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이상은 30주년 특집 #08] 독필(禿筆)로 그린 사막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1,23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97.05
Volume 7
장르
레이블 킹레코드

듣고 나면 어쩐지 허하다. 좁은 음폭, 마른 톤으로 일관하는 기타, 마치 툭 튀어나오는 두 눈에 비치는 안광처럼 번뜩이는 직관으로 가득한 가사, 저음으로 일관된 이상은의 보컬. 「집」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전작에서 그토록 넓은 스케일의 작품을 들고 나온 사람이 이제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에 대해 노래한다. 조금은 부끄럽게, 조금은 어깨를 좁히면서.
 
이러한 인상은 앨범의 수록곡들을 거쳐가며 더욱 진한 인상을 남긴다. 「사막」에서 보여지는 스케일은 전작에 비해 다른 풍경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피아노가 섬세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이상은은 숨을 섞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사막의 메마름을 형상화한다. 「사람은 다 사람」에서 초반의 불협화음이 신경질적인 보컬로 인해 더욱 불안한 형국을 띠는 대목은 얼터너티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비교적 소품에 해당되는 「새빨간 활」 또한 베이스와 기타 멜로디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전개한다.
 
이 앨범에서 이상은의 보컬은 거의 신경질적이다. 그 목소리로 “나를 본 적이 있냐”는 힐난(「Super Eraser Medium」)도 하고, 지루해서 “잠이 안 온다”(「아이콘」)는 투정도, 우스꽝스럽게 조소(「외롭고 웃긴 가게」)하며, 또한 미치고 싶다고 노래한다(「세레나데」). 「비가」에서 ‘비’와 ‘비가(悲歌)’의 음을 가지고 노는 이상은의 보컬은 이러한 신경질적인 광기가 단순한 투정 이상이라는 것을 공고히 한다.
 
그렇게 쌓여서 만든 앨범은 황량한 마음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수많은 세션들과 녹음 기사들을 동원한 전작들과 달리, 이 앨범의 레코딩과 믹싱은 편곡자인 타케다 하지무가 담당하였다. 프로듀싱 또한 둘의 작업이었고, 외부에게 맡긴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마스터링뿐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어떤 허술함이나 허위도 이토록 메마른 사운드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다. 로우파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진솔함이 날카로운 시선과 더불어 곳곳에 배어있다. 가령 「집」의 "쉼 없이 쉴 곳을 찾아/ 먼 길에 먼지를 쓴 사람이"이라는 대목을 보자. 은유가 주는 유연함을 잃었으되, 음가가 주는 감각은 더욱 생기를 띠게 되었다. 이런 지점들이 로우파이와 만나 더욱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게 이 앨범의 특징적인 미감이다. 그렇게 살을 버리고 뼈를 취하는 형식으로 세계에 접근한다. 그 세계는 사랑이 피로만큼 쉽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달이 왜 둥근지 대답하지 못하는 세계다(「세레나데」). 사람이 왜 죽는지, 왜 노래하는지(「사람은 다 사람」)조차 대답하지 못하는 세계다.
 
「꿈」은 정확히 그 앞의 곡들과 대척점에 서있다. 코요테의 삶과 하얀 꽃의 삶이 공존하는 세계, 딜레이 효과를 십분 활용한 이상은의 보컬, 아르페지오를 중점에 둔 기타와 가벼운 베이스, 드럼과 피아노를 제외한 편곡 방향. 모든 부분이 바로 전까지 불렀던 방향과는 다른 지점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그 꿈마저도 전작하고 다른 지평을 보여준다. 연약과 야생에서 번민하는 사람이 그 곡 안에 살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외려 이 앨범의 황량한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오로지 대극만이 존재하는 세계라니. 정말이지 참혹한 세계가 아니던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의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붕괴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사람들도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되어있었다. 모든 것은 말 뿐이었기에 도리어 우스웠다. 앞길은 천리만리였고 우리는 황폐한 대지 위에서 광기를 길러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앨범이 묘파하고 있는 세계와 지금까지 이어진 폐허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우리는 아직도 이 앨범이 발견한 사막 위에 살고 있다는 심증이 든다. 이 사막에도 끝이 있을까? 
 
그래서 더더욱 「어기여 디여라」의 멜로디와 가사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가만히 제 길을 살'아가도 '다른 몸으로 나서'도 결국 서로에게 '닿는' 세계. 잡히지 않았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염원이 그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조차도 소망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앨범을 다 듣고 나서 한참동안 마른 손목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앨범은 우리의 마른 곳을 가만히 응시한다.
 
 

Credit

[Musician]
All Instruments Performed by : 竹田元 (타케다 하지무)

[Staff]
Produced by Penguins
Recorded & Mixed by 竹田元 (타케다 하지무)
Mastered by 沖津徹(토오루 오키츠)
Recording Studio : L&T Studio in Tokyo
Executive Producer : 湯上三平 (유가미 산페)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2
    사막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3
    사람은 다 사람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4
    새빨간 활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5
    Super Eraser Medium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6
    Icon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7
    외롭고 웃긴 가게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8
    세레나데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9
    비가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10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 11
    어기여 디어라
    이상은
    이상은
    Penguins

Editor

  • About 김병우 ( 6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