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Album-Out #2-3] 변하지 않는 것

딥플로우 (Deepflow) 『양화』
1,576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4
Volume 3
레이블 VMC
공식사이트 [Click]

『양화』의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모든 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순서대로 들을 것. 대뜸 옆구리를 찔러본들 단단한 서사의 구조를 집어삼킬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기에는 시작도 끝도 모두 창대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전지전능한 위인을 기대한다면 얼른 물러설 것. 불완전하다는 것이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이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술의 돌탑에 또 하나 공적을 얹은 것도, 보헤미안의 경계없는 자유를 탐닉하는 것도, 하물며 시대의 오점에 행동을 촉구하는 공적인 앨범도 아니다. 공동체주의에 적을 두지만, 아닌 게 아니라 하잘 것 없는 책무를 과시하며 사람을 깔보는 꼰대가 아닌 어른의 이야기이다. 흔히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특별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 그러니 이 앨범이 발매된 후 나도는 명반의 호칭은 일종의 함정인 셈이다.

 

김영대 필자는 《음악취향Y》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앨범인 『180g Beats』(2000)에 대한 평에서 한국힙합에 공이 혁혁한 앨범들을 “180g짜리 Beat를 엔진으로 얹고, Heavy한 Bass 위를 흐르는 Modern한 Rhyme을 좌우 바퀴로 달아 『누명』이라는 이정표에까지”라는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해놓았다. 한 번 재고해보자. 딥플로우 본인은 부담스러워 할 것도 같은데, 어쨌거나 반응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양화』는 명반으로 남을 듯하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DJ 소울스케이프가 선각자라는 건 불변의 진실이다. 피타입과 버벌진트가 라임의 방법론을 이룩한 건 한국힙합에 귀를 기울여 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작품성에 시기까지 맞은 『누명』(2008)은 미사여구가 불필요한 앨범이다. 『양화』는 이것들에 비견할만한가? 그에 걸맞은 성취가 무엇인지 논해야 하지 않을까?

 

『누명』 이전의 명반들이란, 척박한 시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제시한 이들의 몫이었다. 그 무렵 힙합에 열광하는 이들은 덩어리를 이루다가 금세 흩어지곤 했다. 아무도 제대로 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는 와중에 뮤지션들은 끔찍한 세태를 랩으로 예언하며 경고하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소득은 '명반'이라는 단어 하나가 고작이었다. 음악으로 증명해도 체감할 수 없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다른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힙합에는 그게 없었다.

 

근래 ‘발라드 랩’으로 불리는 것들의 정체도 분명해졌다. 이후에 씬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변모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부패하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독하다 싶을 만큼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빅딜에서부터 VMC에 이르기까지, 딥플로우는 한결 같았다. 열심히 했다. 뻔한 말로 내색하지 않았다. 조금씩 바꾸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힙합이 대세 소리를 듣는 동시에 씬에 대한 내부의 비판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4년만에 한 레이블의 수장이 되어 『양화』를 내놓았다.

 

“내가 왜 여태 열받은 건지 / 이제 보니 꽤 볼만한 경치 
 내 알 바야 니들이 뭘 하든지 / 난 지금 열반의 경지” (「양화」 中)

 

『양화』 속 그는 독단적이지 않지만 사사롭고, 수긍하지만 고민을 거듭한다.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그가 과시하는 건 지리멸렬한 풍경에도 개의치 않고 마침내 ‘열반’에 오른 자신이다. 그가 자랑스러워 하는 낡은 신발과 그가 지켜온 태도, 동료로서 함께 나아가는 VMC 멤버들에 대한 자부심은 가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힙합에서 강조하는 요소들과 상통하며 그가 이 판의 멋을 뽑아내는 작업에 충실함을 반증하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장소의 개념이다. 즉, 공간은 이 앨범에서 아주 중요한 테마인데, 『Heavy Deep』(2011)과 달리 딥플로우는 양화대교를 건너 영등포에 도착해 잠을 청한다. 이미 홍대는 그의 실제 집이 아닌 상황이다. 더욱이나 이미 변해버린 그곳으로 인해 신물이 난다. 실상 벗어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무리 씹어대도 홍대에 발을 들이면 안도감이 든다. 그야말로 빌어먹을 안도감이다.

 

특정 공간을 상정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법은 항상 있었지만, 특히나 요즘에 애용들 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멀리 나갈 것 없이 수다쟁이의 앨범 『북가좌동 349-17』(2015)처럼 나고 자란 곳을 모티브로 깨달은 것을 설법하는 클리쉐가 있는가 하면, 「안산 느와르」(2014)의 차붐은 리얼리즘을 강조하고 또 다른 가사에의 문법을 제시한다. 방법론은 다르더라도 어쨌거나 흔하다. 『양화』에서 딥플로우는 무려 세 개의 장소를 차용한다. 그곳을 오가며 변하는 감정들의 고리가 앨범의 서사를 받쳐주는 가장 지대한 요소로써 기능하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하는 진솔함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를 더 완벽하게 구성하고자 피처링 진과 스킷 역시 효과적으로 동원했다. 몇몇 이야기 밖으로 뛰쳐나가는 랩퍼들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션이슬로우나 넉살 같은 이들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곡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택시기사의 묘한 반응차이는 어떻고? 모든 것들은 홍대와 영등포, 그리고 양화를 거치는 딥플로우의 이야기를 위해 작동하고 있다.

