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Album-Out #1-1] 고약한 침묵과 무관심을 관통하는 묵직한 일침

어비스 (Abyss) 『Enemy Inside』
1,899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3
Volume EP
레이블 미러볼뮤직
공식사이트 [Click]

James Cameron의 89년작 《Abyss (심연)》는 독일 철학자 Nietzsche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92년 결성된 헤비메탈 밴드 어비스(Abyss) 역시 연필로 무언가를 바쁘게 적으며 자신들의 첫 앨범 첫 곡에 「Abyss」라는 제목을 붙였다. 카메론의 영화가 떠오르는 무거운 적막, 귀여운 아기의 옹알이, 그리고 한 여자의 웃음소리 끝에 묻어나는 쾌감의 신음소리. 비늘처럼 일렁이던 배경 음악은 점점 거대한 형세를 갖추더니 마지막 총 장전 소리 앞에 허무하게 스러진다. 시작부터 비장하다. 억누르기 힘든 감정을 추동하는 알 수 없는 그 심연을, 이제 우리가 들여다 볼 차례다.

 

첫 곡은 적(Enemy)에 관한 이야기이다. 허기진 패배의식과 후회, 슬픔과 눈물이라는 내 안의 적을 쳐내고 거짓을 일삼는 우리 앞의 적(들)을 향해 궐기하자는 분노와 함성이 한 곡 그득하게 울려 퍼진다. 혹 이것은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향한 것일까. Vinnie Paul과 Dave Lombardo를 좇는 임동희의 드러밍은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통'이라 일컫는 여의도의 한 건물을 짓이길 듯 쳐들어가고 있고, 들국화와 조하문을 좋아하는 Stryper와 Faith No More 애청자 이준호의 샤우팅은 오늘 1주기가 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 마냥 귀를 찌른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국민을 등지고 떠난 순방길을 태워버릴 듯 트윈 기타의 강력한 훅과 드럼의 빠른 블래스트 비트는 ‘적은 결국 우리 안의 적’이라는 사실을 기어코 환기시키며 곡의 매듭 역할을 해낸다. 사두, 오딘과 어울리며 데스/스래쉬 메탈을 즐겼던 광주 출신 록 밴드가 왜 하드코어에 경도되었는지, 이 곡은 분명하게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첫 곡이 적을 규정했다면 두 번째 곡 「Bull Fight」는 각개전투를 종용한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이곳, 혼자서 싸워나가리”라는, 조금은 참담하면서도 현실로서 굳건한 우리의 슬픈 입장을 이 곡은 빼고 더함 없이 담아내고 있다. Red Hot Chili Peppers를 좋아하는 베이시스트 이기석의 취향이 묻어나는 바운스에 Kirk Hammett식 기타 솔로를 덧댄 음악적 모양새는 새로운(또는 ‘다른’) 것들을 흘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밴드의 열린 성향과 진배없는 것이다.

 

don't tell me lie
stop lying to me
you have fight with their bull shit words
... 「S.M.C」 中 ...

 

전 국민을 강타한 ‘비타500’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가 인상적인 「S.M.C」는 이 앨범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기타 리프와 보컬 멜로디, 그리고 리듬 백킹을 들려주는 곡이다. Shadows Fall, Killswitch Engage, Megadeth를 뒤섞은 응어리진 톤(tone)들의 아우성, 곡 시작에서 들려준 전투적인 스네어 루디먼트(rudiment)는 눈만 뜨면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의 주둥아리를 박살내는 것 같아 후련하다.

 

미니 앨범이어서 일찍 맞게 되는 마지막 곡은 다름 아닌 「Kill the Queen」. 규정되었던 적이 이처럼 구체화 되면서 글쓴이의 추측은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게 되었는데, 인트로를 수놓은 《레옹》의 악역 Norman Stansfield (Gary Oldman)의 대사 "bring me everyone, e~veryone!!!"를 우리가 아는 ‘공주의 수첩’에 대입해보면 이 곡은 비로소 온전한 제 모습을 갖춘다. 국민을 노예로 생각하는 여왕의 혀를 잘라버리겠다는 잔혹성. 그 잔혹성이 모종의 정당성을 얻어 세상이 뒤바뀔 때 우리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쿠데타로 독재한 70년대의 일상을 민주주의가 일상인 2010년대에 재현하려는 여왕의 의지를 꺾는 것. 산맥처럼 들이치는 리프 훅과 Kerry King 같은 트레몰로 암(tremolo arm) 솔로가 그것의 도구 마냥 바짝 약이 올라 있다. 순간 나는 앨범 재킷에서 죄인을 망자로 이끄는 망나니의 칼을 보았다.

 

다시 니체의 말을 곱씹어 본다. 괴물의 심연은 들여다보지 않으면 돌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곳을 떠도는 고약한 침묵은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자들의 무관심을 온상으로 피어나고 자라나 도처로 번진다. 어비스는 그 꼴은 못 보겠다는 듯 이 묵직한 수작을 우리에게 건네었다. 이제, 괴물의 신경을 긁는 일은 나와 당신의 몫으로 남았다.

Credit

[Member]
이준호 : Vocal
백종인, 문철민 : Guitar
이기석 : Bass
임동희 : Drum

All Music Written & Performed by 어비스
ex. 「Abyss」 Written & Sampled by 김창동(Mantra Effect)

Produced by 이기석 & 어비스
Recorded & Mixed by 조상현(@몰스튜디오)
Engineered by 오혜석(@몰스튜디오)
Mastered by 성지훈(@JFS마스터링)
Album Designed by 서정완, 문철민
Art Works by BROWN PEANUT, Bluce666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Abyss (inst.)
    -
    김창동
    이준호
  • 2
    Enemy Inside
    어비스
    어비스
    어비스
  • 3
    Bull Fight
    어비스
    어비스
    어비스
  • 4
    S.M.C.
    어비스
    어비스
    어비스
  • 5
    Kill The Queen
    어비스
    어비스
    어비스

Editor

  • About 김성대 ( 66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