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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12]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 사랑 vs. 성찰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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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과연 이적은 착하게 타락한 것일까? 카니발의 여과과정을 거쳐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1998)에 이르게 되자 범생이가 돼버린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언 10년 째 진행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적이 여전히 음악을 잘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그러니까 문제는, 이적이 애늙은이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 두 개의 톱니바퀴가 장시간 동안 떨어질 줄 모른다.『나무로 만든 노래』도 별 수 없다. 두 톱니의 사이에 있다.

싫은 소리 먼저하고 그 다음에 칭찬하자. 병부터 주자. 아니, 세상에, 병은 리뷰어가 줄 게 아니다. 이 정도면 이미 이적 스스로 중증의 병을 앓고 있다. 6번 트랙 「사랑은 어디로」에서부터 11번 트랙 「같이 걸을까」까지……. 노환도 이런 노환이 없다. 이토록 식상한 언어를 이토록 밋밋한 음악에 담아내다니. 패닉 4집의 「길을 내」(2005), 「나선계단」(2005)의 재탕이다. 그래, 「얘, 앞산에 꽃이 피면」과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 2곡이 좀 다르다는 건 인정하겠다. 「얘, 앞산에 꽃이 피면」에서 기타의 디스토션과 에코가 어떤 영상 이미지를 아우르고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의 후반부 드럼 솔로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요 두 곡이 필자에겐 두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바로 그 지점으로 보인다. 데뷔 초창기의 파격적인 음악 문법과 최근의 점잖은 시선이 적절히 믹스된 노래? 그런데, 그래서 어정쩡하다. 매력적이지 않은 결합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진짜배기 애늙은이 노래들은? 말도 마라. 계속 참고 들어주다가 「같이 걸을까」에 이르면 정지 버튼을 누르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이건 음악이 아니다’ 라는 생각까지 든다. 음악이 후졌다는 게 아니다. 여기엔 음악 자체가 부재(不在)한다. 그리고 메시지도 부재한다. 완벽하리만치 공허한 공간이다. 낫씽이다. 도대체 어디에 성찰이 있다는 얘긴가?

마지막 곡 「무대」 때문에 플레이 버튼이 살아 남는다. “다시 불이 꺼지고/ 막이 내리고 나면/ 사랑을 떠나보내/ 슬픔에 빠진 사나이처럼/ 나 홀로 있네” 그래, 어쿠스틱 기타 한 대가 조밀하게 뒤를 받치는 이 포크송엔 이적의 진심이 있다. 그래서 맨 처음 곡 「노래」도 용서가 된다. "음악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네~ "라는 지겨운 가사도 기꺼울 수 있다. 이 정도의 수미쌍관이라면, 연륜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낸다면 좀 늙어 보이는 것도 아쉽지 않다.

「노래」의 다음 곡 「다행이다」는 늙어 보이는 게 전혀 아쉽지 않은 노래다. 이제 약 줄 차례다. 피아노의 차분한 타건 속에서 흐르는 이적의 목소리가, 가끔씩 새어 나오는 그의 비음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래, 연륜은 이런 진솔한 사랑노래와 어울린다. '그대'가 중심에 서있는 공간은 절대로 공허해질 수 없는 법.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적은 한 발 더 들어간다. 그냥 사랑으로만 더 들어간다. 「어떻게」, 「비밀」, 「내가 말한 적 없나요」. 애늙은이에게 정력을 선사한 보석 같은 트랙들이다. 「어떻게」는 옛사랑에 가슴 떠는 그의 알싸한 목소리를 푸근한 드럼과 베이스, 아담한 키보드와 기타가 수줍게 받쳐주는 노래다. 「비밀」은 그만의 독특한 송라이팅이 독특한 사랑 노래를 탄생시킨 경우다. 이 노래에선 특히 비범한 편곡 능력이 돋보인다.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각 악기들의 아기자기한 변화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이적이 여전히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활어 뮤지션임을 증명하는 노래랄까? 「내가 말한 적 없나요」는 “첨부터 좋아했다고 내게 말할 순 없나요”란 능청스런 짝사랑이 블루지한 기타 반주와 퍽이나 잘 어울리는 노래다. “당신”의 정체를 “라면”이란 단어 하나로 국한시킨 것이 재미있다.

결국 전반부의 사랑 타령이 앨범을 살렸다. 이것이 없었다면 속이 텅 빈 골다공증 앨범이 될 뻔했다. 글쎄, 이젠 확실히 달라지려나? 앞선 솔로 앨범들의 공허를 무마시켰던 것이 다양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의 차용이었다면, 이번엔 차분한 사랑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 놈의 사랑이 이적표 공허의 단순 무마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후반부 낫씽의 데미지가 너무 너무 크다. 이적은 타락한 범생이? 답변은 여전히 작성 중이다.


Credit

[Staff]
Produced by 이적
Recorded by 이면숙, 송주용 at T studio
Mixed by 노양수 at T studio
Mastered by 전훈 at Sonic Korea mastering studio
Designed by 이관용 at Sputnik
Strategy & Public relation department: 강태규 for Music farm
Artist management: 임무섭, 김민성, 조재민 for Music farm
Executive producer: 이국현 for Music farm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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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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