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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3류 평론가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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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편집자 註]
《음악취향Y》의 필진이신 윤호준님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당사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아래의 글타래를 읽고 나서 이 글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나원영님의 원문 ( 「언니네이발관, 98-08-18 : 명반의 탄생」) -
http://www.weiv.co.kr/archives/23856
최지호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 - https://www.facebook.com/choi.jiho.18/posts/2428959930479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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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영님의 글과 이 글을 공유하며 올린 친구 최지호의 글을 읽고 간만에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뭔가를 막 적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적는다.

1.
나도 지호처럼 "늙어가는 3류 평론가"다. 이 말은 원영님의 문제의식에 대한 에두른 불쾌감의 표현이 절대 아니다. 그런 건 1도 없다. 나랑 지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예전만큼 쓰지 않고 예전만큼 듣지도 않는다. 나는 실제로 지금 평론가가 아니다.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치자)했던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고, 그 활동도 대략 5년 전부터는 별로 없다. 그 세월을 새삼 가늠해보자니 마음이 헛헛하다. 그런데, 매우 송구스럽게도, 올해 나온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이하 『명반 100』)에 내 존재는 '대중음악평론가'로 적혀 있다. '식당 운영중'이라고 쓸 수는 없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편집부의 선택이었겠지만, 원영님의 글을 읽으며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명반 100』에 쓴 이상은의 『공무도하가』(1995)에 대한 리뷰에도 '전설'이란 단어가 서슴없이 들어갔다. 그게 20년 전의 인디록이든, 25년 전의 가요든. 나는, 그리고 지호는 10대와 20대에 걸쳐 실시간으로 들었던 '음반'으로 구축된 몸을 지닌 평론가였다. 세상의 모든 평론가가 다 그러하듯이.

2.
원영님의 글을 읽으며 제일 어색했던 건 'X세대'였다. 그것보다는 본문에도 나오듯 그냥 '70년대 중반 태생 평론가'라는 긴 작명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헤비메탈을 좋아했던 평론가'라는 작명도 잠깐 떠올려봤지만 일단 나부터가 거기에 포함되지 않고, 나 말고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여럿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또래 평론가들은 어떤 또 다른 집단 작명이 가능할까 생각해봤다. 결국 떠오르는 건 '음반을 모으던 사람' 밖에 없었다. LP든 CD든 테잎이든 음반이라는 물건을 사 모으던 사람들. 나는 가요 테잎을 사 모았고 지호는 메탈 빽판을 사 모았겠지.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내 또래 평론가들의 '전설', '음반', '유기적 구성' 등등 동어반복의 출처는 '인디록 태동기 실시간 경험자'보다는 그냥 '음반 집착자'라는 커다랗고 뻔한 범주가 더 맞는 출처가 아닐까?

3.
나는 90년대에 홍대 앞을 몇 번 가보지도 않았다. 그냥 홍대 앞에서 '만들어졌다는 음악'이 좋았다. 물론 나는 좀 예외적 케이스겠지만, 어쨌든 90년대 후반 인디록이 70년대 중반 태생 평론가의 중요한 몸뚱아리를 만들어냈다는 얘기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냥 맞아, 인정하면 그만이지만 자꾸만 다른 몸뚱아리도 있지 않나? 하는 떫은 맛을 떨칠 수 없다. 원영님은 『가장 보통의 존재』(2008)가 『명반 100』에서 50위를 차지한 것과 지호의 직설적인 세대 고백 리뷰를 글의 중요 소재로 삼았지만, 나는 차라리 그보다는 넥스트의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1994)이 무려 9위를 차지하고 신해철의 『Myself』 (1991)가 57위를 차지한 것이 더 거대한 몸뚱아리라 생각한다. 그 뒷 순위를 받치고 있는 공일오비와 김건모와 이승환과 윤상과 전람회도 그렇다. 이 다른 몸뚱아리에 대해 우리 또래 평론가들은 많은 글을 남기지 못했다. 그때는 다들 평론가가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언니네이발관의 몸 만큼이나 큰 이 몸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적어도 나에겐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나와 지호는, 우리는, 인디록의 몸을 숱하게 매만지며 글을 써댔고, 지금 20년 아래의 젊은 평론가는 '우리-인디록'의 외부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윗세대 평론가들의 '그들-90년대 가요'에 대한 외부의 관찰을 딱히 가져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인디록을 다룬 만큼 90년대 가요를 다루지 않았다. 그때 평론가는 극소수였고 김건모 같은 주류 가요를 언니네 이발관처럼 다루던 평론가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인디록을 '같이/동시대에' 다루면서 비로소 처음 만났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4.
나는 개인적으로 넥스트와 신해철의 순위가 『명반 100』에서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학창시절에 신해철을 사랑했던가!! 하지만 신해철 음반들에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디록의 '듣기/글쓰기'였다. 그렇다면 원영님 또래의 20대 평론가는 신해철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20대 평론가들이 '우리-인디록'의 관계를 들여다보듯 '우리-신해철'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걸 상상한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미사여구와 낭만과 추억이 들통날까? 그날은 정말로 올까? 제발 왔으면 좋겠다. 20대 평론가들이 30대 쯤 되면 신해철에 대해 쓰기 시작할까? 참으로 재미있는 건, 신해철과 김건모 등이 거창한 『명반 100』에 초대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어떤 면에서, 윗세대의 그들과 우리가 대략 15년 전쯤에 '같이/동시대에' 인디록을 다루면서, 언니네 이발관은 신해철과 김건모를 뒤로 미루고 새치기를 했다. 이 특수한 한국 대중음악 비평의 역사 속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더욱 더 두꺼운 볼릭체로 모두에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원영님이 언니네 이발관에 대해 쓸 수밖에 없었던 것도.

