 밴드 음악 계열

3.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유행했던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및 힙-하우스(Hip-house) 풍의 음악들

4. 90년대 초중반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으로 속칭 레이브(Rave)1) 로 일컬어지던 하우스(House), 테크노(Techno), 유로 팝(Euro pop) 스타일의 음악

5. 90년대말-00년대 이후의 EDM 및 힙합에서 파생된 신생장르로 덥스텝(Dubstep), 크렁크(Crunk), 일렉트로 힙합(Electro Hip-Hop) 등


그 외에도 통상적으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나 신스팝에 포함되지는 않더라도 댄스뮤직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부합했던 록, 힙합, 트로트의 일부 곡들 역시 주류 가요의 특수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포함의 여부가 가름되었다. 그와 반대로 장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춤곡’이라는 명제에 부합하기 어려운 곡들과 주류 가요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 작품은 제외했다. 


투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했던 것은 한국 대중음악사, 그 중에서도 댄스뮤직의 계보에 있어서 해당 곡이 가진 음악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였다. 장르적인 동시대성의 적절한 구현 및 해석의 수준, 완결된 곡으로 가져야 할 만듦새, 음악적 아이디어를 구현한 편곡의 수준, 댄스가요로서 가진 퍼포먼스의 탁월함 등 음악 그 자체를 충분히 평가함과 동시에 그 곡들이 사회문화적으로 환기시킨 의미에 대한 평가를 아우르고자 했다. 물론 대중적인 반향이야 말로 그 어느 비평적 기준만큼 중요한 댄스뮤직 최대의 미덕이자 판단의 기준이다. 


이렇게 조금은 복잡한 여러 가지 관점을 지나 온 650곡의 최초 후보군이 모아졌고 이는 회의 및 투표를 거쳐 340곡의 2차, 150곡의3차 결과로 좁혀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주류 댄스 가요 120곡의 최종 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2)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주류 대중음악의 역사는 곧 댄스뮤직의 역사였다. 필자들이 가려 뽑은 곡들과 그 리뷰를 찬찬히 따라가 보면 독자들 역시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끼게 될 것으로 믿는다. 리스트가 놓친 것들을 메우려는 시도와, 공감과, 반박과, 무엇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풍성하게 뒤따르길 기대하며 그 즐거운 고민의 결과를 여기 공개한다.

 

참여 필진 (가나다 순)

김동건, 김성대, 김영대, 김용민, 김윤하, 김혜연, 류성은, 박병운, 안상욱, 열심히, 윤호준, 이정희, 정병욱, 조일동, 차유정, 최지호, 홍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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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이브는 80년대 후반에 전세계를 뒤흔든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열풍으로 촉발된 하위 문화, 혹은 그와 연관된 음악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지만 국내에서는 특정 편곡을 가리키는 단어로 유통되기도 했다.
2) 120이라는 숫자는 댄스뮤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르라 해도 무리가 없는 '디스코'의 정격 템포인 BPM (Beats Per Minute) 120에서
   따온 것이다.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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