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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3 : 레코딩의 기억으로 아로새겨진 현재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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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정확한 음, 정확한 연주, 정교한 악기 세팅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앨범이 나온다.”

 

 

: 이번에 함께 작업을 한 황경수 엔지니어와의 호흡은 어땠나?

 

: 황경수 엔지니어도 우리와 작업을 한 적도 있고, 다른 헤비메탈 밴드들도 많이 작업을 했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9집을 녹음하면서 우리의 작업 방식은 Victor Smolsky와 했던 시절처럼 돌아갔다. 소리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정말 빡빡하게 작업을 했으니까. 황경수 엔지니어도 자기 스타일이 있었을텐데 당황했을 거다. 처음에 왜 이런 드럼 사운드를 원하는지, 왜 다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해 했다. ‘이렇게까지 안 해오셔도 되는데요’ 이랬으니까. 그런데 작업을 해나가면서 경수가 우리의 방식을 받아주고 이해해줬다. 고마웠다. 그리고 그 스타일을 밀어붙여서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함께 했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들으면서 멤버 중에 하나라도 ‘형, 이거 좀 이상한데’ 하면 다시 처음부터 믹싱을 시작했으니까.

 

: 마스터링까지 소닉붐 스튜디오에서 황경수 엔지니어와 한 것은 조금 의외다. 해외의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컨택해서 진행하는 이유를 보면, 녹음과 믹싱까지의 과정과 다른 아티스트가 노력해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인상이 있다. 마스터링은 소위 음장감이랄까, 믹싱까지 큰 소리로 작업할 때까지 느껴지던 힘 있는 사운드가 마스터링을 하면서, 즉 CD에 담길 수 있는 볼륨으로 소리 크기를 줄이게 되면서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전까지의 작업물이 가지고 있던 큰 소리의 힘이 강렬함이 사라진다는 거다. 그래서 전체적인 볼륨이 줄어들더라도 원래 아티스트가 의도했던 펀치감과 파워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마스터링 기술에 대한 고민들이 크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헤비니스 계열의 음악은 다른 음악보다 한국에서 마스터링 할 경우에 파워에 있어 손실이 크다는 인상이 있지 않나?

 

: 무엇보다 우리 새 앨범이 기존의 헤비메탈 음반과 사운드가 많이 다르다. 좋은 면도 있고, 물론 그 과정에서 정통적인 메탈 사운드가 아니기에 가진 단점도 있을 거다. 우리가 고민해서 만든 이 사운드가 가진 장점들을 해외 엔지니어나 기존의 마스터링 엔지니어에게 맡기면 혹시라도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었던 거다. 우리 음악의 장르는 헤비메탈이니까 마스터링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기존 헤비메탈을 레퍼런스 삼아 마스터링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 음악은 헤비메탈이긴 하지만 기존의 헤비메탈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낸, 적어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 시도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마스터링을 하면서 혹시 표현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했다. 열 번을 생각해봐도 그 방식대로 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8집 때처럼 우리가 좋아했던 그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를 담았다면 당연히 해외에 보냈겠지만, 요번에는 새롭게 시도한 이 사운드가 마스터링에서 깨진다면 이렇게 노력할 이유가 사라진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사운드가 무엇이었는지 같이 하며 제대로 알고 있던 황경수 엔지니어에게 우리의 소리를 살려낼 수 있는 작업을 맡긴 거다. 주변에서도 정통 사운드 레퍼런스로 헤비메탈답게 마스터링 하는 것의 장점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 시도한 장점을 놓칠 가능성을 선택하느니 검증받은 마스터링의 장점을 포기하고 경수와 우리가 직접 마스터링을 하는 길을 택했다.

 

: 그런 새로운 시도와 노력의 장소였던 소닉붐 스튜디오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울 것 같다. 황경수 엔지니어 개인은 다른 곳에서 또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 아마 소닉붐에서 만든 마지막 정규앨범이 우리 작업일 거다. 다른 팀들의 싱글 녹음은 더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한 장의 완결된 정규앨범 작업은 싱글과 좀 다른 것이기 때문에.

