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Album-Out #7-2] 겉과 속이 다른 리얼리티, 어쩌면 말 되는 아이러니

레드벨벳 (Red Velvet) 『Red』
2,56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9
Volume 1
레이블 SM
공식사이트 [Click]

21세기 대한민국 아이돌의 음악은 기획부터 작사와 작곡, 안무와 스타일링 등 모든 제작과정에 다양한 인력들이 총동원된다. 한 사람이 혼자서 만든 앨범의 경우에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진대 애초부터  각개 분야 여러 사공이 동원된 아이돌 음악, 나아가 앨범이다. 따라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요정', '전사', '섹시', '사이버', '짐승', '청순', '소녀' 등 한 단어로 표현 가능한 지극히 단순화된 콘셉트나 메시지를 동어반복하거나 아예 그러한 아이덴티티 구축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 도리어 모두에게 편하고 흔한 길이었다.

 

그나마 뻔한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를 축으로 일부 대형 기획사들은, 자본력을 바탕에 둔 장기간의 투자와, 과거 성공 경험으로부터 노하우를 녹여낸 정밀하고 체계화된 노력을 통해, 뻔한 아이돌 시장에서 참신한 루트들을 절묘하게 찾아내기도 했다. 에프엑스의 성공은 그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산물이었다. 에프엑스의 엉뚱하고 4차원적인 가사와 콘셉트는 다른 어떤 아이돌 그룹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을 뽐내며, 초창기 가사가 난해하다는 평을 뒤엎고 대중과 평론가 모두의 호평을 끌어낸 바 있다. 어쩌면 이미 선배 에프엑스의 선례가 있는 상황에서 데뷔한 레드벨벳에게, 새로이 발 디딜 블루오션은 없어 보였다.


 

1. 비상: 남성도 여성도 아닌 육체

 

SM의 다른 걸그룹 선배가 그래왔듯이 루키 레드벨벳이, 전형적인 여성성으로부터의 해방, 청순이나 섹시로 쉬이 양분화되는 걸그룹 양태로부터의 탈출하려고 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데뷔 싱글이었던 「행복(Happiness)」(2014)에서의 발랄한 소녀 이미지나 미니앨범 『The 1st Mini Album : Ice Cream Cake』(2015) 속 「Ice Cream Cake」의 무드는, 기존의 양분화된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비교대상이 된 소녀시대나 에프엑스라는 자사 선배들의 후광이 지나치게 커서인지 레드벨벳의 정체성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난해하고 이국적인 스탠스를 두고 에프엑스를 닮았다는 이도 있고, 비주얼 콘셉트에서는 소녀시대를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해외 작곡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개인 한명 한명의 색이 도드라지지 않는 코러스 위주의 보컬링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샤이니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대형기획사를 등에 업은 특별할 것 없는 콜라주 그룹이라고 치부하기엔 레드벨벳만의 분명한 ‘무엇’이 있어보였다.

 

보아나 소녀시대처럼 중학생, 고등학생 소녀로부터 출발하여 숙녀가 되기까지의 성공적인 성장서사를 이미 완성한 바 있는 SM 입장에서 야심차게 새로운 그룹을 런칭할 때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여성성의 포기가 반대로 극단적인 남성성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에프엑스의 성장형 모델이 선행했지만 바로 직전의 샘플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행복(Happiness)」, 「Be Natural」, 「Ice cream cake」 등을 거친 고민 끝에 레드벨벳이 「Dumb Dumb」에서 보여준 제3의 포지션은 아예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인형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Dumb Dumb」의 패션은 전례를 통틀어서도 가장 소비적이고 통일적이면서도 동시에 덜 여성스럽다. 여느 때처럼 색깔(스타킹이나 에이프런)로 멤버들을 구별했지만, 강렬한 붉은 빛으로 통일된 이들의 복장은 전보다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르포와 로보틱 댄스가 섞여 있는 안무는 눈길을 더욱 끈다. 섹시하거나 우아한 웨이브 대신 좌우 흔들기와 털기를 선택한 안무나, 하체보다 상체를 강조한 원 동작, 그나마 있는 선적인 안무도 소요 시간을 단축하여 해치워버리는 「Dumb Dumb」의 모션들은 여타 걸그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같은 동작을 남성그룹이 했다면 그 절도와 박력은 더욱 강했겠지만 그렇다고 동작들이 온전히 남성적인 안무인 것도 아니다. 아예 격렬하게 배를 튕기거나 개다리춤을 추는 모습들 또한 생소하다. 이처럼 과격한 안무는 일종의 파격이지만 일회성 콘셉트가 아닌 「Ice Cream Cake」 시절부터 조금씩 구축해온 정체성이기에 어색하지 않다.

