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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魔王 #21] 존재와 세상, 그리고 사랑을 탐구했던 어느 철학도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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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Prologue


지난 11월 13일, 어느 음원 포털이 주최한 음악상 시상식에서 신해철을 추모하기 위한 코너에 등장해 애도의 말을 대표했던 넥스트에서 가장 오래 기타리스트의 역할을 맡았던 김세황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그 분의 음악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그 분은 노래 한 구절 어디도 허투루 
  쓴 적이 없었습니다. 청춘을 노래했고 인생을 응원했던 분입니다.”

마왕의 바로 곁에서 오랜 기간 오른팔의 자리를 지켰었던 그의 이 말은 개인적으로도 10대 중반부터 그의 음악들과 함께 성장해왔고, 그의 음악들에 청춘을 빚진 내게도 절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당신이 신해철의 음악을 사랑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진 그 빚의 절반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꾸준히 추구해왔던 아티스트로서의 도전정신과, 록의 포맷을 기반으로 한 화려하고 매력적인 선율들의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들이 그를 남녀 가릴 것 없이 ‘동네의 멋진 형, 또는 오빠’처럼 받들게 만든 나머지 절반의 힘은 바로 그가 만든 노래 속에 남긴 그 수많은 노랫말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유(思惟)의 힘’ 때문이었다. 꼭 ‘철학’이라는 그의 대학 전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나 ‘인생’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며 넓게는 그와 우리가 함께 밟고 살아온 이 세상, 특히 대한민국 땅의 현실에 대해 계속 음악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그 여정의 고독을 이겨낼 ‘사랑’을 갈구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의 가사 속에 담긴 이런 거대한 흐름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인식하는 삶이야말로 세계의 궁핍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다” (by Wittgenstein)


1. 존재(Being)
    ‘자신(Myself)’에 대한 성찰로 출발해 ‘꿈과 자아의 수호’를 삶의 가치로 삼다.


돌이켜보면 신해철의 노래 가사는 그가 대학가요제를 위해 결성했고, 그를 단숨에 가요계의 중심에 서게 만든 밴드 ‘무한궤도’시절부터 당대의 10대 청춘들에게서 나올 수준의 것 그 이상의 단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대에게」의 가사를 단지 청춘의 벅찬 사랑 고백으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무한궤도가 프로페셔널 밴드로 계약을 맺고 발표한 유일한 앨범 속의 타이틀 곡 「우리에게 생이 끝나갈 때」에서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라고 자문하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 대답할 수 있나 /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노라고” 라는 존재론적 성찰을 청자에게 요구하는 노랫말을 대중에게 던질 수 있다는 건, 당시 그의 연령대의 싱어송라이터가 보여줄 수 있는 수준 그 이상이었다. 물론 동아기획이나 하나뮤직 쪽 음악들에도 이런 사유를 담는 가사들은 일부 존재했지만, 이제 막 20살 갓 넘은 청년의 패기는 감히 ‘개똥철학’이라 폄하할 수 없는 진지함으로 넘쳐났고, 기존 가요계에서 분명 보기 힘든 것이었다.


패기로운 시절의 신해철


솔로 가수 시대로 넘어와서도 신해철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명제에 오히려 더욱 집착하는 태도를 노랫말 속에서 보여주었다. 가장 사랑노래 가사로 넘쳐났던 솔로 1집에서도 그는 “꿈결 한 가득 걸어온 세월 / 시간은 점점 빨리 가고 /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는 걸까 (중략) 내가 인생이란 이름의 꿈에서 깨어날 때 / 누가 나의 곁에 있나요.”  (「인생이란 이름의 꿈」)라고 고민하는 모습을 담았었고, 2집 『Myself』를 통해서는 최초로 그 고민을 앨범 전체의 주제의식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나에게 쓰는 편지」의 중반부 가사에서 그는 “전망 좋은 직장과 /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 돈 큰집 빠른 차 /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고 직설적으로 읊조리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물질적 부와 안정적 삶으로 달성될 수 있는가에 확실히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같은 노래 속에서 그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라는 살짝 시니컬한 냉소 속에서 자신에게도 언젠가 닥쳐올 현실세계 인생의 끝, 바로 ‘죽음’이란 명제에 대한 고민도 열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노화와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결과물은 밴드 넥스트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비록 아이러닉하게도 그 길을 먼저 가고 말았으나) 자신보다 앞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느꼈던 아버지에 대해 성장하며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수필처럼 풀어놓은 「아버지와 나 Part 1」, 그리고 「날아라 병아리」까지 계속 다양한 소재와 표현방식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당연히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은 제목 그대로 그의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주제의식을 그의 커리어 전체를 통해 가장 광대하게 담아놓았던 하나의 컨셉트 앨범이었다.


