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술탄오브더디스코(이하 술탄)의 행보는 그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정규앨범과 많은 싱글들, 사이드 작업, 컬래버레이션이 줄을 이었다. 교체 또한 많았지만 해체가 된 적은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술탄은 음악을 얻었다.

2집은 확실히 달랐다. 없어진 재치를 세션의 정교함으로, 급박한 컨셉을 여유로운 템포로 자연스레 메웠다. 컨셉에 주는 이미지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그 자리를 나 잠수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의 고민과 수고가 대신 해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진일보했다.  전작에서는 그래도 디스코라는 장르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지만, 이 앨범은 그와 같은 모습에서조차 자유롭다. 이쯤 되니 궁금하긴 하다. 컨셉에서 더욱 자유로운 그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좀 더 자유롭고 활발함이 넘치는 모습으로? 아니면 조금 진지한 모습으로?

예상은 첫 곡부터 깨진다. 「Sheakin' Into Your Heart」의 인트로를 장식하는 신시사이저가 느긋한 템포로 이어지는 리듬 파트와 더불어 능글맞게 멜로디를 감싼다. 일단 그치다 시작하는 보컬 또한 조심스레 멜로디를 이어간다. 너무 다운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장조의 훅을 자연스레 놓는다. 멋쩍은 마음에서 나오는 웃음을 적정한 무드로 다룬다. 듣고 나니 어딘지 텐션이 떨어지지만, 뒷맛만큼은 깔끔하다.

이러한 방식의 출발은 뒤이어 이어지는 「Shining Road」의 밝은 분위기도 톤다운시킨다. 코러스로 출발하는 보컬 트랙은 곡의 공간을 제법 넓게 퍼트린다. 세션 또한 업비트를 의도하지만, 과도하게 청자의 마음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그저 첫 곡에서 이어진 적정한 무드를 조심스레 확장해가는 방향으로 나간다. 편곡이나 템포도 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인다. 나조곤한 긴장감으로 넘치는 슬로우 넘버「내부순환」과 무드의 단절과 이어짐을 주요한 미감으로 삼는「면역」까지 듣다가 제목을 생각했다. 사랑을 위한 이지리스닝? 사랑을 위한 쉬운 듣기? 아무래도 좋다. 이 앨범은 이지리스닝이라고 부르기엔 점잖지 않고, 디스코라 부르기에는 리듬 파트가 너무 점잖다. 

듣고 나서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이 앨범이 의도하는 바는 그게 아니지 않을까? 컨셉에서도 자유로우니, 이와 같은 지칭에서도 자유로운 게 아닐까. 그러자 다른 면이 눈에 띈다. 전작에서마저 들쑥날쑥했던 세션도 이 앨범에서는 거의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나잠 수의 보컬도 제법 멋들어진 라인을 그리며 적당히 절제된 감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기뻐하지만 마냥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지만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이러한 중용은 앨범 후반부의 연주곡을 연달아 들었을 때, 더욱 확실한 강점으로 다가온다. 일정한 부분을 그냥 넘기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 수를 늘리기 위해 인스투르멘탈 트랙을 넣는 여타 앨범들과도 다르다. (외려 장르로 따지면 후반부의 곡들이 좀 더 이지리스닝이라는 장르에 더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세션의 궁합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반부에 더 귀기울이게 되었다. 설레발치는 감정이나 먼저 꼬꾸라지는 포즈가 없다. 촐랑대거나 찌질하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무덤덤할 줄도 안다는 게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한 솔직함이 이 앨범을 여타 다른 팝 앨범과는 다른 맥락 속에 자리잡게 만든다. 

만드는 데 공을 들이되 듣기는 쉬운 음악. 술탄이 의도한 바는 아마 이 지점이었으리라. 술탄은 특유의 솔직함으로 이 의도를 견고하게 이어나갔다. 이 앨범은 그들이 의도한 대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름기없이 푹 삶은 사골국물처럼 깊고 담백하다. 여러 말들이 나오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장난처럼 시작한 술탄은, 이제 장난이 아니다.

#술탄오브더디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