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운] 세상 모든 이들이 방탄소년단의 성취에 한마디라도 더 보태고 싶어 하는 이때, 그들의 존재만큼 중요한 밴드는 언제나 잠비나이라고 생각해왔다. 잠비나이에 못지않게 이일우의 49몰핀즈는 특정 음악인이 대중음악씬에서 차지하는 지점의 크기만큼 중요한 밴드라고 생각한다. 49몰핀즈가 구사했던 드라마틱하게 기나긴 포스트록·스크리모 라인업의 부재가 새삼 아쉬운 요즘, 이일우가 그간 꾹꾹 누르며 응집한 파괴욕은 컴배티브포스트의 신작으로 몇 년 만에 자리를 되찾은 듯하다. 여기에 한국 블랙큰드·언홀리의 척박한 토양에 모종을 심은 밴드 파리아 소속의 드러머 조진만은 마치 뿌리의 일부를 화분삽으로 몸소 이 곳에 이식한 듯하다. 여기에 밴드를 대표하던 멜로딕 하드코어의 분위기는 「Farewell To My Dreams」, 「The Identity」의 떼창으로 여전함을 들려주지만, 본 곡에선 한결 무겁게 말을 아끼는 어둡게 한결 사악한 무드를 조성한다. 자신들의 본진 외에 이렇게 주(主)와 부(副) 구분 없이 행동 영역 내에 꾸준히 확장과 변이를 서서히 실천하는 것이다. 믿음직한 야심이다. ★★★★

[정병욱] 한 뮤지션, 하나의 밴드에 역사가 생긴다는 사실은 그로 인해 결과물이 크든 작든 변화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멜로딕 하드코어를 표방하며 첫 싱글 『One Believe, One Hope』(2008)을 낸 컴배티브포스트가 EP 『Realisation』(2010)과 1집 『The Ghost』(2014)를 지나 무려 6년 만에 내놓은 본 앨범이 그렇다. 공백의 시기 동안 있었다는 멤버들 일상의 변화(결혼, 이일우의 잠비나이 활동 등) 만큼이나 뚜렷한 새 지향성을 담고 있는 것. 타이틀인 이 곡에서 초장부터 몰아치는 블래스트 비트만으로 달라진 결을 가늠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운드와 가사의 매칭이다. 한결 중후해진 비트와 사운드 레이어, 비트의 무게감과 함께 훨씬 낮은 음역에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멜로디와 리프, 여전한 공격성에 더욱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스크리밍. 이 같은 요소들이 하드코어적인 현실의 무게를 떠올리게 해 그 변화를 긍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분노의 화살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이 노래의 자전적이고 성찰적인 면모는 비속어(F-word)를 남발하던 「Fxxk You」(2014)를 상기할 때 내적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변화를 이해하게 된다. 단순한 충동을 거스른 이 노래의 분노 및 사유는 전형적인 정서를 벗어남으로써 뻔한 답습마저 피한다. ★★★☆

[조일동] 연휴를 앞둔 지난주 왠지 지친 마음에 Sick Of It All, Agnostic Front, D.R.I., Youth Of Today, Warzone, Gorilla Biscuits, Madball, Biohazard, 25 Ta Life 등을 들으며 하루를 보낸 날이 있었다. 전술한 하드코어 선배들의 흔적 위에서 컴배티브포스트는 더 정교하고, 더 날카로운 소리의 길로 나아갔다. 6년 만에 발매된 새 앨범 『Whiteout』은 역시나 하나의 덩어리 사운드다. 과거와 비교해서 속도는 느려졌고, 곡은 드라마틱해졌다. 짧지만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곡 후반부 반복되는 코러스 사이로 아밍과 트윈 페달 드러밍이 만드는 긴장감은 2020년 한국 헤비니스 레코딩 중 가장 짜릿한 순간마저 선사한다. 『Whiteout』은 담겨있는 음악의 결은 다소 다르지만 분노의 정도에선 Napalm Death의 신작 『Throes Of Joy In The Jaws Of Defeatism』(2020)과 견주어도 어색하지 않다. 수작이다. 여전히 CD와 LP를 통해 음악을 듣는 순간이 행복한 퇴물은 이 진한 작품이 물리적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분노가 표출되는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과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