먼저 그는 3부작의 대곡 「The Destruction Of The Shell」을 통해 스스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하고 /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 그리고 「이중인격자」에서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자신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인간이 펼치는 위선과 가식을 언급하며, 「나는 남들과 다르다」를 통해서는 한국 사회 속에 만연한 획일주의를 넘어 ‘자신의 삶의 주관과 개성을 지키는 일’이 인생에서 그의 가장 숭고한 일임을 확고한 철학으로 선포했다. (“미래를 위해선 / 언제나 오늘은 참으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 현재도 그만큼 중요해 / 순간과 순간이 모이는 것이 삶인걸 /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 남들과 똑같이 살수는 없잖아 / 가슴속에 숨겨 둔 말을 해봐” )


이를 위해서는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 절망의 껍질을 깨고” (「Dreamer」) 날아가는 ‘꿈’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 후, 마지막 트랙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에 와서는 그 꿈 역시 ‘목표의 완성’이라기 보다 죽음과 함께 사라져갈 때까지 후회가 없도록 인생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매개로 결론지었다. (“세월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


물론 이 앨범 이후의 그의 커리어 전반에서도 이 앨범에서 도출했던 결론인 ‘꿈과 자기 가치관을 지키는 삶’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계속 그의 노랫말 전반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남들이 뭐래도 / 네가 믿는 것들을 / 포기하려 하거나 / 움츠려 들지마” (「해에게서 소년에게」),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은 / 너 자신을 믿는 데서 시작하는 거야 /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 완전히 바보 같은 일일 뿐이야.” (「Hero」), “때로는 미쳐보는 것도 좋아 / 가끔 아주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 내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 그런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등 수많은 그의 노랫말들 속에서 이미 그가 2000년대에 ‘100분 토론’에 나와서 주장하고 설파했던 모든 가치관의 원류는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것을 대중에게 요구했었기에, 그 명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확고해질수록 더욱 ‘세상(World)의 올바른 길’에 대해 노래할 이유를 얻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할 또 다른 주제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전이했다.




2. 세상(World)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한' 것들에 노래로 돌직구를 던지다.


분명히 인간 신해철만의 고유한 철학적 결론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존재론적 명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꿈과 삶의 주관’을 지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벽인 ‘세상’, 즉,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해 자동적으로 서술하고 그 맹점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소위 ‘386세대 운동권’이라 불리던 이들이 학생회와 사회과학 서클에서의 ‘학습’을 통해 계몽되어 세상의 부조리와 투쟁하는 흐름에 동참했었다면, 그는 자신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에서 개인의 삶을 온전하게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를 노래로 고발해 가는 과정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신해철의 사회적 비판의 시선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 넥스트가 결성된 이후부터지만, 이미 「재즈카페」와 같은 곡에서도 그런 전조는 드러난다. 인트로 가사에서 그는 정말 낮은 베이스 톤 보이스로 전하는 서구 자본주의 문명을 소비하며 ‘쿨한 척’하는 사회인들의 모습을 살짝 건드려내고 있었으니까.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 / 까만 머리, 까만 눈의 사람들의 목마다 걸려있는 넥타이 / 어느 틈에 우리를 둘러싼 / 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 /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 표면적으로는 재즈 카페 속 인간 군상들의 묘사를 마치 Billy Joel의 「Piano Man」의 가사처럼 풀어내고 있지만, 이런 재즈 카페 속에서의 소통의 단절, 그리고 동상이몽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들의 현실의 한 단면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곡의 가사는 꽤 강한 호소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그는 앞서 말한 대로 넥스트라는 록 밴드 체제 속에서 더욱 자본주의의 고도 경쟁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삶과 인간다운 소통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지적한다. 『Home』의 대표곡인 「도시인」은 그 주제의식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곡이다.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 자판기 커피 한 잔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앉아 / 점점 빨리가는 세월들”, “한 손엔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 / 회색 빛의 빌딩들, 회색 빛의 하늘과 회색 얼굴의 사람들 / This is the City Life!” ) 같은 앨범에 있는 「Turn Off the T.V.」는 현대 사회에서의 소통의 부재에 TV 등의 방송 매체가 한 가지 원인임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흔한 도시의 풍경.jpg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 앨범을 통해 존재론적 명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고 난 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The Return Of N.Ex.T Part 2 : The World』에서 드디어 세상을 향해 매우 직설적으로, 때로는 풍자와 냉소적 태도를 더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특히 첫 트랙 「세계의 문 Part.2 :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의 첫 구절은 앨범 전체의 메시지를 청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한다.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 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 무너진 백화점, 끊겨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 그 어느 누구도 비난 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


