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그의 목소리

조동진 (Jo Dong Jin) 『나무가 되어』
1,51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11
Volume 6
레이블 푸른곰팡이
공식사이트 [Click]

1분 가까이 혼과 신디사이저가 어지럽게 뒤섞인 후 터져 나오는 목소리. 20년 만에 듣는 조동진 앨범의 첫 곡의 첫 목소리. 누구든 벅차오름을 느낄 것이다. 후렴에서 드럼이 가세하고 피아노가 낮게 울리면 누구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터져 나왔던 그 목소리에 백 보컬이 잔뜩 입혀져 있다는 사실 또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20년 전의 「새벽안개」(1996)에서 그는 어땠는가. 자기를 감싸고 있는 사운드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낮은 목소리는 80년대와 마찬가지로 꼬장꼬장함을 잃지 않았었다. 어떤 소리가 그 앞에서 수를 놓아도 그의 낮은 목소리가 시작되는 순간 중심은 그에게로 이동되었다. 소리와의 반발, 접합, 대결, 융화. 이것은 그의 음악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10년」에서, 또 이어지는 「나무가 되어」에서 그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단단하지 않다. 이 슬픈 사실을 어찌해야 할까?


방법은 「나무가 되어」의 “나는 하늘 가린 나무가 되어 예전처럼 노래할 수도 없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니, 받아들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 노랫말을 쳐다보는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 구절을 들을 때의 느낌은 연로한 뮤지션에 대한 안쓰러움 따위가 아니다. 조동진이 지금 이 모습으로, 이 목소리로 내 앞에 서 있다는 것, 동생이 마련해준 소리의 지팡이를 다부지게 꼭 쥐고서, 그래도 내 앞에 다시 서주었다는 것이다. 「나무가 되어」를 떠도는 온갖 소리들, 잡음, 전자음, 그 지팡이의 파편들은 20년 세월의 고뇌와 회한과 긍정과 수용과 물러섬의 파편들이 아닐까? 다음 곡 「섬 안의 섬」에도 조동익이 뿌려 놓은 노이즈 엠비언트가 조동진의 심경을 엿보는 작은 바늘구멍처럼 귀를 간질인다. 게다가 “저 검은 물결 너머”에서 시작되는 리듬의 탄탄함과 시야의 확장과 고조되는 희열은 오롯이 그의 목소리와 말의 힘에 뿌리를 둔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희열도 없다. 예전처럼 목소리가 단단하지 않아도 「그렇게 10년」과 「나무가 되어」와 「섬 안의 섬」은 지금 모습 그대로 경이롭고 아름답다.


앞선 어느 앨범에 있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1970」의 회상, 20년 전 들려준 「눈부신 세상」(1996)의 애증보다 백보는 뒤로 물러나 “왜 자꾸만 잠이 드는 건지 이 눈부신 날에”라고 말하는 「하얀 벽」의 슬픔을 지나 앨범의 중반을 넘기면 맨 앞의 세 곡을 합친 것만큼이나 울림을 주는 「천사」에 이른다. 이 곡에서 조동진의 목소리는 예전의 단단함에 근접한다. 이 곡에서만큼은 동생의 소리를 지팡이로 쓰지 않는다. 조동익의 어둡고 적막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조동진의 눈높이 정면에 200인치 스크린으로 떠올라 고도의 긴장과 합일을 이뤄낸다. 형에게 왜 동생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황홀경은 마지막의 15인조 현악 합주로 절정에 다다른다.


마지막 두 곡에서 동생은 다시 형을 보좌한다. 이번에는 지팡이가 화려하다. 「그날은 별들이(Farewell)」의 후주는 『강의 노래』(2015) 1번 CD에서 조동익이 들려줬던 소리들을 상기시킨다. 「지수리」에서 들었던 슬로코어/새드코어의 광활함을 이 곡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반젤리스(Vangelis)가 떠오를 정도로 소리의 영역이 대단한 곡이다. 맨 마지막 「강의 노래」는 컴필레이션 버전과 편곡이 완전히 다르다. 신디사이저로 오케스트라를 구현한 처음 버전과 달리 여기서는 트립합 비트가 곡을 주도한다. 둘을 놓고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둘 다 좋다.


『나무가 되어』에는 4집의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1990)나 5집의 「우리 헤어져 멀리 있어도」(1996) 같은 노래가 없다. 잠깐이나마 통기타의 소박함에 기대어 살가운 관계를 묘사하는 노래를 이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다. 3집에서 「나무를 보라」(1985)던 그는 숫제 나무가 되어버렸다. 그가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는 관조와 역설과 회한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지만 단단함을 많이 잃어버린 목소리 탓인지 유독 슬픔의 정조가 앨범 전체를 휘감는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바라는 건 없다. 예전처럼 5년만이라면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20년 만의 그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맺음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자연스러움이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나무가 되어』를 듣는 것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전체, 그의 노래 전체를 끝없이 떠올리고 수렴하는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예전을 모두 망각하고 그저 행복하게 듣는 시간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를 흠모한다면 그럴 것이다.


4집부터 그는 조동익과 함께 앨범을 만들었다. 「새벽안개」(1996)가 대표하는 5집에 이르러 조동익의 사운드는 형에게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는 흔들림 없이 건재했다. 하지만 그 다음의 조동진은 5년 만에 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조동익은 『Movie』(1998), 『Soony 6』(2002)와 『Dao』(2004)를 거치며 전자음악의 마스터가 되어갔다. 『나무가 되어』는 계속해서 오지 않았던 조동진과 계속해서 소리를 닦았던 조동익이 함께 만들었다. 계속해서 닦았던 사람의 사운드는 계속해서 오지 않았던 사람의 목소리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이 관계는 반가우면서도 슬프고, 짠하면서도 믿음직스럽다. 조동진의 최고작은 언제나 최근작이라는 공식을 이번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무가 되어』는 마스터피스가 아니다. 하지만 『나무가 되어』는 다시 마스터피스다. 왜냐면 공식을 대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Credit

Recording Studio: 무지개 녹음실, Stradeum, Sound Solution
Recording Engineer: 허성혁, 윤정오
Mixing & mastering: 조동익
Photo: 조동진
Calligraphy: 윤소라
Cover Design, Drawing: 조아라
Producer: 조동진
Distribution: 푸른곰팡이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그렇게 10년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2
    나무가 되어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3
    섬 안의 섬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4
    1970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5
    하얀 벽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6
    향기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7
    천사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8
    이날이 가기 전에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9
    그날은 별들이(Farewell)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 10
    강의 노래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조동진

Editor

  • About 윤호준 ( 8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