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안녕, 魔王 #9] 마왕의 외도 - 단 한 걸음일지라도 의미 없는 걸음은 없다

노땐스 (Nodance) 『골든힛트-일집』
2,20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96.10
Volume 1
레이블 킹레코드




신해철은 ‘정력적인 마왕’이었다. 구태여 마왕이라는 이름을 수식하는 게 멋지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러한 형용사가 그가 대단한 야심가였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새로운 시도에 대해, 또한 그것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었고 언제나 적극적이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그가 매 앨범마다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걸음1. 댄스 없는 댄스음악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No Dance)’의 작업 역시 ‘전자음악’의 이름 아래, 윤상과의 친분 및 뜻 공유로부터 비롯된 능동적인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두 음악인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에도 상반되듯이, 당시에도 ‘신해철과 윤상’이라는 조합은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애초부터 그 뿌리가 기타사운드를 앞세운 록이었던 신해철과 일찍부터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발라드 음악에서 자기 능력을 보여왔던 윤상의 합집이다. 음악 내외적으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가감 없이 표출했던 쓴소리의 대명사와 담백하지만 동시에 시적인 사랑 가사들을 주로 썼던 로맨티스트 미성(美聲) 가수가 만났다. 같이 앨범을 해보자는 합심 이래 4년 만에 착수한 작업이었지만 '다르다'는 현실이 하나의 ‘도전’이라 할 만큼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달랐다.


결국 앨범 작업을 위한 합숙에도 보람 없이 두 사람이 따로 작업을 함으로써 『골든힛트-일집』은 화학적 화합보다는 물리적인 결합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었다. 덕분에 이 앨범에서 신해철의 지분은 양적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게 되었지만 앨범의 지향점 만큼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 “댄스가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일렉트로닉이다 테크노다 말하는데 사실 우린 그것과 춤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우린 춤을 안 출 것이다.” 1996년 가요계는 룰라, DJ DOC 등을 필두로 댄스음악이 홍수처럼 쏟아졌던 시기다. 문제는 그 같은 댄스 열풍이 과열되어 가요계엔 ‘단순하고 빠른 전자음의 반복’과 ‘비슷한 샘플링’이 넘쳐났다는 점이다. 작금의 아이돌 대란을 예견이라도 한 듯, ‘노땐스’는 이미 다양한 갈래로 분화된 댄스음악이 더 이상 댄스를 도구 아닌 목적으로 삼으며 이름만 다른 모두 똑같은 음악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그 시기 표출한 것이었다.


곧 댄스음악이지만 댄스에 대한 독설 없는 반항이자 유머 없는 풍자였고, 하나의 앨범 안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으며, 하나의 전자음악 앨범 안에 비단 테크노는 물론이고 유로팝과 디스코, 정글과 트랜스 등이 상존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익숙하지만 그와 같이 다른 장르의 외피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댄스를 완전히 배제한 전자음악의 가요 편입 시도는 결코 그 의미를 폄하하기 어려운, 상징적인 발걸음이었다. 신해철의 실험은 단순한 개인적인 ‘시험’ 같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성과 ‘할 말’을 지닌, 메시지를 담아낸 ‘물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걸음2. 철학과 서정


한편 마왕이라는 고유명사에 부연이 따로 필요할까 싶냐마는, 『골든힛트-일집』에 한정해도 그 속에 마왕이랄 만한 신해철의 세계관을 눈치 챌 수 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길과 연기 사이로 울부짖는 여자들과 쓰러진 아이들. 분명히 내 두 눈으로 난 내가 한 일을 보았네”(「In The Name Of Justice」). “사랑은 천개의 날을 가진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내 가죽을 벗겨줘”(「월광」). 스스로 신과 정의의 이름을 앞세운 사살에 괴로워하는 병사가 되거나,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극단적 감정이 여과 없이 뿜어내는 등 반골 기질 가득 찬 그의 가사들은 『골든힛트-일집』이 지향하는 전자음악의 서정성과 맞물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우라를 표출한다. 「기도」에서는, 서서히 전개되는 전자음이 부여하는 팽창하는 공간감과 신비감 안에, 자기 성찰적인 가사가 더해져 동시에 숭고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적극적 형식 실험에 더하여, 신해철의 은유적이면서 직설적인, 그리고 공격적이면서도 성찰적인 철학관은, 전혀 다른 정서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윤상의 노래들과 대조되며 『골든힛트-일집』이 그만의 스토리텔링을 갖게끔 하였다. 전자음악이라는 공통의 기치 아래 신해철과 윤상을 오가는 방식은, 마치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우주와 현실의 초현실적이면서도 어두운 경계를 오가는 20세기 말 가요판 ‘신곡(神曲)’이라 할 만 했다. 아쉽게도 두 천재의 작업이 온전한 ‘융합’의 형태를 띠지 않았던 까닭인지, 의미 있는 걸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사가들을 만족시킬만한 ‘파격’이 아니었던 탓인지, 또는 지나치게 음침하고 난해한 주제와 가사 때문이었는지 이 앨범이 오랜 기간 회자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실 습관적 선구자, 부지런한 도전자일수록 매 작업·순간 속에 자기의 목소리, 새로운 세계를 담아내고 그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노땐스의 마계 역시 신해철이 담아내려 했던 단 하나의 결과물로서 자기만의 족적을 남기었고, 반쪽이 아닌 한 가지 뜻 아래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채웠던 신해철표 소우주였다는 사실이다.


Credit

Nodance are 윤상 & 신해철
Produced by 노댄스
Co-Produced by 김유성
Written by 노댄스 & 박창학
Composed, Arranged & Performed by 노댄스
Executive Producer for Revolution No.9 김경남

[Guests]
김유성 : Additional Programming
손무현 : Guitar
이정식 : Saxophone

Mixed by Gary Langan
Assistant 이은석
Recorded by 이유억, 이은석 for Universal Studio
Additional Recorded by 박호일 for 장충 Studio
Assistant 홍장욱
Recorded at Universal Studio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In The Name Of Justice
    신해철
    신해철
    김유성
  • 2
    질주
    박창학, 신해철
    윤상
    김유성
  • 3
    자장가
    박창학
    윤상
    김유성
  • 4
    월광 : Moon Madness
    신해철
    신해철
    김유성
  • 5
    기도 : Radio Edit
    신해철
    신해철
    김유성
  • 6
    반격
    박창학
    윤상
    김유성
  • 7
    Drive
    신해철
    신해철
    김유성
  • 8
    달리기
    박창학
    윤상
    김유성
  • 9
    기도 : Original Version
    신해철
    신해철
    김유성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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