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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취향Y》 선정 2019년의 신인 아티스트 “애리” : #3. Airy'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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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Work-Life Balance 
 

“제가 루틴 관리를 너무 못해요. 10대 후반부터 쭉.”

 

: 이제는 애리라는 뮤지션의 생활적인 면을 좀 여쭤볼까 해요. 다른 전업이 있으신지요?

 

: 전업까지는 아니고,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어요.

 

: 보통은 음악을 한다고 하면, 현업 있으면서 병행하곤 하잖아요. 그것이 오래 걸린 이유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병행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면 자기만의 생활적인 루틴이 있거나 그래야 자기만의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작품활동 할 때의 습관, 혹은 현업에서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한 그런 루틴. 그런 게 좀 있을까요?

 

: 제가... 그 루틴 관리를 너무 못해요. 10대 후반부터 쭉 못했어요. 좀 놓고 사는 면이 없진 않아요. 나름 재미있어 하는 일은, 루틴 관리를 못해서 심신이 지쳐있어도 좀 무리해가면서 하는 거죠.

 

: 그러니까 굉장히 소모적이네요. 앨범 같은 걸 제작하려면 자기 에너지 이상을 쏟아 부어야 나오고.

 

: 그래서 오래 걸린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확실히 루틴이란 건 중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좀 더 건강하고 욕심만큼 앨범을 자주 내거나 하는 그 밸런스를 맞추고 싶어요. 사실 작년에 처음으로 아침 여덟시에 출근하는 일을 해봤어요. 그것까지 해서 총 쓰리잡이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래서 그걸로 앨범도 만들고... 그런데 올해는 그 음악작업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어서 1년 계약하는 건데 올해 그 일을 다시 지원하지 않았어요.

 

: 저 같은 경우에는 정규 앨범을 세 개 냈는데, 그걸 되돌아보면 예를 들어 편의점 알바할 때 남아도는 시간이 많았을 때 앨범을 다 만들었더라고요. 그리고 학교 땡땡이 치고 《한잔의 룰루랄라》에 시간 때우면서 앉아있을 때라든지... 이제 전업으로 뮤지션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레슨도 일로 친다면 먹고 사느라 바빠서, 공연하고 레슨하느라 곡을 하나도 못쓰고 있어요. 그 루틴관리 저도 잘 못해요. 나도 정말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루틴을 지키는 걸 보면 너무 신기하고 부러워. 작업실을 구해서 무조건 몇 시에 출근을 한다든가. 아니면 단편선처럼 어느날 갑자기 짐을 싸서 태백으로 내려간다든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답인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 작업할 시간 부족해서 돈 많이 버는 일을 지원 안했는데 막상 올해 걱정이긴 해요. 돈이란 게 살아가는데 진짜 너무 중요하니깐.

 

: 맞아요. 이 부분에서 고민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뭐 현재로서도 환경은, 인디가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현실은 나아진 측면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리고 들어보면 예전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도 하더라고요. 조그마한 클럽에 찾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이 줄었대요.

 

: 어쨌든 멜론 탑 100이 대부분이고. 당연한 거겠지만 6분짜리 곡을 만드는 것보다 3분짜리 곡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많이 듣잖아요. 물론 자기가 하는 음악에서 타협을 하는 경우를 욕할 수도 없긴 하지만. 그래서 그것 때문에 뮤지션들이 많이 힘들어들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애리님이나 키라라님도 그런 측면에서 고민이 많지 않을까. 그래서 이 질문을 드렸었어요. 그러면 건강관리도 좀 안되겠다.

 

: 맞아요. 그 루틴에 건강도 있고 생업도 있고... 그런데 또 제가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러니까 늦게까지 친구들이랑 있고 사람들 만나고. 그러면서도 작년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고 앨범 작업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음악도 음악인데, 영화 감상글도 좀 많이 쓰셨어요?

 

: 맞아, 애리 영화 정말 좋아해요.

 

: 전 놀랐어요. 왓챠에서 평을 많이 쓰셨더라고요.

 

: 한 10개정도 쓴거 같은데? 많이 쓴 건가요? (23개 썼음)

 

: 그런데 사실 쓰는 건 어떻게 보면 우리 쪽 일이고(웃음) 일과 취미는 다른 측면이라...

