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가장 아름다운 것

이한빈 『Gray Womb』
956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9.04
Volume 1
장르 재즈
레이블 칠리뮤직코리아
유통사 칠리뮤직코리아
공식사이트 [Click]
“이 앨범은 내 생의 1악장의 마지막과 2악장의 시작을 담은 삶과 음악의 기록이다. (1994~2019) ” 이한빈이 북클릿 첫머리에 담은 이 말 한마디가 앨범을 온전히 설명한다. 그렇다. 『Grey Womb』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자전적 기록이다. 사실 나는 감상에 사적 영역을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감상이라는 행위 자체가 절대 공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음을 생각하면, 이런 취향은 그저 개인적 의지가 담긴 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겠지. 요즘 들어 더욱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은 작가와 유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한빈은 이를 솔직하고 인정하고, 용감하게 내비쳤다. 게다가 해당 작품이 한창 예민한 시기, 젊은 시절의 생과 일상을 담았다면? 경우에 따라 다소 허세나 교만, 과장은 있을 수 있어도, 작가와 작품이 공명(共鳴)할 가능성은 그 어느 시기의 누구보다도 높아진다.

『Grey Womb』은 재즈의 자유로운 변주 가능성을 전제로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하지만 이는 치기어린 실험이나 도전을 위한 것이 아닌 뮤지션의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언어 사용에 따른 것이다. 전통음악의 정서가 차분히 스민 「Womb」과 「행복 : Happiness」, 아방가르드 재즈의 즉흥 연주를 너르게 펼쳐놓은 듯한 「Noise」와 텅 빈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채우는 영화음악적 서사의 「Calling」, 블루스 양식을 차용한 「Black-Hole Blues」, 이한율의 보컬에 힘입어 처연한 민요와 따뜻한 동요 사이 신비로운 자리를 마련한 「아이야 : Ayiya With Hanyul Lee」 등 결코 한 가지 이름만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다양한 음악이 앨범 속에 녹아있다. 자연주의 자장 아래 있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아이리시 음악이나 켈틱 음악의 민속적 음계나 팝의 언어들까지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George Winston이나 Michele Mclaughlin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본작은 여타 이지리스닝 계열의 곡에 비해 감정 진폭이 훨씬 크다. 이는 전술했듯 이한빈이라는 뮤지션의 민감한 감응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순간의 기록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치열한 의지의 결과이기도, 자신의 감성과 악곡을 온전히 연주에 담아낸 연주 자체의 힘 덕분이기도 하다.

이한빈의 섬세한 감각은 유려한 악곡으로 '재현'된다. 예민하고 영적인 성정의 그는 11개의 트랙 이면에 파편적인 사념과 생의 고통, 종교적 영감을 다채롭게 담아낼 수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본작으로 승화되었다. 조심스러운 타건 하나하나, 녹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멜로디를 따라가는 허밍음 하나하나 귀에 들릴 때마다 그가 연주에 깊이 몰입하고 있는 이미지가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Raymond Williams의 말마따나 '심미적'이라는 단어의 반대말이 '비심미적'이 아니라 '무감각한'이나 '둔감한'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정도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순간에도 『Grey Womb』이 지극히 겸손하다는 사실이다. 젊은 영혼의 생이지만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 속 중요한 경험들이 희비극의 치열한 양극단으로 치닫지 않은 채, 때로는 처연하게 때로는 상쾌하게 이어진다. 있는 그대로 생을 끌어들이는 순수함과 예술 자체에 대한 낭만적 신봉이 맞물렸지만, 허영을 부리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는 그의 투명함이 결국 앨범의 아름다운 균형점을 찾아냈다. 자궁으로 출발해 어머니의 꿈으로 마무리하는 앨범의 스토리텔링이 전혀 인위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 까닭이다.

『Grey Womb』은 아무래도 듣는 우리를 위한 앨범이기보다 뮤지션 그 자신을 위한 앨범에 가깝다.  요즘 들을 수 있는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그렇다. 바꿔 말해 청자가 아무리 예민하게 들으려 해도, 우리 귀에 들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이 분명히 이한빈의 안에 있다. 아마도 그의 안에서 이 앨범은 가장 아름다운 것일 테지. 그러나 그가 솔직하게 펼쳐놓은 이 서사는 작가와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과 청자의 주파수가 공명하기에 따라서, 듣는 이가 한껏 마음 편히 열어놓고 가만히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모처럼 무척 단순한 말로 수식하고픈 앨범이다. 아름다운 앨범이라고.
 
 
 
 

Credit

[Musician]
Piano : 이한빈
Voice : 이한율
Drum : 박예닮
대금 : 김태현

[Staff]
Producer : 이한율 (ArtKnock)
Recording Producer : 채승균 (The Arts Label)
Recording Studio : JM Studio
Recording Engineer : 이재명, 홍라헬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Womb
    -
    이한빈
    -
  • 2
    Noise
    -
    이한빈
    -
  • 3
    Beyond
    -
    이한빈
    -
  • 4
    Black-Hole Blues
    -
    이한빈
    -
  • 5
    행복 : Happiness
    -
    이한빈
    -
  • 6
    Flow
    -
    이한빈
    -
  • 7
    Calling
    -
    이한빈
    -
  • 8
    A.ω : Alpha Et Omega
    -
    이한빈
    -
  • 9
    먼저간 이들의 숲 : Forest Of
    -
    이한빈
    -
  • 10
    아이야 : Ayiya With Hanyul Lee
    이한율
    이한빈
    -
  • 11
    Mother's Dream
    -
    이한빈
    -

Editor

  • About 정병욱 ( 11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