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놋주발 시대의 사랑

김오키 (Kim Oki) 『거대한 뿌리』
1,41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7.01
레이블 비트볼뮤직

박지하의 「사랑」과 김오키의 「사랑」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박지하의 그것이 목소리를 에코와 LP 특유의 노이즈로 감쌌다면, 김오키는 그 목소리를 내버려 둔 채, 단지 이중주 안에 던진다. 박지하는 목소리를 건들고, 김오키는 목소리를 내버려둔다. 박지하는 흔들고, 김오키는 던진다. 전자는 세계를, 후자는 맥박 속에.

 

김오키의 미적 테마는, 굳이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사람에 가깝다. 그의 시작부터 이 앨범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그가 천착해온 주제이자, 하나의 세계였다. 그가 붙인 제목들조차 거진 ‘사람’이거나, 사람이 느낀 감정들, 혹은 사회에 부닥치는 사람에 집중해왔던 것은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일대의 전환기를 맞은 듯이 보인다. 초상화에서 벗어나,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를 다루고,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감정들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이 앨범의 테마는 거기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충실한다.

 

이 앨범에서는 색소폰의 키를 여닫는 소리, 더블베이스가 탭핑하는 소리, 마우스 피스로 숨을 짧게 치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다. 원 테이크 녹음이 가진 특유의 응집력 결핍을 보완하되, 악기가 내는 소리와 악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리들을 최대한 가득 담아냈다. 결과적으로 소리의 응집력도 높이면서, 연주의 현장감도 살아났다. 그 점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느 곳을 부여잡아도, 이들의 해석은 푸릇푸릇하다.「묘정의 노래」에선 어떤가. 양금의 루프 속에 색소폰과 베이스가 틈입하는 동안, 플룻이 생동감있는 터치를 더한다. 단순한 전개에 그렇게 숨통을 트고 있다.「달나라의 장난」의 마지막과 「거대한 뿌리」의 초반을 장식하는 베이스는 같은 베이스 라인임에도 전자에서는 장난기로 넘실대고 후자에서는 기괴함으로 발전한다. 국악에 빌려오고, 재즈의 근원에서 빌려왔으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놋주발을 빌려왔으되, 거기서 반짝거리는 광택은 온전히 그가 낸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라는 형식은 이 앨범의 연결은 도드라져 보이게 만든다. 곡과 곡 사이에 흐르는 공백조차도 카세트 테이프의 공간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은 그 특징까지도 의도로 살린다. (사실, 카세트 테이프의 진정한 정체는 보급형 LP이다.)

 

베이스와 타악은 이런 맥락 속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견지하며 엮이고 있다. 사실상 이 앨범의 기초를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은 베이스이고, 베이스 라인의 테마가 이 앨범에서 거의 대부분의 곡들에 주요 테마를 제공해주고 있다. 서둘지 않고, 살짝 텐션을 잡아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단단하게 연결된다.

 

그러고 보니 이 앨범에서는 유독 선적인 전개가 도드라져 보인다. 베이스 라인과 색소폰의 라인이 앨범 전체의 구조를 거의 받치고 있고 플룻과 타악, 피리와 태평소가 풀방구리처럼 이리저리 판을 휘저으며 알토란 같은 구근을 주렁주렁 맺고 간다. 그렇기에 단순히 곡 단위로 끊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하나의 테마로만 한정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 또한 아니다. 「5월의 형제」 같은 작품을 자신이 리바이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창작뿐만 아니라, 김오키의 행동, 무브먼트까지도 포함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여전히 김오키의 앨범이다. 사실 그가 이 앨범에서 한 역할은 지극히 사소하기까지 하다. 그냥 놓은 것이다. 맺힐 때 맺고, 끊을 때 끊고, 따라갈 때 따라가고, 멈출 때 멈춘 것이다. 근데 그게 기가 막히다. 그게 정확하고 세밀한 지점에서 맞아 떨어지니까.

 

김오키의 연주는 포장되는 순간 죽는 연주다. 다시 말해, 포장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것을 자르는 순간, 김오키의 장점들은 상쇄되고 죽은 연주만 남는다. 그런 점이 전작들에 비해 촘촘하게 엮였다는 점에서도 이 앨범은 김오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젠 체하지 않았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멈출 수 있을 때 멈추었다. 그렇게 비범해진다. 사소한 점으로 비범한 점을 만들어낸다.

 

「도적」에서 태평소와 더불어 나란히 연주하던 색소폰이 점점 소리를 그치고 잠깐 사이에 “호우”하던 추임새를 넣는다. 그 소리는 아마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마치 관악기의 은유처럼 들렸던 것은 이 앨범이 지닌 치밀한 구석이 만들어낸 착시 탓이 크다. 그런 착시마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좋은 음악은 늘 그렇게 청자에게 덧씌워지기 마련이니까. 아마도 이 소리는 김오키만이 남길 수 있는 지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오키만의 지문마저도 빛나기에, 김오키의 뿌리는, 더불어서 김오키의 사랑은, 거대하다.

Track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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