 

: 제가 옛날에 영화감독이나 영화평론가 되고 싶다고 많이 그랬어요. 그런데 실제로 촬영 현장 가볼 기회가 생겨서 가봤을 때, 그 욕심이 아쉬움도 없이 바로 사라졌죠. 감독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느껴졌어요. 그리고 평론가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즐기기도 했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음악가보다는 괜찮다고 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는 그냥 보는 것을 즐기는 걸로.

 

: 앨범 소개에도 Richard Linklater 작품인 《웨이킹 라이프 (Walking Life)》(2000)를 언급도 해주시고. 페북에 오늘 또 글을 올리셨는데 영화 감상글이더라고요. 《멜랑콜리아(Melancholia)》(2011).

 

: 근데 그 감독. Lars Von Trier 에게서 ‘미투’ (Björk이 성추행을 폭로) 가 터져서 좀 슬프긴 한데. 예전엔 사실 그 감독 작품을 봤을 때 어떻게 이렇게 여성의 삶을 잘 알까 싶어서 너무 놀라웠거든요.

 

: 저도 Lars Von Trier 감독 좋아하고 《멜랑콜리아》는 물론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2000)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딱 그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보니깐 아까 본 뮤직비디오랑 감독의 세계관이 좀 연결 될 것 같아요. 《멜랑콜리아》도 멸망을 다루고, 뮤비에서도 모든 게 다 리셋되고... 그런 세계관에 대한 로망이 있으실까 하는 생각이 방금 들었네요.

 

: 어... 사실 아주 어렸을 때 우주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 지금은 또 관심있는 것 같기도? 뭐 《멜랑콜리아》 개봉하고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 당시 개인적인 일로 우울하고 너무 슬프고 그랬는데, 감상하면서 개인적인 괴로움이 없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더 무거운 마음이 되는 기분? 더 큰 종말이나 이야기 앞에서 제 개인적인 힘듦은 아주 작게 느껴지구...

 

: 저도 그 감독이 늘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스토리 진행을 보이지만 이를 통해 매번 구원을 갈구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 네. 그런 것 같아요.  



Dear Kirara
 

“저의 많은 것을 말하고 주고받은 친구는 키라라예요.”

 

: 좀 뻔한 질문이긴 한데, 제일 친한 뮤지션이 누구에요?

 

: (키라라를 보며) 키라라요!

 


: 혹시 다른 분들은?

 

: 음... 지금 이 정도로 친한 사람은 키라라인 것 같아요. 물론 자주 만나는 사람이나 뭉치는 친한 사람들이 있어요. 되게 응원받고 서로 으쌰으쌰 이런. 가끔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별일 있거나 별일 없거나 일주일의 절반 이상 정도를 보고 저의 많은 것을 말하고 주고 받은 친구는 키라라예요.

 

: 서로 푸념을 많이 했어요.

 

: 어떻게 만나신 거에요?

 

: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연대하다 만난 것이 처음이었죠?

 

: 그 이후에도 공연을 한두 번 같이 하다가.

 

: 이제 기억도 잘 안나(웃음)

 

: 제가 2년 전에 엘스 레이디스(L’s Ladies) 라고 해서 여성으로 이뤄진 팀끼리 공연을 기획하고 싶었어요. 그 때 처음 같이 했던 사람이 하이브리드드롭봄버라는 펑크 밴드와 도마씨, 그리고 키라라였거든요. 그전부터도 키라라에 관심이 있던 것 같아요. 제가 키라라 음악을 좀 좋아하기도 하고. 서로 푸념도 많이 하고.

 

: 사회 문제에 관한 같은 푸념이었나요 아니면 개인적인 푸념이었나요?

 

: 둘 다?

 

: 근데 우리 둘이 했던 푸념이 서로 같은 푸념...은 아닌 것 같아.

 

: 그렇지. 같진 않지.

 

: 다른 푸념이었어요. 굉장히 다른 푸념인데 서로 그걸 이해 해서 이렇게 친해지게 된 것 같아요.이 다르다는 게, 좀 직접적으로 말하면 트랜스젠더로서의 일과 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일은 너무 다른 일이잖아요.

 

: 그것이 말로 통했어요? 아니면...