 

: 믹싱 완성 파일을 보면 ‘□□□-7’까지 나온다. 경수가 밤새도록 최선을 다해 작업해서 보내준 파일을 듣고 컨펌 하지 않고 돌려보내고, 또 작업하고, 7번을 한 거다. 7번까지 믹싱을 뒤집으며 다시 작업한 게 이번 앨범에 8곡 정도 된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만큼 서로 까다롭게 굴면서 작업했다.

 

: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데, 나의 감상에는 기존의 블랙홀과는 확연히 다르긴 한데, 그 방향이 어디에도 없던 소리의 요소를 조합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A.O.R.(Adult Contemporary Rock)에 가까운 경향성이 있다. 1980년대에 등장했던 장르로서의 A.O.R.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메탈 사운드라고 할까? 이 정도의 깊이와 조금씩 다른 그 시도의 의미를 알고 즐기려면 청자 역시 록의 역사나 사운드의 흐름을 이해해야, 오래 록을 들은 사람이라면 더 제대로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달까? 물론 그런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이지만, 알면 더 즐길 게 많은 음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 그럴 수도 있겠다.

 

: 공감하는 게, 블랙홀의 이전과 확실히 다른데, 가만히 뜯어 들어보면 예전부터 블랙홀이 해 온 게 어떤 식으로건 다 들어있다.

 

: 이번 앨범에는 기타 솔로, 베이스 솔로 모두 예전과 비교해보면 조금씩 들어있다. 기타리스트의 입장에서 예전에 사용하지 않던 연주 기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그것을 함축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의 기타 솔로는 짧아도 굉장히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어렵다. 연주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 이를테면 태핑과 같은 경우도, Guthrie Govan이 최근에 자주 선보였던 스타일의 태핑을 연구해서 우리 음악에 접목시켜봤다. 나 뿐 아니라 원재의 기타 연주도 블루지한 원래의 스타일에서 훨씬 감각적인 스타일로 변화했다. 좀 더 모던해진 연주라고 할 수 있을 거다.

 

: 앞서 얘기한 「Dimention」에서 이원재의 기타 솔로가 그런 예가 아닌가 싶다. 이원재 스타일이긴 하지만, 기존의 이원재 기타 연주 라인과는 다른다.

 

: 맞다. 이원재의 기타는 이원재만의 색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이원재 기타 솔로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 이원재의 기타 솔로도 이원재의 연주인 걸 알 수 있지만, 이원재의 기존 솔로하고 다르고, 마찬가지로 주상균의 기타 솔로도 주상균의 연주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기존 주상균의 연주와 확연히 다르다. 예전 주상균 기타 솔로는 프레이즈 후반부가 되면 양손 태핑, 그것도 화려함을 강조한 태핑을 엄청나게 강조하곤 했다. 이번에는 그런 부분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예전에 벤딩으로 감정을 살리던 이원재의 연주에 양손 태핑이 자주 등장한다. 이원재는 이전과 달리 감각적인 솔로로, 주상균은 오히려 멜로디를 강화하는 솔로로 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기타 연주가 변했는데, 합쳐놓고 보면 서로 많이 닮아진 느낌이다.

 

: 그렇다. 맞다. 그런 면이 분명 있다.

 

: 거의 즉흥으로, 정신없이 연주했는데 그런 평가가 나올 수도 있구나. (웃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니까.

 

: 이번 앨범 앞에서 물어봤어야 할 질문인데, 잊고 있었다. 블랙홀은 재작년 4.19 기념식 무대에 오른 적도 있고, 한국의 역사를 노래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우리의 역사의 가장 아픈 고리, 어두운 현실들을 음악으로 승화시켜왔다. 다양한 집회 현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고. 그런데 이번 앨범은 미래에 대한 얘기다. 블랙홀이라면 미래라 하더라도 밝아보이는 희망 속 어두움을 조망할 것 같은데, 수록곡의 가사는 예상 이상으로 희망적이다.

