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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별이 떠나갈 때 #18] Prince : My ‘Gold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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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편집자註)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최고라는 표현도 어쩐지 모자라는 'The Artist', Prince에 대한 추모의 글을 딴지일보에서 음악글을 제일 멋지게 쓰시는(!) 너클볼러님께서 기고해주셨습니다. 《음악취향Y》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내 인생의 앨범 중 하나를 손에 넣게 된 90년대는 팝음악계에 있어 일종의 수확기였다. 7-80년대(좀 더 길게는 60년대까지)가 다양한 장르들의 모종이 뿌려졌던 농번기라면 90년대는 분명 거둬들이는 시기였다. 풍성했고, 변화무쌍했으며 수준도 높았다. 대중들의 환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 대중들 틈 속에 청소년기에 걸린 나도 있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음악에 비해 정보는 턱 없이 부족했다. 지금의 웹과 검색 역할을 구전(口傳)이 상당부분 대신 하던 시대였다. 정보의 질과 양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레코드샵 주인장과의 친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부족한 정보의 빈자리는 자연스레 본능의 차지가 되었다. 본능이 쌓아올린 취향은 틈이 보이지 않는 철옹성과 같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본능은 블루지한 락으로 향했고, 그 결과 Hootie & The Blowfish, Spin Doctors, Blues Traveler, Black Crowes 등등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취향이 완성되었다. 당시 씬을 발칵 뒤집어 놓은 시애틀발 얼터너티브 4대장 밴드(Nirvana, Alice In Chains, Pearl Jam, Soundgarden)도 웬만해선 끼어들지 못하는 협소하지만 평화롭고 단단했던 그런 취향이었다. 그런 고등학생의 일관된 취향에 균열을 일으키며 호기심을 발동시킨 앨범 한 장이 뜬금없이 등장했다. 바로 『Gold Experience』(1995)다.

 

 

1995년 앨범이 하나 발표됐는데 뮤지션이 무려 ‘기호’라는 것이었다. 기호 대신 심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의미 없이 그렇게 불린 이유인즉슨 그 기호가 일반적으로 의미가 규정되지 않은 기호였기 때문이다. (‘기호를 어떻게 읽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Prince의 답변은 ‘읽지 마’였다.) 그 요상한 기호가 발표한 앨범이 바로 『Gold Experience』. 공부에 관심 없던 고등학생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기호라 알려진 뮤지션이 바로 얼마 전까지 ‘Prince’라 불렸던 사나이란 것을... 과연 어떤 사나이길래 자신을 ‘왕자’라 명명할 수 있단 말인가. 호기심 덕에 몇 가지를 더 알게 됐다.

 

그는 이탈리아계 흑인 남성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였고, Prince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Purple Rain』(1984)이라는 엄청난 명반의 주인공이자 신의 경지에 오른 기타 연주자라는 사실 등등을 알게 되었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다. 대신 스캔들(여성과 관련된)의 끝판왕이며, 요상한 기호로 앨범을 내게 된 이유가 소속사가 자신의 창작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똥침이라를 사실에 감동받았다. (소속사가 상업적인 이유로 그의 창작을 1-2년에 앨범 1장 발매로 제한하자 계약된 Prince란 이름이 아닌 기호로 앨범을 발매하고 화끈하게 법적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와! 이 형 왕자님 맞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한때 왕자였던 기호가 낸 앨범 『Gold Experience』는 이미 내손에 들어와 있었고 첫 번째 싱글 커트 된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는 내 인생의 노래가 되었다.

 

 

Prince에게 흔히들 혁명, 투쟁, 반항, 비타협 등의 레테르를 붙이곤 한다. 기존의 음악 질서에 반기를 든 재능 넘치는 선동가라는 것이다. 그가 기호로 발표한 『Gold Experience』는 그 증거이기도 하다. 허나 내게 Prince는 ‘음악의 감정’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장본인이자 멋쟁이 형일 뿐이다.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을 통해 음악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Prince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준 ‘지 꼴리는 데로의 삶’의 멋스러움을 배웠다. 덕분에 취향으로 둘러싸인 감상의 영역 밖을 구경하며 이 곡, 저 곡 기웃거릴 수 있게도 되었다. 이 모든 게 다 Prince 덕분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치기어린 반항의 롤모델이 아니라 여전히 나의 믹스테잎 첫 번째 곡이며,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감정을 가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은사나 다름없다. (은사의 음악을 통해 어떤 감정을 사사받았는지는 비밀)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난 그날 밤. 난 여지없이 『Gold Experience』를 꺼내 틀고는 술을 한잔 마셨다. 1번 트랙은 당연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사실 이 곡에서 Girl은 당시 Prince의 아내였던 20세의 댄서 Mayte Garcia였다. 하지만 이 곡의 대상은 Mayte Garcia로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가사에 등장하는 Girl(=Mayte Garcia) 대신 자신을 끼워 넣으면 된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게 Prince의 팬이 된 것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그의 대표곡인 「Purple Rain」이 아닌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가 떠오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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