 

“난 네가 처음 목격한 목걸이 없는 Swagger” (「낡은 신발」 中)

 

앨범 속 딥플로우는 랩퍼이고 동시에 프로듀서다. 우탄의 데뷔LP 『ZOORECA』(2014)의 뻔한 프로듀싱 이후 TK가 단기간에 이 정도로 준수한 비트를 선보인 건 그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딥플로우의 꼼꼼한 디렉팅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가령 「양화」나 「Bucket List」의 비트, 「불구경」과 「작두」가 갖는 정서는 1년 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현관문 앞에서 좌절하고 친구들과 접신에 가까운 경지를 보이며 가족들을 떠올린다. 지폐 스웩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사랑할만한 가사를 쏟아낸다. 딥플로우의 캐릭터는 완연한 그 자신이다. 『양화』 속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그럴 듯한 고백으로 수용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선례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드러나지 않은 ‘이 다음’에 현재로서는 가장 걸맞은 처세술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전부 놓을까 망설이다 또 움켜쥔다. 그들이 사랑하는 불가항력이다. 종합하자면, 작가주의 혹은 기술자의 태도로 무장해서 바닥까지 파고든 이방인의 앨범이 아닌데도 이만큼의 취급과 존경을 단숨에 움켜쥔 이유는, 한 사람이 살아온 커리어와 짐작할 뿐이었던 내면이 송두리째 드러난, 시기를 기가 막히게 타고난 힙합이기 때문이다.

 

『양화』는 한국힙합이 지금껏 다다른 누명이라는 이정표 너머로 이끌어줄 새로운 모델의 엔진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그 앞에 당장 서 있는 사람의 이름은 분명 『양화』일 테다. 그 사람이 돌아설지 묵묵히 걸어나갈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왠지 걸어갈 것만 같다. 이리도 반쯤 넋나간 확신을 준다. 그렇게 질리고도 기대를 품게 한다. 인터뷰에서 딥플로우는 지금의 한국힙합의 역사가 미국으로 치면 94년도 쯤일 거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후에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연구한 자들에게 『양화』는 어떤 모습의 앨범으로 남을 것인가. 바로, 놀랍도록 강렬하게 살아 있는 정신의 결과물이다.

 

 

Credit

Executive Producer : 딥플로우, 석찬우
Co-Producer : 딥플로우, TK, 석찬우
Recording Engineer : 딥플로우@불가마 Studio
Mixing Engineer : 브래스코@U.D.S Studio
Mastering Engineer : 브래스코@U.D.S Studio
A&R Director : 석찬우
Management : 석찬우, 이관복
Art Director : 로디가 #TheManBehindCovers
Original Artwork : 이정수@Pivot Studio
Calligraphy : 김기언
Revision / Design : 로디가 #TheManBehindCovers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열반
    딥플로우
    TK, 딥플로우
    TK
  • 2
    불구경
    딥플로우
    TK, 딥플로우
    TK
  • 3
    낡은 신발 (feat. 태완, 션이슬로우)
    딥플로우, 태완, 션이슬로우
    TK
    TK
  • 4
    잘 어울려
    딥플로우
    딥플로우
    딥플로우
  • 5
    당산대형 (feat. DJ소울스케이프, 던밀스, 바스코)
    딥플로우, 던밀스, 바스코
    TK
    TK
  • 6
    작두 (feat. 넉살, 허클베리피)
    딥플로우, 넉살, 허클베리피
    딥플로우
    딥플로우
  • 7
    빌어먹을 안도감 (feat. 오디)
    딥플로우, 오디
    TK, 딥플로우
    TK
  • 8
    나 먼저 갈게
    딥플로우
    딥플로우
    딥플로우
  • 9
    양화 (feat. 소울맨)
    딥플로우, 소울맨
    TK
    TK
  • 10
    역마
    딥플로우
    Assbrass
    Assbrass
  • 11
    Cliche (feat. 케이온, 차붐)
    딥플로우, 케이온, 차붐
    TK, 딥플로우
    TK
  • 12
    Dead Line (feat. 벤)
    딥플로우, 벤
    TK
    TK
  • 13
    開路 (feat. 드래곤에이티, 샛별)
    딥플로우, 드래곤에이티
    TK, 딥플로우
    TK
  • 14
    Bucket List (feat. 우혜미)
    딥플로우
    TK, 버기
    TK, 버기, 준백
  • 15
    가족의 탄생 (feat. 던밀스, 우탄)
    딥플로우, 던밀스, 우탄
    TK, 딥플로우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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