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던 2집의 거대한 실패 이후 4년, 각자의 길을 가버린 밴드들의 뒷모습을 목도한 채로 이석원은 새롭게 모든것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밴드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첫 곡 「헤븐」부터 간결하게 끊어지는 건반의 소리가 밴드 사운드의 기본 골조인 기타, 베이스, 드럼보다 더 귀에 들어온다. 이건 순전히 이번 앨범에 크게 힘을 보탠 원년 멤버 데이트리퍼의 역량이다. 사실 언니네이발관에게 첫번째 트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떤 음악을 어떻게 하고 싶냐는 의지의 응집. 「푸훗」, 「유리」와 「헤븐」, 「바람이 부는대로」,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정규반의 머릿곡들은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방향성의 지표를 세우면서도 앨범의 진행 방향을 청자에게 알려주는 표지판의 의미가 있었다.

2집의 싸이키델릭하면서도 순수하던 빈티지 사운드와는 달리,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며 듣는이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멜로디가 있다. 무엇이든 다 활용하여 멜로디를 집중적으로 수식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다. 밴드지만 의지가 곧은 락을 하고 싶은게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들 원하고 돈을 엄청 벌 수 있는 「꿈의 팝송」을 만들기 원했던 이들은 그 기대감을 「나를 잊었나요」라는 곡에 직접 투영시킨다. 애절함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듯한 이 트랙은 애시드한 오프닝부터 신파 가득한 전개, 분위기를 리드하는 나일론 기타의 속주, 바이브레이션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석원의 울부짖음이 합쳐져 강한 파괴력을 갖는데 성공한다. (이 곡의 영향력은 9와숫자들이 「언니」(2016)란 곡에까지 미친다.)

모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발표하는데 출발점이 되었다고 밝힌 「2002년의 시간들」은 3집의 두 축이었던 정무진과 이석원의 합작품으로, 앨범의 색을 가장 또렷한 개성으로 표헌하는 곡이다. 실로폰 소리를 듣는듯한 인트로는 언니네 이발관의 예전 사운드에선 찾아볼 수 없는 리듬과 색채감이었다. 멜로디의 앨범임을 천명하듯이 신파 그 자체로 전개되는 「불우스타」같은 특이한 곡은 강한 개성과 기시감을 동시에 선보이며 밴드의 새로운 영역에 더하여 그전에 없었던 어떤 여유마저 느껴지게 하는 지점이다.

밥 먹듯이 30살까지만 음악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이석원의 자아가 제목부터 강렬히 반영된 「안녕」의 우울함을 건너 극도로 동화스러운 사운드의 구성 속에 엄숙히 어른의 인간관계를 성토하는 「표정」이 이어진다. 앨범에서 가장 화려하고 먹먹한 기타의 유려한 사운드가 마치 물에 탄 잉크처럼 아련히 바래지는 「언제나 이발관」은 회고적인 분위기에 역설적으로 "미쳤나요"라는 가사를 반복하며 그들, 그 특유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절치부심한 앨범 『꿈의 팝송』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대중적 성공'이란 결과물을 얻는다. 부침이 많았던 그룹에서 멤버 중 세명이 15년간 언니네이발관이라는 이름 아래 뭉쳐 있었으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으로 인한 자신감과, 일정의 성공으로 들어온 여유로 밴드는 다시 새생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