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이문세의 제 3시대를 기대한다

이문세 『New Direction』
1,964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4
Volume 15
레이블 KMOONfnd
공식사이트 [Click]

이문세가 13년 만에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퍼뜩 들었던 생각은 딱 두 가지다. 10년 만에 앨범을 낸 조용필이나 11년 만에 앨범을 낸 장필순처럼 그 역시 13년 만이란 사실 하나로 의당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무게감 있는 음악인이라는 것과, 이번 기회에 다른 작곡가들과 작업하기 시작한 8집 이후의 행보를 다시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7집까지의 이영훈을 떠올리는 짓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 찬란했던 시절과 비교하는 건 씁쓸한 반칙이 될 뿐이다.


첫 두 곡 「Love Today」와 「봄바람」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까칠한 기타 톤과 리듬을 앞세운 알싸한 소프트 록 사운드는 이전 경력과의 명백한 단절이다. 이 느낌은 조용필의 「Bounce」와 「Hello」를 들었을 때의 감흥과 유사하고, 해외 레코딩으로 후레쉬한 소리를 쟁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두 곡은 Jackson Browne이나 Boz Scaggs가 90년대 중반에 들려준 호쾌한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미국에서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오랫동안 소비된 록 사운드가 한국의 중견 음악인에게는 신선한 돌파구가 되어준 셈이다. 어찌됐건 두 곡은 13년 만의 무게감을 거뜬히 충족시킨다. 소리는 때깔 자체가 다르고 각 악기 세션 간의 조화는 흠 잡을 데가 없다. 이로써 이문세는 조용필의 뒤를 이어 어른의 소리를 젊게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과거에도 이문세는 어른의 제스처로 앨범을 포장한 적이 있다. 10집 『花舞』(1996)는 복고와 추억과 회한을 팔았고, 14집 『빨간 내복』(2002)은 스스로 19금 딱지를 붙여 10대 청취자를 배격했다. 결과는 둘 다 신통치 못했다. 「조조할인」이라는 달콤한 대 히트곡에도 불구하고 『花舞』의 컨셉과 편곡은 일관성이 부족했고, 『빨간 내복』은 장르 잡식과 엉성한 뽕 발라드의 버무림에 그쳤다. 이영훈이 주춤하기 시작한 8집 『종원에게』(1993) 이후 이문세는 앨범을 만들 때마다 포지셔닝 때문에 애를 먹었고, 젊은 음악적 감각과 나이 듦의 품격 사이에서 매번 갈등했다. 하지만 「Love Today」와 「봄바람」은 그 들쭉날쭉했던 과거를 기분 좋게 일신한다. 이번 앨범의 일신은 당사자 스스로도 선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바, 마지막 곡 「New Direction」의 위풍당당한 곡과 가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승환식 웅장한 합창까지 동원한 상승 무드는 다음 작품에 대한 낙관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발라더이자 팝 스타였던 이문세가 모든 곡을 호쾌한 소프트 록으로만 채울 수는 없었을 터, 앨범 전체로서의 『New Direction』은 다른 곡들과 섞여들며 이중적인 양상을 띤다. 그 중에서 조규찬의 곡 「그대 내 사람이죠」와 「무대」는 다소 긍정 쪽으로 기운다. 장르를 돌출시킨 맘보 댄스 「그대 내 사람이죠」는 브라스와 퍼커션이 똑같이 선봉에 나선다는 점에서 삼바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11집 「솔로예찬」(1998)의 리부트 버전이다. 반면 「무대」는 이문세가 이영훈 시절에도(「기억의 초상」(1988), 「저 햇살 속의 먼 여행」(1991)), 김현철이 총괄했던 8집에서도, 또 그 이후로도 종종 시도했던 재즈를 재차 소환한다. 송영주의 피아노 연주와 잔잔한 곡조와 이문세의 적당히 애잔한 보컬이 조화를 이룬 이 곡은 격조 있는 음악에 대한 그의 욕심을 충족시킨다. 아마 「무대」는 재즈를 입힌 이문세의 곡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곡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곡에 엄지 척을 주기가 망설여진다. 「그대 내 사람이죠」에 과연 스트링 세션이 필요했을까? 이 곡 뿐만이 아니다. 7번 트랙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스트링은 한국 팝 앨범 프로듀싱의 오래된 매너리즘이다. 어떤 건 꽝이고, 어떤 건 괜찮고, 어떤 건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이런 소리의 장식은 일종의 예고된 한계다. 좋은 곡들을 애지중지 받들고 풍부하고 폭넓게 치장하려는 마음가짐, 그 의심 없는 대전제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New Direction』의 중반부에는 이렇게 선곡과 프로듀싱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허전하다. 모두 번듯한 만듦새를 자랑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결정적인 느낌은 부재한다. 반면 「무대」에서 느끼는 일말의 허전함은 조금 미묘한 심경을 동반한다. 왜냐면 8집에 대한 기억 때문인데, 그건 그때 시도했던 재즈가 더 훌륭해서가 아니다. 객관적 수준의 문제를 떠나 8집 전체를 감싸고 있던 포근한 색조를 「무대」는 절대로 따라올 수가 없다. 국제적 재즈 뮤지션이 없던 시절의 소박했던 세션, 이문세에게 아직 이영훈의 고풍스런 향취가 묻어있었으며, 참여했던 뮤지션들 모두의 감각이 적당히 좋았던 그때는 여전히 『New Direction』조차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손진태의 보사노바 「지난 먼 여행」을 능가하는 곡은 『New Direction』에도 역시 없다.


