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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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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장이 뽑혔다. 1998년, 2007년에 이어 공식적으론 세 번째 시도다. 그리고 이번 리스트는 2007년 《가슴네트워크》와 《경향신문》이 함께 진행한 『100대 명반』 리스트와 큰 틀에서 겹친다. 물론 순위와 맥락은 다르다. 가령 조용필 1집이나 언니네이발관 2집처럼 더러는 순위가 내려갔고 두 번째 달이나 강산에, 클래지콰이처럼 리스트에서 아예 증발된 사례도 있다. 또 김수철 1집이나 넥스트 2집, 이소라 6집처럼 순위에서 크게 도약한 앨범들도 있다. 델리 스파이스처럼, 데뷔 때 참신함에 조금씩 이끼가 끼어가는 모습도 이 리스트는 보여주고 있었다. 1, 2위도 들국화, 유재하에서 유재하, 들국화로 바뀌었다. 10년 전 리스트와 10년 후 리스트는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이번 리스트는 장르와 시대 구분 없이 선정단 47명이 1인당 100장씩 순위를 매겨 앨범들을 추천했고 매긴 순위에 따라 최종 집계를 했으며, 집계된 앨범들을 47명 중 38명에게 1인 기준 적게는 3장 이하, 많게는 4장씩 배정해 리뷰를 썼다. 그리고 글쓴이를 비롯해 선정에 참여한 47명은 앨범 추천을 시작한 때부터 1년 가까이 지난 2018년 8월 말 ~ 9월 《멜론》과 《한겨레신문》을 통해 10장씩 역순으로 100장 순위가 공식 발표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물론 우린 공개 직전까지 최종 순위를 몰랐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이번 책이다. 단지 지난 리스트들과 비슷한 앨범들이 다뤄졌다 해서 막무가내로, 타성에 젖어 선정한 그저 그런 결과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리스트는 음악의 유행과 새얼굴들의 등장에 따라 지난 10년 간 국내 대중음악계에 일어난 꿈틀거림, 균열을 대중과 함께 확인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안다. 선정단은 그 변화가 밖으로 드러나도록 먼지를 터는 정도 역할이지, 리스트의 변화를 주도하거나 애써 새로 만들려는 세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선정 결과를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선정단의 권위나 전문성에 대한 의심, 선정단 구성원들이 속한 특정 세대가 특정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 장르와 성별의 치우침, 혁신도 충격도 없는 리스트라는 비꼼, 독점적 논의라는 곡해까지. 아쉬움인지 견제인지 오해인지 질투인지 모를 다양한 쓴 소리들이 이어졌다. 당연하다. 의견은 어디까지나 주관에 기반 한 것이고 주관이란 모두 저마다이기에, 리스트를 향해 다양한 말들이 쏟아진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 리스트가 열려있다는 말이 된다. 이견이 없는 리스트는 잘못된 것이다.


전문성에 대한 불신

이번 선정에 참여한 이들은 20년 가까이 또는 20년 넘게 밥벌이로서 국내외 대중음악을 들어왔거나 들려주고 말하거나 써온 사람들이다. 음악평론가라면 강헌, 임진모 같은 이른바 ‘1세대’ 유명 인사들만 아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명단이겠지만 이번 47명 선정단은 모두 나름의 영역에서 한국 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위보다 전문성을 더 다지려는 사람들이며, 전문성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일에 거의가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선정단의 자질에 의심이 든다면 그 의심 갖는 자 스스로 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을 꾸려 따로 리스트를 만들면 될 일이다. ‘100대 명반’에 무슨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건만 된다면 누구든 추진해볼 수 있을 일이다. 해외의 《Rollin' Stone》, 《NME》, 《Pitchfork》, 《Spin》, 《Billboard》의 명반 리스트들이 서로 다른 시선 다른 맛을 머금고 있듯 국내에서도 장르별이든 시대별이든 그 모든 걸 어우른 것이든 다양한 리스트가 계속 나온다는 건 어쨌거나 대중에겐 축복이다.