 
 

: 어떤 철학자의 미래 예견 중에서 크게 공감했던 게, 만일 미래에도 인간이 계속 유지된다면 인간들의 정신세계가 바뀌어 있을 거라는 거다. 안 그러면 인류는 미래에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지금 우리를 보라.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지 않나. 그런 인간세계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처럼 물질세계의 가치만을 계속 추구해서는 버틸 수 없고, 정신세계 자체가 바뀌어야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갈등, 학살, 욕심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나는 그게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미래에도 살아있다면 그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 그 바뀐 세계가 유토피아가 아닐까.

 

: 앨범에서 가장 감동적인 가사가 「Utopia」 마지막 절의 “은하계 너머로 가서 찾은 게 아냐/ 시간을 뒤져서 발견한 것도 아냐/ 모두의 가슴에 담겨 있었던 거야/ 희망이 이뤄낸 유토피아”라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의 음악도 이 가사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미래를 표현하는 악기가 미디나 가상악기가 아니라 기존 블랙홀의 음악 속에 담겨 있던 요소를 새롭게 조합해낸 것이지 않나. 유토피아 역시 세상 어디에도 없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다 담겨 있던 것들이 유토피아의 진짜 요소라는 거. 그런 면에서 보니 「마지막 일기」처럼 광주민주항쟁의 처절했던 역사를 직접 얘기하고 있지 않아도, 미래가 희망으로 다가 오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경험에 담긴 의미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 그렇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말 내 속에 들어왔다 간 것처럼 해줬다. 사실 어둡고 힘든 그 시간을 버텨낸 사람들의 염원이 모여서 미래의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 수록곡에 대한 티저 영상을 직접 만들고 있는데, 그런 느낌으로 작업 중이다.

 

: 티저가 조금씩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다. 나의 경우는 앨범을 미리 들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팬들 입장에서는 흥미롭게 다가올 거 같다.

 

: 사실 티저도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 정식 뮤직비디오는 아니지만 팬들에게 우리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거다. 저작권 문제없는 영상을 모아놓은 사이트에서 우리 음악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과 가까운 영상을 조금씩 가져다가 내가 만들고 있다. 유튜브에 블랙홀 공식채널도 만들고 ‘블랙홀 TV’라고 우리의 일상을 담은 영상도 올리고 있다. 공식 뮤직비디오를 만들더라도 우리가 직접 만들 거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하고 싶다. 예전 방식으로 힘들게 뮤직비디오를 제작해도 변별력도 없고, 전달될 채널도 별로 없다. 차라리 유튜브에서 팬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새롭게 해보려 한다.
 

 


: 쉽지 않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항상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지만. 연주부터, 녹음, 앨범 제작, 이제 티저까지 이번에도 새롭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 같다.

 

: 블랙홀에서 수많은 녹음을 했지만, 8집 녹음할 때 Victor Smolsky와 하면서 가장 빡세게 녹음했다. 곡도 그랬고.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건 다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9집은 음악의 색깔만 좀 다를 뿐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 8집 때 우리가 녹음할 때 정말 힘들었잖아요.

 

: 정말 힘들었지.

 

: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쉽게 녹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다. 그나마 6집 『The Way』 (1998) 때? (웃음) 그 때는 거의 모든 연주를 원 테이크로 갔다. 리프는 대충 서서 치고. (웃음)

 

: 그 얘기 하니, 6집 녹음 때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그... 느린 곡, 뭐였지? Am 진행하는.

 

: 「널 위한 이별」.

 

: 맞다. 그 곡 앞에 “기다리지 마”로 시작하기 전에 길게 한숨처럼 숨소리가 나오면서 감정을 살리고 “후~~~ 기다리지”로 가는 걸로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해놓았다. 그런데 마스터링을 하러 갈 때, 상균 형이 일이 생겨서 원재와 둘이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간 거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데, 내가 그 앞에 숨소리와 이어지는 “후우~~~ 기”하는 부분을 그냥 “기다리지 마”로 작업을 하게 그냥 놔뒀다. 그 작은 소리에 담긴 감정을 놓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음악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음악에 담긴 감정에 얼마나 민감하고 소중한 지 아는데, 음악 하는 사람이 그걸 그냥 날린 거다. 음악에서 그런 작은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아는 데도.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 그랬었나? 왜 그랬지? (웃음)