국악과 헤비 록의 융합을 시도했던 「Komerican Blues」에서 물질주의의 허상을 쫓는 대중의 허영 (“신문 사회면에 실리는 얘긴 /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남들의 얘기 / 평생 남대문엔 가본적도 없다 / 머리에서 발끝까지 상표를 달자” )을 꼬집고, 「The Age of No God」를 통해서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의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종교의 세속화에 대해 직설적으로 건드린다. (“번쩍거리는 교회에는 천국행 엘리베이터가 있다 / 들어가고 싶은가? / 입장료는 선불이다 / TV is my king, Money is my god / 이제는 무엇에 기대어 살 텐가 / 내가 남들보다 못한 게 뭐 있나?” )



수많은 엘리베이터들


한편, 앨범 전편의 노랫말 가운데 최고 압권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동명의 곡과 주제 의식 – 자본주의 속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 - 은 비슷할 지 모르지만 더욱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세련된 비유들과 냉소로 가득한 가사를 담은 「Money」다. 모두가 잘 아는 후렴 가사 외에도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랩 파트의 가사가 이 곡에서는 가장 돋보인다. (“가진 자 못 가진 자 모두 다 /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치니 / Money가 도대체 뭐니 / 그게 뭔데 이리 생사람을 잡니 /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쥐었다 하는 건 /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는 거니 / 인격도 신분도 품위도 지식도 / 이젠 돈만이 결정하고 말해주는 거니” ) 또한, 표면적으로는 러브 송으로 들리지만 결국 동성동본 결혼 문제에 대한 당시 법률의 문제점을 꼬집는 의도를 담았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까지 이 앨범은 제목이 가진 컨셉트에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신해철 특유의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들을 담은 노랫말들이 훌륭한 음악적 결과물과 함께 융합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밖에도 『정글 스토리』 OST의 「백수가」와 비트겐슈타인 시절의 「백수의 아침」등을 통해서는 자본주의의 고도화 속에 결국 늘어나게 되어버린 실업자 청년들의 고민과 허세를 모두 표현해냈고, 『Lazenca : A Space Rock Opera』의 「The Power」에서는 《영혼기병 라젠카》 속 악당의 시선으로 전쟁의 폭력성에 담긴 인간의 탐욕을 표현했다. 또한 『Monocrom』에 수록된 「Machine Messiah」에서는 디지털 문화 속에 종속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꽤 빠르게 발견해 비판했다.


부진한 성과를 내긴 했지만, 『The Return Of N.EX.T Part III : 개한민국』은 그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직설적인 사회비판의 가사로 가득찼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1990년대에 자신이 비판했던 여러 가지 사회의 문제들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더욱 직설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 음악들로 자신의 분노를 다 전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것인지 방송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발언들의 수위는 올라가고, 출연 회수는 더 늘어났다.)


유작이 되어버린 『Reboot Myself Part.1』(2014)에서 그는 비판적 서술의 시선을 살짝 개인이나 은유화로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Catch Me If You Can」을 통해서 구조적 사건의 문제를 모두 개인들의 문제로만 치환하는 한국의 권력과 민중의 공통적 모습에 대한 은유적 비판은 그가 여전히 사회에 대해 음악으로 녹여내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높았음을 증명해 보인다. 과연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명의로 발표될 그의 유작 속에서는 그가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지 더욱 궁금하다.



대표적인 개인의 일탈 현장

 

3. 사랑 (Love)
    1990년대 한국 수컷들의 가슴을 대변했던 연가(戀歌)를 쏟아낸 '인형의 기사'


일반적으로 신해철의 가사에 대한 분석과 탐구에서 사람들은 위의 두 가지 부분에만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신해철이 왜 그렇게 1990년대에 당대의 청춘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던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은 그가 남긴 그리 많지 않은 ‘사랑 노래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실 신해철이 1990년대의 그의 음악적 전성기 동안 틈틈이 발표했던 ‘신해철식 연가’들은 그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음악 동료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015B, 다시 말해서 정석원의 연가들과 함께 그 앞 세대의 사랑에 대한 정서와 관념보다 더욱 모던해진 ‘수컷 관점의 사랑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주류 사랑 노래의 가사들이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트로트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현대적이지만 감정표현 중심의 언어로 서술했던 것을 넘어, 이 두 아티스트들은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사유(思惟)’하고, 이별에 아픔에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사유를 하는 과정을 노랫말들 속에 담았다.