 

통일성, 무표정한 얼굴,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듯 삐걱거리는 안무 등 레드벨벳의 스스로 '인형 되기'는 사실 단순한 외형적 포지셔닝에 지나지 않는다. 공장화된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고 그럴 듯하게 포장할 수도 있지만 솔직한 표현으로 '조금 다르게 예뻐 보이기 위함'일 뿐이다. 물론 기존에도 인형 콘셉트나 박력 있는 군무 등의 여자 아이돌의 콘셉트로 차용된 경우도 있었지만 각각이 분리된 일회성 콘셉트에 불과했다. 일회성이 아니기에 굳이 태엽인형과 같은 낡은 관절 동작들을 반복할 이유는 없다.

 

에이프런 치마 위 개다리 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생경한 하드웨어는 음악과 어울려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반부 「Dumb Dumb」, 「Huff n Puff」, 「Red Dress」 등 빠른 템포의 팝댄스곡은 물론 후반부 알앤비 그루브가 주된 「Oh Boy」, 「Lady’s Room」와 같은 곡에서도, 이전 싱글이나 미니앨범과 비교되는 강하고 분절된 비트가 배경의 주를 이룬다. 한 곡에도 몇 명씩 작곡자가 달라붙기 때문인지 다양한 사운드 소스가 조합되는 근래 SM표 싱글 성격에 딱 들어맞는다. 「Dumb Dumb」의 경우만 해도 브라스를 비롯해 치고 빠지는 일렉트로닉 소스들의 그루브가 굵직하여, 선형의 사운드로 여성스러움이 조금이나 어필되었던 「Ice Cream Cake」과 비교하여 구수한 그루브 안무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유려한 랩이나 멜로디가 강한 보컬보다, 보컬링에 가까운 래핑과 코러스 위주의 훅 역시 레드벨벳의 무성(無性) 이미지와 유관해 보인다.


 

2. 중력: 포기할 수 없는 여성적 서사

 

『Red』의 정체성은 한 가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또 아이러니한 점은, 인형에게도 성별이 있다는 것이다. 성별에 무관한 무한긍정의 감수성을 앞세우면서도 결국 소녀 화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덧씌운 「행복(Happiness)」 이후 순수한 사랑에 빠져드는 「Be Natural」이 다음 싱글이었던 점이나, 소녀적인 「Ice Cream Cake」과 숙녀적인 「Automatic」이 미니앨범 타이틀의 권력을 양분하고 있었던 점은, 소비 대상의 취향이 어떻든 나름의 여성성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걸그룹의 의지를 보여준다. 미성년의 경계성과 동시에 자신이 여성임을 어필하는 양가적 두 속성은 앨범 가사의 내용적 측면에서 공존의 길을 택한다.

 

네 앞에서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어색하기만 하고(「Dumb Dumb」), 쟁취하지 못한 이상향을 향해 숨 헐떡이며 내달리고(「Huff n Puff」), 네 얘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싶어 하고(「Campfire」), 너를 통해 내 세상이 완성이 되는(「Oh Boy」) 앨범 『Red』의 서사는 전형적인 여성적 수동태이다. 이는 엉뚱하거나 노골적인 수사를 내비치는 에프엑스식 판타지와 다르게, 레드벨벳의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적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러한 반영은 작사가보다 레드벨벳에 초점이 맞춰진다. 에프엑스의 「Electric Shock」(“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끝이 안보여 떨어져 쿵. 여기는 어디? 열심히 딩동딩동 도대체 난 누구? 머릿속이 빙그르르르르”)와 러블리즈의 「Ah Choo」(“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 난 생겼어. … Ah-Choo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너만 보면 해주고픈 얘기가 참 많아”)가 모두 가능했던 서지음(작사가)이 굳이 「Dumb Dumb」(“너 땜에 하루 종일 고민하지만 널 어떡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 난. … 그 눈빛은 날 아찔하고 헷갈리게 해. 내 이성적인 감각들을 흩어지게 해”)의 표현을 택한 것은 비단 작사가의 독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녀시대의 「Mr. Mr.」나 「Party」처럼 보다 당당한 여성적 주체를 내세울 수 있는 조윤경이 굳이 「Campfire」나 「Red Dress」식의 소녀 감성을 택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가사마저 여러 사람의 공동 작업 결과로 이루어지는 프로덕션 특징상 여전히 톡톡 튀는 표현들이 눈에 띄면서도 그 내용 만큼은 범상한 소녀의 것이기에 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인형이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그것의 정신적 주체가 소녀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현실은 결국 레드벨벳이 취하고 있는 외피의 특수성과는 정반대의 평범함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의 노래’가 이미 아이돌 시장에서는 뻔한 레드오션 같지만 적어도 SM 내부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녀들의 시대를 부르짖던 9명은 8년을 지나 8명의 성인이 되었고(소녀시대), 에프엑스는 별나라에 있다.