이문세는 1993년 8집부터 지금까지 포스트 이영훈 시대를 살아왔다(이영훈의 곡으로만 채운 9, 12, 13집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시대 전체 중에서 이번 신작은 8집의 뒤를 이어 2등이다. 앨범의 중반부에 결정적 감흥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전작들에서 지속적으로 노출했던 패착을 되풀이하지는 않았다. 장르를 다양화한답시고 9집의 「서글픈 꿈」(1995)처럼 이영훈의 곡에 말도 안 되는 하우스 리듬을 붙여놓는다든가, 10집의 「난 괜찮아」(1996)나 11집의 「향수」(1998)처럼 작곡가의 개성에 짓눌려 정작 가수 본인은 곡에서 소외당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두 곡은 각각 김현철 5집과 조규찬 4집 수록곡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New Direction』에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소프트 록이 있다. 13년 공백 끝에 들려준 새로운 스타일과 사운드는 포스트 이영훈 시대의 연장이 아니라 이문세 제 3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정말로 그의 제 3시대가 계속될 지의 여부는 수년 내에 차기작을 만들어낼 정열과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자신감과 팝 앨범 프로듀싱의 근본적 고민에 달려 있을 것이다.

Credit

Produced by 이문세, 이훈석
Vocal Recorded by Hyoseob Lee & Eunjoo Lee @ MS music lab, seoul
All Songs Mixed by Chris Thompson @ Aura Ave, Chatsworth, CA
All Songs mastered by Dale Becker @ Bernie Becker Mastering, Pasadena, CA
A&R 김혜미, 김기철, 설동수, 이승훈, 임지수
Strategy & Public Relations 조설화, CS Ent., Fortune Ent.
EXecutive Producer 이재인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Love Today
    정미선
    김미은
    GMS Jr
  • 2
    봄바람 (feat. 나얼)
    김영아
    강현민
    강현민
  • 3
    그대 내 사람이죠
    정미선
    조규찬
    조규찬, Randy Waldman
  • 4
    그녀가 온다 (feat. 규현)
    이문세
    노영심
    GMS Jr, Randy Waldman
  • 5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었어
    정미선
    송용창
    GMS Jr, Randy Waldman
  • 6
    집으로
    정미선
    유해인
    GMS Jr
  • 7
    사랑 그렇게 보내네 (feat. 김광민)
    정미선, 차은주
    조영화
    GMS Jr
  • 8
    무대
    이문세
    조규찬
    조규찬, 송영주
  • 9
    New Direction
    KMOONfnd, New Authors
    New Authors
    GMS Jr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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