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음악으로 듣는 서태지 자서전

서태지 (Seo Tai Ji) 『Quiet Night』
2,50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10
Volume 9
레이블 서태지컴퍼니

아홉 번째 앨범에서 서태지는 다시 '아이들'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고요한 밤"이라는 앨범 타이틀에 “라파팜팜” 산타 이야기가 곡마다에서 반복되는 점, 게으름을 철학으로 승화시킨 리라쿠마가 파이터로 등장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되레 "몸만 커진 산타"가 된 자신의 옛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며 그는 스스로도 아이 때로 돌아가려 한 것 같은데 「너에게」를 크롬 도금 한 듯한 「소격동」은 그 소소한 시작이었다.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추억하면서 등화관제와 공습경보를 잊지 않고 영상으로 다뤄낸 역설의 심경. 그것은 결국 아홉 곡으로 펼쳐낼 회고와 고백의 아픈 속살이었던 것이다.


「90s ICON」을 보자. 「죽음의 늪」 비트에 고뇌에 찬 IDM을 입힌 이 곡에서 서태지는 자신을 포함한 가요계 '90년대 아이콘'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자조인지 자괴인지 모를 이 적당히 냉소적인 트랙은 지드래곤이 떠도는 트랩(Trap)을 점처럼 박은 두 번째 싱글 「크리스말로윈」의 브릿팝 트로트, 그러니까 뮤즈(Muse)와 박현빈이 디스코 장에서 어둡게 범벅된 곳에 정면 배치되는 곡으로 자리해 있다. 이는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에 기댄 작품의 전반적 인상에 태지 보이스(Taiji Boys) 3집 시절, 더 정확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나 「내 맘이야」의 정서를 일렉트로 텍스처에 실어 감행한 작은 전복 같은 것이다. 그는 비록 8집과 9집엔 '레퍼런스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듣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것이라는 게 그에 대한 나의 반박이다.


그리고 가사. 여태껏 가사는 서태지의 장점이자 강점이었다. 그것은 음악을 넘어서거나 음악을 살찌운다. 「소격동」으로 티격태격하던 팬들의 귀를 환기시켜준 「숲 속의 파이터」에 나오듯 그의 '참신한 가사'는 늘 본능에 가까운 어휘력의 산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어휘의 구상과 배치의 탁월함, 그리고 관찰력의 승리라 해야 할 그 타고난 재능은 오래전 「교실이데아」나 「인터넷전쟁」 등에서 충분히 증명된 것이다. 「F.M. Business」도 물론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신보에서 서태지의 어휘들은 분노보단 관조, 직설보단 은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서 지난 것들과 다르다. "기름진 배를 두드리는 한물간 90년대 스타"는 여전히 직설적이지만 그 스타가 느끼며 되새겨보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막연하고 맥락이 없다. 맥락 없는 멜로디는 불편해도 맥락 없는 이른바 시적인 언어는 때로 더 깊은 의미를 토해낼 수 있는 법이라 「Live Wire」와 「Take Five」의 구름 같은 감성을 잇는 「잃어버린」과 「비록」에서 서태지는 갖춘 것을 갇힌 것으로 여기는 이 시대 시인처럼 우뚝 서 있다. 언뜻 껍질 뿐인 텍스트인 듯 보여도 대상과 실체가 없던 그의 언어는 음악 위에서 비로소 뼈와 살을 얻는다.


더불어 대중뮤지션 서태지가 새삼 '대중성'을 논했다는 사실은 따로 흥미롭다. 나는 그래서 장르와 스타일을 떠나 이번 앨범을 서태지와 아이들 1, 2집 시절에 이으려 했는지 모른다. 감춰두었던 자신의 음악취향을 조금씩 드러냈던 태지보이스 3, 4집 시절보다 1, 2집 시절은 확실히 더 '대중적'이었다. 이후 솔로로 접어들면서 그는 장르적 문익점을 자처했고 근작 2장은 그 역할을 버린 것이라며 서태지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단언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번 앨범이 대중적이라는 사실이다. 혹 「Prison Break」의 난해한 하우스 비트를 들이대며 '이게 무슨?' 반문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2분대에서 펼쳐지는 친 대중적 장치들을 나는 다시 들이밀며 '이래서 대중적인 앨범!'이라 재반문 할 것이다. 특히 수록된 모든 곡들에서 쏟아지는 멜로디들은 그 자체 대중들을 빨아들이고 설득해낼 수 있는 서태지의 노하우나 다름없다. 취향을 양보하고 순수하게 이 음들에 귀 기울여 보길 때문에 나는 다시 한 번 권한다.


서태지는 같은 시대를 산 다른 많은 이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내 어린 시절 영웅이었다. 영웅은 종교와 비슷해서 세상이 제아무리 법과 도덕의 잣대로 그를 깎아내린다 해도 그를 향한 선망과 동경의 감정은 쉬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장르 전도사'를 인정한 그의 오늘 발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건 결국 고마움에서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와 콘(Korn),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과 비스티보이스(Beastie Boys)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만큼의 인지도를 누릴 수 없을 거라는 게 나의 확신이다. 즉, 얼터너티브 록과 뉴메탈, 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가 이 땅에서 '장사'가 될 수 있었던 사실에 서태지의 공이 미약하나마 없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기다. 음악 듣는 귀가 중학생 시절보다 좀 더 넓어졌다고 그를 폄훼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 그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에게는 솔직히 없다. 서태지는 어떤 장르를 놓고 평론가가 A4지 100장 분량으로 해야 하는 설명과 설득을 단 한 곡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나는 고마워해야지 그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쪽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무덤 흙이 거의 굳어가는 신스팝이라는 장르를 이처럼 거대하고 구체적으로 대중에게 들려주고 있는 그에게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동시에 ‘대세’인 다양한 일렉트로닉 소스들도 놓치지 않고 거기에 덧대고 있는 모습에 나는 팬으로서 또 한 번 뿌듯하다. 이건 찬양이 아니다. 그저 새 앨범을 낼 때마다 한 시대 또는 한 시대의 장르를 되짚어보게 해주는 대중음악인 서태지에게 전하는 일종의 감사 표시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Into
    -
    Docs Kim
    Docs Kim
  • 2
    소격동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3
    Christmalo.win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4
    숲 속의 파이터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5
    Prison Break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6
    90s ICON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7
    잃어버린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8
    비록 (悲錄)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 9
    성탄절의 기적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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