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간 ‘광야 세계관’의 대표자, 또는 희생자(?)로 여겨졌던 에스파가 (소속사 내부사정의 정리 이후) 신보 『My World』와 함께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온 나비스의 눈으로 광야를 넘어 더 복잡한 세상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 이번 앨범의 새로운 ‘서사’가 된다. 첫 곡 「Welcome to My World」를 통해 에스파는 나비스를 현실로 초대하고, 현실 세계의 ‘맵고(Spicy)’, ‘단짠단짠(Salty & Sweet)’한 쾌락을 그들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나비스는 그 쾌락 속에서도 갈증(‘Thirsty’)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기저기서 ‘행복하지 않다(I’m Unhappy)’는 사람들이 가득함을 보게 된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음악을 통한 유대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나비스와 에스파는 ‘다시 만날 때(‘Til We Meet Again)’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이런 6곡의 잘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일단 에스파가 현실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이 앨범의 궁극의 목적일 것 같다. 그 가운데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곡의 분위기까지 그들의 새로운 페이즈(Phase)가 시작됨을 보여주는 대표곡이 바로 「Spicy」다. 카리나의 언급에 따르면 이 곡은 사실 『Savage』(2021) EP 제작 단계에서 검토되었지만 결국 탈락했던 곡을 멤버들의 추천으로 다시 폴더에서 꺼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발표한 곡들의 어둡고 두터운 신시사이저 비트와 사이버틱한 사운드의 뿌리를 완전히 걷어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탈락한 이유일 것 같은) 곡의 후렴 멜로디 라인이 가진 통통튀는 발랄함, 그리고 그루브가 매우 강한 리듬의 매력이 「Next Level」(2021)때의 중독성을 되찾아주었다. 들으면서 ‘몸을 흔들어도 되는’ 에스파의 노래를 만난게 이게 얼마만인가. 그룹의 과거 세계관에 더 이상 깊이 얽매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서사의 영역을 확장하는 지혜가 적절히 발휘된, 그룹에게 새 날개를 달아줄 트랙이다. ★★★☆

[이아림] K-Pop에 4세대라는 표현의 등장과 함께 격변의 선두에 존재했던 만큼, 에스파에 대한 주목도는 늘 높았다. ‘광야’라는 세계관부터 음악까지 눈에 띄는 요소가 가득한 팀이지만, 『My World』는 앞서 언급한 것들의 연장선에서 새롭고 신선하다. ‘Spicy’란 표현은 청량함을 내세운 컨셉과 거리감이 느껴지는데도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는데, 에스파의 각 멤버들이 보여준 캐릭터성을 비롯해 그룹의 거침없는 기세와 이들을 둘러싼 외적인 이슈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매콤해서 자연스러운 듯도 하다. 부담 없이 저변에 깔리며 등장하는 둔탁한 베이스의 울림이 곡에 무게를 더하고, 난해한 세계관을 내려둔 가사는 편안하게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임팩트는 많이 줄어들면서 기존의 에스파가 보여준 특색은 사라진 듯하나, 아티스트가 편안해 보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든다. 음원 속 부드러운 닝닝의 음색이나 앵콜 무대에서 보여준 지젤의 성량과 래핑은 두 사람을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고, 윈터의 깔끔하고도 시원한 가창과 카리나의 톡 쏘는 허스키한 래핑은 남발되지 않아 감칠맛을 더하는 요소로 느껴진다. 이들의 파격적인 변화가 타 그룹과의 차별성이 없다는 점은 우려할 부분이겠으나, 데뷔곡 「Black Mamba」(2020)에 앞선 스핀오프 설정과 같은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만큼 에스파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