다만 정석원의 연가들이 이별을 소재로는 그를 대변했던 대표적 목소리, 윤종신의 노래들에까지 이어진 ‘수컷들의 내면에 담긴 찌질함’의 정서를 담는 쪽에 가깝게 진행되었다면, 신해철의 경우는 쿨한 견딤이거나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낭만이 흐르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 내 삶의 완성은 너이기에' 같은 비장한 결의로 가득한 가사들을 계속 뽑아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인간 신해철이 생각했던 사랑이란 어쩌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해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줄 대상을 찾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일면 여성들이 읽었을 때는 조금 비장하고 과장되어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언어들이었지만, 이 노랫말들은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왔던 언어들이었다. 그 결과 오히려 1990년대의 남성 청춘들에게 그의 가사는 ‘사나이의 기개’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기쁨과 아픔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노래들이 되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줄거야


먼저 그를 세상에 처음 알렸던 대표적 두 연가의 가사를 들여다 보자.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잊는다 해도 /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그대에게」), 그리고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난 포기하지 않아요 / 그래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마치 1980년대 최고의 만화 중 하나였던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 같은 비장한 순정(純情)을 통해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서 지켜야 할 것’으로 설정했다. 더불어,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비련에서도 감정을 이성적으로 정리하는 남성의 회고와 현실을 담은 「인형의 기사 Part 2」 (“너 떠나가는 자동차 뒤에는 / 어릴 적 그 인형이 놓여있었지 / 난 하지만 이제는 너의 기사가 될 수 없어 / 작별 인사를 할 땐 친구의 악수를 나눴지 / 오랜 시간이 지나갔어도 널 잊을 순 없을 거야” )를 통해서는 실연의 아픔에도 자아를 지키기 위해 ‘로맨티시즘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사고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30대를 넘기면서 더욱 고독과 직면할 시간이 늘어났을 때 발표한 진지한 연가들은 그가 꿈꾸는 사랑의 ‘이상적 모습’들이 가사 속에서 가장 멋진 언어들로 구현되고 있다. 그는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 (중략) /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 (중략) /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 Cause Here I stand for you. / 난 나를 지켜가겠어 /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라고 비장하게 절규하며(「Here, I Stand for You」), “네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 너의 머리맡을 나 항상 지킬게 / 네가 무서운 꿈을 깨어나 / 내 이름을 부를 땐 나 언제나 / (중략) /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 싼 /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라 연인에게 다짐하고 부탁하고 (「먼 훗날 언젠가」), “난 내가 말할 때 귀 기울이는 너의 표정이 좋아 / 내 말이라면 어떤 거짓 허풍도 믿을 것 같은 그런 진지한 얼굴 / 네가 날 볼 때마다 난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 네가 날 믿는 동안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 이런 날 이해하겠니?” 라고 상대에게 자신의 생에 함께 해줄 것을 제안한다. (「일상으로의 초대」)


결국 그 또한 결혼을 거치며, 1990년대에 가졌던 ‘수컷의 대변자’로서의 가치는 서서히 희석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적 사랑의 수호’라는 태도는 ‘가정에 충실한 남자 신해철’의 모습으로 계승되었다. 록 매니아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인간 신해철로서는 충분히 의미 있었던 스탠다드 재즈의 포맷을 가진 커버 앨범 『The Songs For the One』을 아내에게 바쳤고, 『Reboot Myself』의 마지막 트랙 「단 하나의 약속」을 통해서도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만 약속해줘 / 어기지 말아줘 /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 내 소중한 사람아 / 그것만은 대신 해줄 수도 없어 / 아프지 말아요” 라고 노래하며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던 아내를 위한 (또 한 편으로는 그를 오랫동안 응원해왔던 팬들을 위한) 진한 마음을 담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가정과 주변을 걱정했던 그가 이렇게 먼저 우리 곁을 떠나게 되리라고는 과연 누가 예상했었던가…….


....


Epilogue


지금까지 신해철이 발표했던 노랫말들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음악 커리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들의 큰 줄기를 정리해보았다. 그는 자신의 노래들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의미를 지키기 위해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가’를 심사숙고한 결과들을 1990년대의 청춘들에게 노래로 제공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장애물이 되는 세상의 부조리에는 그 누구보다 목청을 높여 노래와 언변을 통해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평범한 청춘이었으며, 사랑에 대해서는 조금 ‘수컷의 낭만주의’를 지키면서도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순결한 결의를 잊지 않으며 실제 그의 인생 속에서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물론 그 역시 긴 ‘구도’의 과정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힘겨웠던 시기가 여러 번 있었을 것 같다.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절망에 관하여」)라는 노랫말처럼,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 이라는, 그가 스스로 정했던 레퀴엠 「민물장어의 꿈」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그래도 신해철은 다른 이들이 어떤 찬사와 비난을 그에게 던지던 그에 아랑곳없이 일관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 ‘뚝심’으로 인해 그는 1990년대를 그와 함께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외치던 ‘멋진 동네 선배’로 아로새겨진 것이라 난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지쳐갈 때, 이 멋진 철학도 선배가 남겨놓은 일기장, 바로 그의 노래들을 들춰보면서 다시 버텨갈 힘을 얻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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