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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별이 떠나갈 때 #09] David Bowie :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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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1. 점(點) 하나. Jennifer Connelly는 아름다웠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였기에 당대에 보지는 못 하였지만, 영화 속 Jennifer Connelly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접한 그녀는, 14세 때(《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나 16세 때(《라비린스》(1986))나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그에 중첩된 기억의 파편들은 강렬한 이미지로 박혀 있는데, 선하고 참해 보이는 이미지의 어린 그녀와 대척점에 있었던 이가 바로 “달나라로 떠난 고블린의 왕” David Bowie였다. 젖먹이 동생을 납치하여 어여쁜 소녀를 더럽고 흉악한 미궁 속으로 유인하더니, 기어코 소녀를 자신의 왕비로 삼으려는 고블린 왕의 간악하고 변태적이었던 모습은, 나의 첫 기억 속 David Bowie를 혁신적인 음악가 이전에 마왕으로 각인하였다.

 


미녀와 악마

 

2. 점 둘, 셋, 넷. 첫 번째 기억 이후 별다른 인식 없이 스쳐갔을 Bowie의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 그의 이름이 제일 먼저 뇌리에 박힌 것은, 일찍이 먼저 트랙 리스트를 꿰고 있던 Queen의 노래들 틈새 발견한 「Under Pressure」(1981)에서였다. 특히 1992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전설의 공연에서, Freddie Mercury의 빈 자리를 대신한 Annie Lennox의 파격적인 비주얼 옆을, 멀끔하고 화려한 신사의 아우라로 지킨 Bowie의 존재감은,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라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여 그에 대해 잊혀진 고블린 왕의 기억을 되살리게 했고, 궂은 기억과 충돌하는 동경 속에서 시나브로 자연스레 점 하나씩을 더하였다.

 


파격과 댄디 사이

 

3. 선(線) 하나. 점을 일일이 다 언급하는 것이, 그에 대한 추념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짧은 글에서의 내 생각은 이렇다. 사실 점이 모인다고 해서 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무수히 많은 점, 또는 땡땡이 무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관계성이 하나둘 더해지면 그것은 멀리 떨어진 두 점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선이 되기도 한다. 1972년 1월 22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격적이었던 인터뷰 기사 하나는 두 갈래 제각기 다른 길로 돌아 나에게 유의미한 기억으로 남았다. 한편으로, “나는 게이이고, 언제나 그래왔다(I am gay and always has been)”는 팝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Bowie의 커밍아웃이, 이후의 해명과 두 번의 여성과 결혼했던 이력에도 여전히 그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사건으로 남게 하였고, 이는 그러한 미디어 이미지를 고스란히 소비한 어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이미 마왕으로 처음 각인된 Bowie의 이미지일진대, 그만의 패션과 게이 이미지가 덧대어져, 어린 나에게 Bowie는 단순한 파격 이상의 ‘괴괴망측한 인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스스로 처음 접한 해당 사건의 사실적 서술로서 교실에서 접한 어느 비문학(어쩌면 영어였을지도 모른다) 지문 속 Bowie의 발언은, 그 내용을 떠나 마치 시대를 앞서간 모험가의 대단한 한 발, 현대의 콜럼버스 달걀처럼 여겨졌다.

 

 

4. 선 둘, 선 셋, 선 넷. 솔직히 그가 내 마음 속 ‘넘버 원’이나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있었던 시절은 단 한 순간도 없지만, 학생 시절, 내 출생 이전과 당시 현재를 오가며 수없이 감탄하며 소비하였던 대중문화의 클래식들을 영접하는 순간마다 Bowie는 항상 주변을 맴돌았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과 「Space Oddity」(1969).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와 영화 《제5원소》(1997). Andy Warhol에 대한 관심과 영화 《바스키아》(1996) 속 Andy Warhol 역을 분한 David Bowie. 영화 《벨벳 골드마인》(1998)이나 하다못해 X-Japan과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1997~2003)에 이르기까지. 마치 실제 인연이 있는 우연의 산물처럼, 매번 거슬러 결국 Bowie로 소급하는 대중문화의 계보는 애써 글램록(glam rock)이나 우주 같은 뻔한 단어를 언급하지 않아도 Bowie에 대한 마음의 지분을 넓히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역대급 싱크로

 

5. 각(角) 하나. 점과 점 사이에는 연결이 있지만, 선과 선 사이의 연결에는 방향성이 추가된다. 하나의 표현이지만, 굳이 단순한 면이 아니라 방향이나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각’을 표지하는 까닭이다. 많은 팝스타들이 자기만의 각을 남긴 채 하나둘 저물어 가는 가운데 유난히 보위에 대한 애도와 추념이 각별한 이유는, 대중문화와 예술에 대한 Bowie의 사유가 20세기 수많은 각 가운데 눈에 띠게 예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그가 단순히 대단히 전위적인 예술가였다는 사실 이상으로, 당대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두 선이 만나는 각의 뒤편이 우리의 가장 익숙한 위치에서 가장 많은 부산물들을 품고 있다는 의미이다. David Bowie의 음악이 이제 겨우 하나둘 익숙하게 되었을 시점, 영화 《쥬랜더》(2001)에서 발견한 그의 모습은 과거 《라비린스》(1986)에서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위대한 예술가가, 혹은 그 멋진 신사가 (비록 그의 품위는 유지될지언정) 이런 우스꽝스러운 영화에 이렇게 출연하다니!’ 화려한 영상이나 사진 속 보위의 판타지는 낯설고도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익숙한 것이었지만, 환상과 현실과 깨어진 벽 틈에 위치한 보위의 친밀하고도 동시에 낯선 모습은, 물리적·문화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한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저편의 대중문화에 친숙하게 녹아있을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진지하다

 

6. 각 둘, 각 셋, 각 넷. 1997년 1월 31일, 내 기억 속에 없는 사건 중에 David Bowie가 푸르덴셜 보험사와 재미있는 계약을 하나 맺은 일이 있다. Bowie가 자신의 음악적 지식과 재능을 담보로 발행한 5,500만 달러의 10년 만기 채권을 푸르덴셜 측이 전량 매입하고, 대신에 향후 10년간 보위의 히트곡 100곡에 대한 인세 수입과 공연 수입으로 발생하는 수익금의 일부를 푸르덴셜이 갖는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당연히도 계약의 성공 유무를 떠나,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이었던, 그의 개혁자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이면에서 내 시각이 향한 곳은 첨예한 혁신 뒤로 품어낸 Bowie의 인간적인 면모이다. 그는 환상에 상주하기보다 현실에 머무를 줄 아는 인간이었다. 돌아보건대 Bowie는, 방탕한 삶으로 단명하거나, 대중과 벽을 쌓고 자기의 예술관만을 쫓지 않았고, 혹은 금욕적으로 성자와 같은 존재가 되지도 않았다. 대중문화를 전복하는 예술가이기보다 도리어 Andy Warhol처럼 예술을 전복하는 팝의 혁명가였다. 그 스스로 고블린의 왕 혹은 화성인이었기보다,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는 대중의 모순과 판타지를 신화의 단면으로 묘사한, 또 하나의 호메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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