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일까?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늘 이 질문이 떠올랐다. 양희은의 소개로 만난 김홍순과 공동으로 작업해서 만든 이 앨범은 (Enigma로 대표할 수 있는) 90년대 초의 엠비언트 하우스 뮤직을 베이스에 놓고 재즈와 힙합 그리고 팝을 접목시킨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이상은의 곡은 시종일관 자신의 멜로디를 베이스 라인과 더불어 교차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베이스(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트지만)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기에 이런 안정감이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이 앨범의 곡은 전작 『더딘 하루 : Slow Days』(1991)에 비해 훨씬 정돈된 인상을 준다. (전작의 수록곡들이 지닌 편차는 이 앨범의 「솔직히 말해줘」나 「잃어버린 시간」에서 접할 수 있는 기복과는 다르다.)
 
이 앨범과 이현우의 리믹스 앨범 『꿈 Remix』(1992) 을 시작으로 국내 음악계에 발을 디딘 김홍순은 이후 이승철과 『색깔 속의 비밀』 (1994)과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였다. 에이치투오 3집, 삐삐밴드 1집의 마스터링 기사로 참여한 Mark Cobrin 또한 이 앨범의 마스터링을 시작으로 처음 한국 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앨범이 전작에 비해 훨씬 안정감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이 둘의 공이 크다. 그들은 이상은의 노래에 가장 적절한 무드를 맞추는 데에 집중한다.
 
이 앨범에서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나레이션의 등장이다. 때로는 리듬에 맞추어(「솔직히 말해줘」), 때로는 대사의 독백처럼 등장하는 나레이션(「너의 존재」)은 이 앨범의 촛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준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음악적 점검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앨범이 다소 경직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와 같은 ‘점검’의 소산이리라. (CD 마지막에 등장하는 리믹스 곡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점검’은 이 앨범의 정서를 추동시킨 ‘너’의 존재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토록 균일하고 일관된 ‘너의 부름’이 깨지는 순간, ‘나’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순식간에 ‘너를 부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그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혼자만의 사랑”으로 귀결되는 지점을 다루고 있다.
 
앨범의 가장 훌륭한 곡인 「뉴욕에서」는 바로 이러한 물음이 단순한 관성적 표현에서 나온 물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상은의 유려한 멜로디 라인이 처음으로 자신의 매력을 다하는 순간이라 표현할 수 있는 이 곡은, 다른 곡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한껏 묻어나온다. 우리는 이 곡을 통해 이상은의 고민이 단순히 ‘너’로 한정된 그리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상은이 생각한 고민 폭이 그만큼 깊은 영역에 미쳐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앨범 전체의 맥락에 가장 결정적인 해석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 곡은 앨범의 키포인트다.
 
여기서는 결국 전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에 그쳤지만, 여기에서 싹튼 정체성의 ‘물음’은 훗날 『공무도하가』(1995)와 같은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작용했다. 또한 이 앨범은 이상은의 최근 작업들에 드러나는 전자음악적인 성향이, 단순하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할 목적으로만 채택된 게 아니라는 점을 뚜렷하게 증거한다. 이 앨범을 단순히 이상은의 ‘색다른 도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