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사단의 여자가수들은 주목과 동시에 전설이 되거나 신비한 테두리를 두른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 활발히 활동하던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대가 요구했던 여성'이라는 지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부분이 크다. 그리고, 음악인으로서의 여성 가수는 남성 스타 작곡가에게 곡을 받은 후, 운이 좋으면 뜨는 존재라는 인식이 좀더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스타 작곡가와 가수의 역할이 철저하게 분업의 형태였던 것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미래를 보고 음악을 생각하기에는 한계점이 확실한 시스템임이 분명했다.

신중현은 함께 작업했던 여성 가수가 구사하는 보컬의 특이점을 가장 잘 찾아낸 스타 작곡가 중 하나이다. 신중현이 발굴했던 모든 여성 가수들에게 덫이 되기도 했던 김추자의 메가히트는, 엄밀히 말하면 신중현의 성공이 아니라 김추자의 재능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경우였다. 신중현의 음악을 상업적으로 이해했을 때 어디까지 날아오를수 있는지를 그녀의 재능으로 실험한 기이한 사건에 가까웠다.

붐에 불을 지폈던 김정미는 그녀에게 내재된 고독과 욕망을 잘 버무려 신중현의 음악에 잘 대입한 경우였다. 신중현이 김정미와 함께 작업한 음악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중현의 음악적 색깔이 어떤 것인지 여전히 잘 몰랐을것이다. (아마도, 그저 판에 박힌 '록의 대부'라는 수식어를 반복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보컬리스트에게 내재된 고독과 욕망을 알아보는 작업은 그 시대에는 낯선 결과였다. 고독과 욕망을 포장하거나 꾹꾹 누른 후, 밝고 명랑하게, 아니면 반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힘든 시간이었으니까.지연은 신인이라는 약점을 신중현의 후광으로 지운 채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김추자 스타일의 농염한 가창력과 당시 여성들이 요구당했던 정숙함의 사이에서 그닥 자유롭지 못했던 듯 하다. 지연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한 성격이 짙었던 독집앨범에서 지연은 차분하고 고요하게 신중현이 직조한 소리에 담겨있는 노래들을 해석한다. 포인트가 뚜렷한 김정미와 김추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두려움을 내포한 조용함과 노래 속에서 드러나는 수줍음을 느꼈다. 아직 근대화의 근처에서 신음하는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그럼에도 현대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할 뚜렷한 자기애적 욕망이 서서히 드러나는듯한 목소리를 읽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발성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노래들 속에서 지연은 자신의 색깔을 찾기 이전에 애매하고 불안한 마음을 드러낸 사람이다. 그것이 테크닉적으로야 부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조용히 드러냄'이야말로 신중현 사운드와 신중현 사단의 여성 가수들을 이야기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연은 이듬해 골든그레입스의 함중아와 함께 '김지연과 리바이벌크로스'라는 명의로 음반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뽕끼 다분한 음악과 사이키델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와, 그에 맞는 창법은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션으로서 자기 색깔과 언어를 만들기 전에 본인이 은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고, 그러한 아쉬움이 베일에 가려진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슬프다. 사람들에게 어떤 시간을 강제로 유폐시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지연을 필두로 한 신중현 사단의 여성가수들만큼 정확하고 아프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 지점에서 지연의 독집 앨범은 의미가 충분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