 

: 6집 때 그랬었다니까. (웃음) 녹음 다 끝내놓고 믹싱한 거 들고서 얘(이원재)랑 나랑 둘이 갔는데. 형은 안동 갔었고. 마스터링을 하면서. (한숨)

 

: 새벽이었다. 마스터링 스튜디오 분위기도 이상했고. (웃음)

 

: 비몽사몽이었지. (웃음)

 

: 생각해보면 옛날 녹음은 그랬다. 8집 할 때부터 정말 녹음실에서 연주 하나하나 엄청 신경 많이 쓰고. 다시 연주하며 완벽하게 만들려고 신경 엄청 곤두세우게 되었고.

 

: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점점 진화해 온 거라고 생각한다.

 

: 8집 녹음 할 때는 컴퓨터 모니터 보면서 파일로 녹음했지만, 6집 때는 릴(reel)로 녹음하던 시절이다.

 

: 6집 녹음하던 시기면 1997년, 98년 무렵 아닌가?

 

: 디지털 녹음이 막 보편화되기 시작하던 때다.

 

: 디지털 녹음이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던 시절인데, 블랙홀은 오히려 아날로그 녹음으로 돌아갔던 게 인상에 깊이 남아있다.

 

: 아날로그 릴 테이프로 다시 녹음했었다.

 

: 맞다. 그 때 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었다.

 

: 어쩌면 그 때 우리도 디지털 녹음을 했다면 그만큼의 음반이 안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다들 디지털 녹음을 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익숙하지도 않았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 그것도 사실이다.

 

: 아날로그라서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실수도 있었다. 녹음하다가 당구 한 게임 치고 밥 먹으며 반주 한 잔 했는데, 어시스턴트 엔지니어가 취한 거다. 부스 안에서 연주 한다고 얘기하고 녹음 되는 줄 알고 신나게 연주했는데, 이 친구가 취해서 레코딩을 안 한 적도 있었다.

 

: 그 친구 오버더빙 하다가 그 전에 녹음한 거 날려먹은 적도 있었지. (웃음)

 

: 콘솔에 내가 앉아서 녹음한 곡이 서너 곡 될 거다. 그 친구보다 내가 더 잘했다. 곡을 다 아니까, 어디서 뭘 끊고 어떻게 할지 더 잘 아는 거다. (웃음)

 

: 예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거의 인터뷰에서도 많이 이야기 되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7집과 8집 녹음 때 해외 인력의 도움을 받았었다. 7집 『Seven Sign』(2000) 때는 일본인 엔지니어 Kondo Keiji를 초빙했고, 8집 『Hero』(2005) 때는 Smolsky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런 경험이 그 이후의 블랙홀, 아니면 이번 앨범 작업에 어떤 영향이 있었나?

 

: 글쎄, 경험? 좋은 경험? 7집 때 Kondo도 좋은 경험, 8집 때 Smolsky도 좋은 경험. 9집에서는 그런 경험이 쌓여서 멤버들과 소통하면서 더 진짜 우리 색깔을 만들어 간 거라고 본다. 7집 녹음 때는 젊은 일본인 엔지니어의 실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우리 음악으로 실험을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지에서 황제까지」에 우리가 써보지 않았던 보컬 이펙터를 넣어보자고 제안해준 것도 그 친구였지만, 녹음 시작하기 전에 Sepultura 앨범 두 장을 들고 와서 레퍼런스로 삼겠다고 했고, 우리 음악의 리듬 소리를 조정해 준 딱 그거 아니었나 싶다. 물론 사운드 이펙팅에 대한 그 친구의 고민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도 있다. 한 가지 지금도 부러운 것은 일본은 레코딩 엔지니어도 일종의 대물림을 한다는 얘기였다. 나이 많은 선배 엔지니어가 젊은 친구를 먹여살리며 기술도 가르치고 함께 고민을 하고, 그렇게 자란 후배 엔지니어가 또 다시 그런 식으로 자기의 후배에게 대물림으로 베풀고. 오랜 시간 우리나라 엔지니어를 보면서 열심히 보조로 배우며 성장하기보다, 생계의 문제로 녹음실을 떠날 수밖에 없던 모습을 보며, 일본의 체계가 부럽기도 하고, 배우고 싶었다. Victor Smolsky하고 녹음하면서도 모든 게 칼박이어야 한달까? 예전 독일 병정들이 기계처럼 느껴질만큼 오와 열을 맞춰 분열하는 모습처럼. 그는 녹음은 녹음답게, 라이브는 라이브답게 해야 한다는 개념을 배웠다.