 

: 네 말로 통했어요. 그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아요.

 

: 애리님은 술을 안 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통 그런 얘기는 술을 마시면서 하지 않나요? 푸념 같은 것.

 

: 그런데 애리랑 친한 사람은 다 아는데, 애리가 술을 한모금도 안하면서도 술 취한 사람처럼 너무 잘 놀아요. 모두가 깜짝 놀라요. 저도 그랬고. 사람들도 ‘이 사람이 술을 안마시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아요.

 

: 좀 형식적인 질문이긴 한데요. 앞으로 같이 작업 하실 생각 있으세요?

 

: (키라라에게) 나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아.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나는 관심이 있는데... 뭔가 불편하게 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하고.

 

: 내 생각에는 같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로의 일은 도울 수 있지만. 예를 들어서 애리의 곡을 리믹스 한다든가 전자음악을 가르쳐준다거나. 그런데 같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

 

: 알지 (웃음)

 

: 나의 생활신조 같은 거야. 그냥 ‘친구랑 같이 일하지 말자.’

 

일동 : 아아

 

: 결합한 적은 없지만 결별선언인데요 (웃음)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데, 혹시 키라라님은 (자기 음악에) 원하는 목소리를 찾고 계시지 않나요?

 

: 단 한 사람 있어요. 코스모스슈퍼스타. 저는 그 사람과 일해야 해요.

 

(이 분 이십니다)
 

: 정말 이 얘길 많이 해요.

 

: 전 코스모스슈퍼스타의 목소리를 빌려서 앨범을 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인데... 또 이게 그분한테 부담이 될거 같아서... 이런 거 인터뷰에 넣어도 되나요? 아... 같이 하고 싶다고 질러버릴까?

 

: 지르세요. 자신 있게.

 

: (심호흡을 한 후) 질러버리자. 같이 하고 싶어요.

 

: 그래, 그 다음에 불편했다고 그러면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는 거야.

 

: 어 사죄하면 되지. 아무튼 그분이 곧 자기 앨범 나온다고 했거든요? 그 앨범 나온 다음에 이제 내가 데려간다. (일동 웃음)

 

: 이건 어디서 공언한 적은 없으시죠?

 

: 네, 어디가서 말한 적은 없어요.

 

: 친구들한텐 좀 말했었는데, 코스모스 슈퍼스타님에게는 잘 못하겠다고. 수줍어서.

 

: 그래도 우리 썸 되게 많이 타. 그분도 빨리 곡 써서 줄게 이런 얘기 막 하고 그래.

 

: 밀당하고 계시는구나.

 

: 네,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음악에 노래를 부를수 있는 사람은 코스모스슈퍼스타밖에 없어요. 아니면 내 목소리.

  


What I See
 

“모두가 어느 정도는 방관자라고 생각해요.”

 

: 이건 뮤지션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질문인데요. 솔직히 말하면 애리의 음악은 현재 음악시장에서 살아남기 수월한 음악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음악생활을 계속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타협을 감수해야 할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포크는 카페에서도 공연을 할수 있지만, 록은 공간적 제약을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지속 가능성을 내다 볼 수 있는 경우도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좀 들어보고 싶어요.

 

: 고민 많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시작하면서는 부, 명예, 돈 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단지 행복했거든요. 남들이 그런 것에 왜 신경 쓰는지도 몰랐어요. 나쁘게 보지는 않아도. 그런데, 안 해봐서 몰랐던 거지, 이게 목적이 아니라 음악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수단이 됐을 수도 있겠구나. 이걸 깨닫게 된 거예요. 저도 음악을 계속 하는게 목표니까...그리고 타협이라곤 하지만 짧은 곡도 좋아하고, 아직 구현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제가 좋아하는 느낌은 이것보다 넓거든요. 그래서 좀 더 수월하고 살아남는 데에도 결이 맞는 그런 것들도 하고 싶어요.

 

: 그러니깐 요약하면 뮤지션을 지속하고 싶다. 이렇게 결론지어도 되는 거죠?

 

: 네, 아직 할 것도 많고 지금까지는 음악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느낌이에요. 지금 생각에는 평생 짝사랑할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음악을 시작할 생각도 못했다가 늦게 시작했고, 아직 못다한 느낌이니까.