2010년대 명반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선정단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30~40대다. 즉, 80년대와 90년대에 음악이라는 마법에 빠져 허우적댄 세대라는 뜻이다. 때문에 후보작들을 뽑으며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 명반들을 더 다뤘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이들은 대중음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로서 단순히 개인의 청춘시대 음반들만 편애해선 안 될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리스트에 객관성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배어난다. 개인의 취향보다 예술성과 역사성, 영향력이라는 거시적 기준부터 가사/멜로디/리듬의 조화, 소리의 질, 보컬이 가진 음색과 가창력, 연주와 편곡 수준이라는 미시적 척도를 더 감안한 리스트를 위해 47명은 지난 몇 달을 각자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혹자들이 지적하는 ‘균형 있는 연도별 순위 안배’는 선정에 참여한 모두에게 그것을 원칙으로 제시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라. 천하의 송창식도 겨우 100등에 턱걸이 했고 그 유명한 이장희도 리스트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이 사람들의 숙성된 명성을 덜 여문 시의성과 맞바꾸어야 하는가. 세상 대부분 마스터피스 리스트들이 그렇듯 이번 리스트 역시 시의성과 대중성보단 역사성과 예술성에 더 주목한 결과라고 나는 본다. 뽑힐 만한 앨범들이 뽑힌 것이고 뽑힌 이유는 앨범마다 첨부된 리뷰들에 구구절절 적혀있다. 명반 선정은 기호보단 가치에 방점을 두는 작업이다.

2010년대 앨범들 중 이미 명반이거나 명반으로 인정될 가능성을 가진 결과물들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마 다른 46명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최종 판단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분명한 건 이 리스트는 지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앨범들을 추려보자는 것이지, 특정 시대 작품들을 따로 조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잠재적 ‘2010년대 명반들’은 예술성은 담보되었을지언정 명반의 중요 요건인 역사성과 영향력에서 아직 자신들을 더 증명해내야 한다. 우린 그 시간을 10년 정도로 보는 것이고 해당 주인공들은 또 다른 10년 뒤 어떤 식으로든 대중 앞에 호명될 것이다.


'아재 냄새'라는 씁쓸한 오해

선정단 성별은 남성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에 가깝다. 아직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진 적은 없지만 대중음악 평단에 여성 평론가들 수가 적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장덕과 김윤아(자우림), 보아와 아이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더더욱 아니다. 더 많은 여성 평론가들이 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을 다뤘으면 하는 생각에는 부분적으로 공감하지만 단순히 이 리스트가 표면상 성별에서 치우쳐있다고 보는 것은 이 분야의 사정과 리스트 선정 과정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들 같아 씁쓸하다.

장르도 확실히 포크와 록 쪽에 치우쳐 보인다. 한국에서 포크와 록은 70년대와 80년대에 유행한 장르다. 이러한 리스트의 장르적 특성에 선정단의 나이, 성별을 묶어 혹자는 ‘아재 냄새’ ‘꼰대 냄새’가 난다며 이 리스트를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선정단이 의도했거나 지향한 것은 아니다. 편향돼 보이는 장르는 명반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불거진 우연일 뿐이지, 따로 잡은 목적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선정단내 어떤 이들의 개인 리스트에선 아이돌과 힙합, 그리고 2010년대 인디음반들이 적잖이 다뤄졌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들을 100장 안에 넣자는 공동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따름이다. 의도된 성별과 장르의 편향? 그럴 수도 없고 그럴 리도 없는 일이다.