5.
《가슴네트워크》의 『100대 명반』(1999)이 발표됐을 때 나는 김광석(4장)과 김현식 음반(4장)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엔 언니네와 허클베리핀과 델리스파이스가 벌써 있었다. 평론을 시작하기 직전의 나는 김광석과 김현식의 과대평가에 대해 말할 창구가 없었다. 대략 10년 뒤의 두 번째 100장이 발표됐을 때 김광석과 김현식은 줄어 있었지만 그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건모와 이승환에 대해서도 역시(『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이나 웹진 《100비트》의 90년대 차트가 있긴 하지만). 하지만 10년 전의 인디록은 그때도 거의 온전히 살아남았다. 바로 이런 얘기들을 우리는 원영님의 쓴 것 같은 그런 종류의 글로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정말로 잘못한 무엇이 있다면 언니네 이발관을 동어반복 상찬했다는 것보다, 이런 관찰과 발언을 계속 주저했다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6.
난 젊은 평론가들이 앞으로 크게 세 가지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 또래에서도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 첫째, 나는 1999년의 『100대 명반』이 일면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때 비평을 했던 사람 중에 60~80년대까지의 가요를 몽땅 다 챙겨 들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비평이 없던 수십 년 시절에 대해 한참이나 무지하고도 그때의 평론가들은 당당했다. 이 당당함은 숱한 복각 음반이나 『한국 팝의 고고학』(2005) 같은 책들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 과거에 대해 나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이건 거의 한국 대중음악 비평의 절대적인 핸디캡이다. 우리보다 더 열심히 들어서 이걸 걷어줬으면 좋겠다. 둘째, '우리-인디록'과 같은 세대 간 비평의 상대적 시간 단위들에 대해 계속 관찰하고 비판하고 발언했으면 좋겠다. 셋째, 우리 또래는 '우리-90년대 가요'에 대한 발언을 한참 주저했지만 젊은 평론가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버스커버스커와 방탄소년단이 『명반 100』에 들어갈만 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내 기준일 뿐이다. 1999년엔 1년 전 발매된 허클베리핀과 어어부프로젝트가 차트에 들었다 (그때 인디록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몰라 채워넣지 못한 공석 때문일 수도 있다). 2018년 차트엔 1년 전 음반이 있는가? 그때는 인디록이 주류 가요에 대한 신선한 대안이었으니까? 그럼 지금의 아이돌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을까? 나는 대안을 못 만들겠지만 젊은 누군가는 그게 대안이든 논리든 특유의 낭만이든 그걸 과감하게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7.
평론의 수요가 없어져가는 마당에 6번의 기대가 과연 실현될까? 글쎄. 나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쓰고 다녔지만 그걸로 돈다운 돈을 번 적이 없다. 이 오래된 암울함이 어쩌면 반전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돈 번 사람이 별로 없는데 비평 비슷한 것은 어쨌거나 2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세상에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언제나' 있다. 비평이라 말하지 않고 그냥 '글'이라고 말해야 하는 그런 글. 그런 글은 평론가라는 '직함'과는 별도로 우연찮게 누군가에게서 '항상' 나온다. 음악에 관한 어떤 글. 음악에 관한 어떤 글을 쓴 작자에 대한 다른 작자의 글. 글이 되려고 하는 어떤 욕망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난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쓴다. 음악을 듣고 쓴다. 그 글들을 기대한다.

8.
이 기나긴 잡 생각을 가능케 한 나원영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 친구 지호의 실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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