 

레드벨벳이 포기하지 않은 내용 측면의 예사성은 비교적 고르게 구성된 사운드 프로그래밍을 통해 균형감을 유지한다. 극단을 오가지 않는 『Red』의 영리한 사운드 스탠스는 앨범의 미덕을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전반부 런던 노이즈(LDN Noise)가 주도하는 신스팝풍의 댄스곡으로부터(「Dumb Dumb」, 「Campfire」, 「Red Dress」) 후반부 다니엘 오비 클래인(Daniel "Obi" Klein)의 이름이 크레딧 곳곳에 남겨진 알앤비 넘버로(「Lady’s Room」, 「Time Slip」, 「Cool World」 권력이 이양되지만, 사실 밝은 애교풍의 모던록 「Day 1」 정도를 제외하고는 두 구간의 갭이나 질감의 차이가 크지 않다. EDM 소스를 잔뜩 가미한 트랩이든, 레트로한 비트든, 설령 강한 베이스 라인이 구간을 지배하는 힙합 비트라고 할지라도, 여지없이 반대편의 사운드를 꼼꼼히 섞어놓는다던가, 가벼운 소녀톤의 코러스로 그룹의 정체성을 환기한다.


 

3. 비상과 중력의 접점: 이중성의 주류화

 

레드벨벳의 개성이 공중으로 붕 뜨지도, 뻔하디 뻔한 감성으로 가라앉지도 않는 것은 그룹의 애매모호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각 속성을 동시에 취하고자 하는 『Red』의 이중성 덕분이다. 외면은 '일률적'이지만 동시에 발버둥치는 몸짓은 '독특하고 격렬'하며, 다시 그 내면은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소녀'라는 이중·삼중의 모순성이 레드벨벳을 지탱하는 에너지라는 의미이다. 무슨 소리일까 싶은 궤변이지만, 사실 그러한 모순적인 매력이 일상을 지탱하는 현실인 것을 떠올리면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다.

 

반대의 경우처럼, 에이핑크나 러블리즈, 여자친구처럼 소녀의 감성을 매번 뻔히 소녀티를 내며 드러내는 것이 소녀의 전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뭇 귀엽고 청순하고 동시에 진지하기까지 한 전형적 속성들의 집합은 도리어 소녀의 비전형을 강요한다. 「Dumb Dumb」의 무대 의상이 뮤직비디오의 앨리스 복장과 다르게 펑퍼짐한 맨투맨 티셔츠나 볼캡, 핫팬츠처럼 트렌드의 최전선이나 아이돌 의상에 구애받지 않는 일상복인 것인 점이나 레드벨벳의 메인보컬, 리드보컬인 웬디와 슬기가 아이돌 그룹 흔한 레퍼토리인 소울 충만한 애드립을 남발하지 않는 것 또한 「Dumb Dumb」의 진짜 지향점을 보여준다.

 

『Red』는 자기모순적인 지향을 통해 보다 현실에 가까워진 중도적 판타지를 구현한다. 다만 이는 단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말하는 황희정승식 논리와는 다르다. 그 지향점만 일정하다면, 참여한 프로듀서가 몇 명이든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증명이다. 다양한 보기 가운데 여럿을 취한 다면화된 아이돌 음악의 생존 사례이기도 하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아이돌이기에 더욱 현실의 대중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레드벨벳의 기조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들의 데뷔작은 성공적이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Dumb Dumb
    서지음, 김동현
    Ldn Noise, Deanna Dellacioppa, Taylor Parks, Ryan S.Jhun
    Ldn Noise, Deanna Dellacioppa, Taylor Parks, Ryan S.Jhun
  • 2
    Huff n Puff
    켄지
    Alex G, Anne Preven, Will Gray, Jaden Michaels
    Alex G, Anne Preven, Will Gray, Jaden Michaels
  • 3
    Campfire
    조윤경
    Ldn Noise, Taylor Parks, Denzil `DR` Remedios, Ryan S.Jhun
    Ldn Noise, Taylor Parks, Denzil `DR` Remedios, Ryan S.Jhun
  • 4
    Red Dress
    조윤경
    Ldn Noise, Nermin Harambasic, Rodnae `Chikk` Bell, 최진석, Charite Viken, Ryan S.Jhun
    Ldn Noise, Nermin Harambasic, Rodnae `Chikk` Bell, 최진석, Charite Viken, Ryan S.Jhun
  • 5
    Oh Boy
    구태우
    Herbie Crichlow, Lauren Dyson, Jin Choi, Ldn Noise
    Herbie Crichlow, Lauren Dyson, Jin Choi, Ldn Noise
  • 6
    Lady's Room
    켄지
    켄지, Daniel `Obi` Klein, Oliver McEwan, Ylva Dimberg
    Kenzie, Daniel `Obi` Klein, Oliver McEwan, Ylva Dimberg
  • 7
    Time Slip
    Misfit
    Daniel `Obi` Klein, Johannes `Josh` Jorgensen, Charlie Taft, 진보
    Daniel `Obi` Klein, Johannes `Josh` Jorgensen, Charlie Taft, 진보
  • 8
    Don't U Wait No More
    100%서정
    Dem Jointz, Taylor Parks, Ryan S.Jhun
    Dem Jointz
  • 9
    Day 1
    황현
    황현
    황현
  • 10
    Cool World
    임서현
    Daniel `Obi` Klein, Various Artists, Andy Love
    Daniel `Obi` Klein, Various Artists, Andy Love

Editor

  • About 정병욱 ( 11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