'혁신과 충격'은 리스트의 본질이 아니다

혁신과 충격. 어떤 리스트에 꼭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설령 있더라도 자연스러운 고민의 결과여야지 과정상 전략이어선 안 된다. 혁신과 충격을 위해 Beatles를 빼고 Talyor Swift를, 《시민케인》(1941) 대신 《주라기 공원》(1993)을 넣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사실 대중음악 명반들을 10년 단위 시대별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이미 《100비트》와 《음악취향Y》 같은 웹진들이 한 바 있다. 특히 《음악취향Y》의 경우 댄스와 일렉트로니카, 발라드와 헤비니스를 주제로 한 장르별 리스트를 선보여 별도 의미를 남겼다. 하지만 그런 리스트들조차 모두에게 환영받진 못했다. 불만족이 있었고 반론들도 제기됐다. 하물며 한 세기에 이른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 중 단 100장만 뽑는 자리에서 불만이 없을 순 없다. 나는 대부분이 8090세대인 이번 선정단 47명이 김건모와 윤상, 이승환과 신해철, 공일오비를 구해냈듯 10년 뒤엔 0010세대 음악전문가들이 2NE1과 잠비나이, 빅뱅과 아이유, 빈지노와 이디오테잎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번 에프엑스의 리스트 진입은 그 도화선이 될 것이다.) 그건 그때 그들의 몫이고 어떤 면에선 의무다. 물론 그 리스트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 리스트에서도 신중현과 유재하, 장필순과 한영애는 높은 순위에서 맹위를 떨치리라. 그것이 역사성과 작품성, 후대에의 영향력을 함께 고려한 공동 선정 명반 리스트의 숙명이다.


자성의 목소리 없지 않았다

이번 리스트 결과와 관련해 선정단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있었다. 예컨대 함께 선정에 참여한 동료 평론가는 “더 듣고 더 치밀하게 선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이는 “100대 명반이라는 무게감에 눌려 오랜 기간 찬양받아온 ‘안전한’ 앨범에만 투표한 결과”라며 “선정위원들이 너무 소심하며 게으르다”고 일갈한 어떤 이의 불만과도 언뜻 통하는 얘기다. 그 동료 평론가는 왜 김두수의 ‘보헤미안’이 아닌 ‘자유혼’이 이번 리스트에 다시 올랐는지 의아해했다. 또 자이언티와 라디(Ra. D)를 두고 왜 아소토유니온이 저렇게 높은 순위에 있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허클베리핀의 앨범은 계속 있어도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나 역시 마이앤트메리나 언니네이발관 1집 대신 9와숫자들, 브로콜리너마저, 가을방학이 들어갔으면 어땠을 지를 생각했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 3, 4집 대신 버스커버스커나 국카스텐의 데뷔작이, 자리가 있어 메써드라는 이름까지 만날 수 있었다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나마 디제이소울스케이프와 가리온이 증명하듯 늘 다뤄져온 힙합은 이센스와 버벌진트가 파고들며 더 다뤄져 다행이라 여겼고, 근래 아이돌 명반들은 역시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인가, 를 재차 확인했다. 이런 파편적 자평이 과연 몇 사람 사이에서만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보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우린 쓴 소리를 언제든 감당해야 하며 그 소리들 앞에서 선정 결과를 치열하게 반추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성과 재고 없이는 발전도 없다. 혹자의 지적처럼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명반 리스트 선정은 정답을 찾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당연히 전략적 선정과 배제를 전제한 기준 따위도 없다. 이번 100대 명반 리스트는 그저 참여한 47명의 의견을 모은 결과일 뿐이다. 이런 리스트란 애초에 모든 사람의 관점, 바람을 충족시킬 수 없을뿐더러 다 만들면 손에 잡힐 법한 객관성이라는 것도 어차피 한계에 직면하게 돼있다. 리스트는 모래알처럼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주관들의 집합일 뿐이고, 이것들만이 명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를 명반들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는 합의일 뿐이다. 이번에 우린 겨우 100장을 뽑았다. 그리고 47명 각자 리스트에서 추려진 이 앨범들 외 다른 수많은 작품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리스트도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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