: 그리고 아까 오독 얘기도 나오고 해서 하는 조금 민감한 얘기긴 한데... 특히 홍대에서 여성뮤지션이 혼자서 활동을 한다고 하면 불쾌한 부분이 굉장히 많이 생기거든요.

 

: 어 너무 많았어요. 굉장히 많이.

 

: 역시 가장 관심 있는 사회 문제는 여성 인권 문제일까요?

 

: 예, 어쩔수 없이. 그러니까 제가 살고 싶은 대로 못살아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많은 억압이나 제약을 참을 수 없어 깨는 순간이 있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음악이었고. 그런데 오히려 그걸 깨고 나서 음악가로서의 저를 깨우는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에 절절하게 맞닥뜨린 적이 많았어요. 그 전에는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신경을 별로 안 썼거든요. 그런데 음악을 시작하면서, 처음엔 선을 지키면서도 모두가 반가웠어요. 환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랬지만 음악을 하고 싶어서 했던 아주 옛날의 시도 때부터 심하게 불쾌한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점점 크고 작은 일들이 쌓이고 힘든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여자'이기 이전에 사회적으로 다른 남자들처럼 똑같은 음악가로 교류하고 싶은데 그게 아닌 경우가 많았아요. 그래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 그렇군요.

 

: 사실 저는 좀 소시민 같았어요. 분노스러운 일에 마음이 가도 소극적으로 응원하는 입장의 인간. 그 땐 지금보다 문제를 말과 글로, 특히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제 인생에서도 소소하게 그런 여성 문제가 쌓여있고, 어릴 때부터 권위에 눌리는 것에 예민하긴 했지만, 정말 많이 위험하다 할 정도로 겪어본 적은 없었거든요. 성폭력이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건 공기처럼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잊고. 직설적으로 소리내어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했어요. 내 일이든 남 일이든 소리내본 적도 있는데, 결국은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음악활동하면서 겪은 일이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도 있어요. 예전에는 그토록 원하던 음악을 하지 않고 살았으니 음악과 관련해서 그런 문제를 겪어본 적도 없는 거죠. 그런데 음악을 하면서, 내가 여기서 뮤지션으로서 존재하고 싶은데, 동등한 음악가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대상화 되면서 너무 많은 일을 수년간 한꺼번에 겪으니까. 그러면서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더 예민해진 것 같아요.

 

: 가볍게 질문 드리는 건데, 사실은 여성 뮤지션들이 아까 말한 엘스 레이디스처럼 그런 연대들을 많이 하잖아요. 키라라님이 참여했던 ‘마음의 봄’ 프로젝트도 있고. 최근에는 에고펑션에러의 김민정님도 그런 관련 기획들을 구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살펴보면 이런 개인적인 생각으로 하는 기획이나 연대는 꾸준히 이어가기 힘든 부분이 많더라고요.

 

: 맞아요. 우리끼리는 연대를 해도, 사람들이 그리 관심 있어 하지는 않죠. 이건 말하기가 좀 조심스러운데, 각자 공감하고 분노하는 부조리나 '정치'라고 불리워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쉽게 내면서도 이런 (여권) 문제에 대해서는 왜 다르게 읽혀지는지 조금 아쉽고, 억울하기도 해요. 제가 또 생각한 것은 제가 아는 사람들 한해서 저 포함해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방관자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살아가고 싶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 거의 모든 사람들과 싸워가며 살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어떤 문제에는 연대하더라도 다른 문제에는 무슨 이유에서든 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모두 있더라구요. 제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문제에 저도 그렇고. 에너지가 많이 떨어진 시기가 있었어요. 안 그래도 대상화되어서 겪는 일들이 앞으로도 많을텐데 음악하기 전이든 음악하고 나서든 내가 조금 문제제기를 했다고 불이익받는건가 싶은 상황도 있었구요. 분노하고 매일 울고 슬퍼하고 원망하다가 지쳐서 어느 순간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인정도 받고 돈도 벌고. 내가 생존하고 음악가로서 생산하고 싶으니까 어느정도는 뭘 알고도 모른척 하고. 사회적으로 무서운거죠. 그래서 지난 몇년간 수면에 올라온 이야기와 특히 작년 초 미투운동에 많은 용기를 얻고 감사했어요. 나는 무서워서 내가 겪은 일에서마저 어느 정도는 방관자인데. 나도 내가 원하면 좀 더 말하면서 살아도 되겠구나. 살아가고 싶으니까 얘기 못 했는데, 역설적으로 살아가고 싶으니까 얘기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또 자세히 보면 어느 정도 음악으로써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대륙》을 빼고 거의 다 남자에요. 그러면 그들끼리 편한대로 모여요. 물론 모이는 분들 중 남자가 아닌 분들도 있지만, 제가 듣거나, 겪었을 때 대상화되는 일이 종종 있죠. 칭찬을 하더라도 대상화된 칭찬.