 

: Victor와 작업하기 전까지는 Rage나 외국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연주를 정말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막상 함께 녹음을 해보니까 연주도 연주지만 녹음실에서 정말 빡빡하게 작업을, 심할 정도로 하는구나 싶었다. 녹음하면서 ‘이번 꺼 느낌이 좋아’라면 그 느낌 살리려고 그냥 넘어가는 게 우리 스타일이잖나. 그런데 Victor는 느낌으로 하는 게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소리가 구현될 때까지 오감을 이용해서 정확하게 연주하는 거였다. 생각한 소리가 연주로 녹음될 때까지.

 

: 조금 보충하자면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녹음할 때, 아티스트에게 감정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스네어 소리를 잔잔한 호수에 돌 떨어지는 거 같은 식으로 연주해보세요’, 이러면 답이 안 나온다. 짜증도 난다. 그런데 Victor Smolsky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 이후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서로 얘기를 하며 녹음한다.

 

: 이 정도 힘으로 이 정도 터치를 해서 이 정도 발란스를 맞춰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터치를 얼마만큼 약하게 해달라고 수치로 요구하는 거다. 그리고 그 요구대로 연주하면 정말 그 소리가 나는 거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수치로, 그래프의 파형으로 요구하고 그에 따라 연주하는 게 익숙치 않았다. 우리만이 아니라 한국 아티스트 대부분이 그랬었다.

 

: Smolsky랑 하면서 느낀 건 역시 시작은 기초였다. 정확한 음, 정확한 연주, 정교한 악기 세팅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앨범이 나온다는 당연한 걸 다시 한 번 배웠었다. 한 번 녹음하고 기타 줄까지 모두 교체하고 다시 녹음을 시작하는 그런 게 모두 일리가 있는 거다. 한 곡의 리듬 배킹을 이틀 넘게 녹음 하는 거다. 디스토션도 안 쓰고 앰프에 내 팔로 쎄게 쳐서 그런 소리를 만들라는 거다. 팔이 얼마나 아프던지. 그런데 믹싱을 하고 나서 알았다. 어떤 소리도 대충 퍼지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어려서 감동했던 해외의 명반에 담겼던 그 정교한 연주 소리를 우리가 만들어 냈던 거다. 9집은 바로 그 느낌을 더 강하게 밀어 붙였다. 나는 Smolsky가 8집 녹음할 때, 거주지가 한국이고 초빙되어 온 프로듀서가 아니라 자기 밴드 녹음하는 거였다면, 내가 이번 앨범에서 했던 그 방식으로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베이스 한 곡을 녹음하는데 한 삼일 씩 다시 쳤다. 하루 녹음하고 그래프 열어보고, 조금이라도 정교하지 않으면 다시 녹음하고, 혹시 줄 때문에 감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진 거 같으면 줄 다시 갈고 다시 처음부터 녹음하고.

 

: 맞다. 8집 때 우리가 배운 게 그거였다. 7집까지 우리가 7장을 녹음한 나름 우리도 프로지 않나. 그런데 Smolsky가 녹음 첫날 기타 치는데, ‘어~ 어~’하면서 자세부터 다시 잡으라는 거다. 우리라고 모르겠나. 그 친구는 정말 애처럼 기타의 기초를 강조했다.

 

: 8집 녹음하면서 처음에는 나도 경력이 있기 때문에 반발심도 있었다. 그래서 작업 초기에 갈등도 있고,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소리로 증명이 되었다. 그 경험이 있어서 9집을 녹음하자고 스튜디오에 들어가기로 결심할 때는 그런 자세가 당연한 우리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8집보다 9집 녹음 작업이 두 배는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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