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의 첫 걸작은 의외로 수수한 매무새를 갖추고 있다. 화려한 편곡도 다층적인 코러스 라인도 이 앨범에서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전작들에 비해 더욱 자유롭고, 깊으며, 또한 아름답다. 우리는 이 앨범에 이르러 유아론(의 함정)을 벗어나 멋지게 활공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상은과 마주할 수 있다.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는 데에 있다. 간결한 세션이 외려 곡의 핵심을 꿰뚫는다. 이상은의 목소리를 최대한 올리되, 「언젠가는」과 「여름밤」을 제외한 모든 곡의 코러스를 배제했다. 「길」과 같은 짧은 곡이 폐부를 찌를 정도의 절창이 돋보였던 것은 바로 그런 담백한 포지션 때문이었다. 그런 담백함이 「하늘나라」, 「이 어둔 밤」에서 보여준 멜로디의 낙차를 더욱 빛나게 해줬다. 멜로디의 채도를 한층 끌어올린 상태에서 최대한 고스란히 전달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3,4집과 5집의 차이는 명백하다. 이상은의 곡 쓰기는 이 앨범에서 그 완성형을 드러냈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서 이상은은 여태까지 발매한 앨범에서 한층 더 도약한다. 블루스 세션에 맞춘 「달」은 이상은의 감정표현이 그만큼 다채로워졌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벽」은 이상은의 보컬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점을 건드린다. 소품이라 할 수 있는 「여름밤」조차도 단지 톤의 일정한 유지만으로 곡 전체의 무드를 이끌어가는 역량을 발휘한다.  
 
그리고 「언젠가는」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커버를 시도한 곡이지만, 여전히 원곡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였던 안진우와 같이 작곡을 했지만 실질적인 곡의 주인은 이상은이다.) 그들은 이 곡의 브릿지와 훅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전조의 무시무시한 도움닫기를 대체할 커버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한 도움닫기가 이 곡의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4집에서 타인에게 향한 애정이 실패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낸 이상은은 자신의 회상과(「프롤로그」), 추스름(「벽」), 그리고 회한(「달」, 「혼자라는 느낌」), 위태함(「이 어둔밤」)을 솔직하게 이 앨범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길」과 같은 수작은 그런 맥락 속에서 탄생한 절창이었던 것이다.)그래서 이 앨범은 간결한 만큼 날카롭고, 날카로운 만큼 위태롭고, 위태로운 만큼 아름답게 내리꽂힌다. 이러한 위태로움은 『공무도하가』나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조차도 다시 재현되지 못했다. 이 앨범이 이상은의 또 다른 걸작이라고 불러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은은 앨범의 마지막 곡인 「Twisted But Straight」에서 대비되는 성질들을 노래한다. 노래 중간에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이상은의 보컬에서 『공무도하가』와 『외롭고 웃긴 가게』의 전조를 읽어내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이상은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노래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무시무시한 천둥소리가 온 세상에 울리기 직전에 내리친 한 줄기 번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