 

: ‘여자치고 잘하네’ 이런 것?

 

: 네. “어! 되게 너 특이한 여자애다”, “다른 여자애들이랑 다르다”,  그런데 이건 칭찬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가 대상화 되는 거죠. 음악 듣고 2시 3시까지 놀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거든요. “진짜 특이한 여자애다. 집에를 안가” 같이 말하거나. 처음에는 그런거를 '그냥 기분 좋게 듣자' 이렇게 했는데, 그런 말이 계속 반복되는거죠. 처음 만났을 때에도 "밝으십니다" 이럴 때 "감사합니다" 이러다가도 두세번 반복하면서 "정말 밝으시네요. 자주 오셔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세요" 그러니깐 저만 여자일 때. 그래서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도 계속 대상화를 하면서 얘기를 하다가 또 “왜 집엘 안가? 여자애가?”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아니 억울해요. ‘다 안가고 있잖아요 저도 노는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데’ 라고 얘기하면 “아니 그게 아니라 특이하다는 거지. 그거 자체가” 그러니까 그건 저를 좋게 생각해주시는 알겠지만... 그것을 어디서 깨달았냐면 그들이 절 칭찬할때였던 것 같아요. 인격적이든 사회적이든 음악적이든 칭찬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저를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될 애 정도로 생각을 해요.
  

: 그러니까 애리씨를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거네요.

 

: 그러니까 (여자)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연애 안하냐고 물어봤을때도 그런 생각이 크게 드는거죠. “뭐 연애할 생각 없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에이 여기저기 다 찍고 여기서도 한명 물색하러 온거 아니야?” 이런식으로 다시 물어보고. 그 사람들 다 서로 좋아서 모였고 음악이 좋아서 지금 모이고 말하고 있는데, 왜 저만 여기서 물색하는 여자가 되고,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가지면 다른식으로 연결지어서 말하고. 저도 동일한 친구, 동료이고 싶은데 그것이 좀 불편해요.



 Epliogue 
 

“조금 수월하고 건강하게.”

 

: 잘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 공식적인 인터뷰는 마무리가 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계획이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사실 계획이 구체적인 것은 없는데요. 마음가짐이 지금 계획이에요. 처음 공연하고 앨범 내기까지의 저의 마음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면서 살자’였고, 지금은 그와 동시에 플러스로 ‘조금 수월하고 건강하게 지내자. 앨범에 대해서도.’ 건강해야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네요. 그 부분이 좀 정립이 되고 싶다.

 

: 그리고 이제는 (키라라를 보며) 이렇게 옆에 있으면 고맙고 자극이 될 만한 동료들을 만난 것 같아요.

 

: 다 비슷한 사람들이다. 다 혼자 일하고 어디에 못 섞이고.(일동 웃음)

 

: 애리가 이 앨범 만들면서 엄청 많이 바뀐 것 같아요. 2018년 한해에.

 

: 어떻게 바뀌었어?

 

: 강해졌지. 오늘 하는 인터뷰 좀 봤을 때 “와! 애리 강하다!” 라고 느꼈어

 

: 저희가 좀 좋은 영향을 끼쳐드렸을까요? (웃음)

 

: 예. 인터뷰도 잘 됐다고 생각하고, 하여튼 그래서 그냥 앞으로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애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점점 더 건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난 애리가 너무 좋아!

 

: 메시지는 잘 모르겠지만 건강한 건 좋아(웃음)

 

김, 정 :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애리 「낡은 우편함」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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