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Album-Out #5-3] 뿌린 대로 거둘 수 없는 세상에 웃으며 침 뱉기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The South Korean Rhythm Kings) 『뿌린대로 거두리』
2,30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7
Volume 1
레이블 김책음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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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텃밭을 일구러 집을 나선다. 아주 작은 텃밭이라기엔 땅뙈기가 좀 크고, 제대로 된 밭이라기엔 작은 크기다. 매년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깻잎, 상추, 아욱, 옥수수, 근대, 고구마, 토란 등을 각각 10여 그루(??)씩 심으시는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채소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낸다. 10여년 텃밭 농사를 지켜보니, 얼마나 열심히 잡초를 뽑고, 가뭄에 물 대주고, 적절한 때에 거름과 비료를 주느냐에 따라 작황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짐을 눈치 채게 되었다. 생계를 위한 농사가 아니니 전문지식이나 농부의 꾀도 그다지 필요치 않다. 순수하게 얼마나 땅에 땀을 흘리느냐에 수확의 행방이 갈린다. 말 그대로 “뿌린대로 거두리”다. 가끔 어머니를 도와 작물을 거두며 밭은 정말 정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시에 우리 시대에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게 텃밭 빼고 뭐가 있을까 싶어진다. 이 시대는 정직, 노력, 근면과 같은 태도를 원치 않는다. 혹은 그러한 정직한 사람들의 정당하고 근면한 노력의 대가를 착취하는 자들이 사람들이 좀 더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적반하장의 언사를 날린다. 거짓에 못 견디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위정자들은 황당한 이념의 딱지를 붙여가며 황색언론과 손잡고 조리돌림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하면서 꿈을 접지 않는 우리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뿌린대로 거두리”가 앨범 제목이라니, 작명센스하며... 그 사람들도 참 우직한 양반들이다 싶다. 이들의 이름은 더 사우스 코리언 리듬 킹스(The South Korean Rhythm Kings, 이하 SKRK). 거창한 앨범 제목의  주인공 이름으로 아주 적절하다.

 

1.
김책과 김오키.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재즈의 외연을 '설득력 있게' 확장시켜 왔다. 김대환, 강태환, 미연, 박재천, 최선배, 등 한국 프리재즈의 선배들은 많고, 만만찮은 음악 공력을 들려줘왔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그러하듯, 이들의 작업은 다음 세대의 프리재즈와 직접 연결되진 않았다. 이들의 한참 후배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김책, 김오키, 준킴, 김성배, 써니 킴 등은 선배들의 음악과 간접적인 관계를 가졌을 뿐 직접적인 소통도 크지 않았고, 덕분에 선배들과 다른 결의 성취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의 프리재즈는 외골수의 고집이라기보다 끊임없는 소통의 시도로 읽힌다. 엄혹했던 시대의 한계 때문일 거라 짐작해보지만 선배들은 세상의 척박함에 질린 나머지 내면의 절박한 목소리로 침잠하는 음악을 했다. 반면, 후배들은 시선을 세상으로 돌려 일상의 문제를 자신의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때론 가려졌거나 외면하는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예 돌파하고자 한다. 이 세대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김책과 김오키가 이뤄낸 성과에는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치열함과 함께 세상을 소리로 품는 몸짓(performance)이라는 의미도 서려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온 드러머 김책과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두 사람의 만남만으로도 이 팀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여기에 해체한 전기사기꾼의 멤버이자 송나미 앤 리스폰스로도 활동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송남현, 주빈 트리오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는 표진호가 보이스로 가세했다. 보이스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그가 가사와 정해진 멜로디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즉흥적인 리프(!)를 성대로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말 그대로 리듬을 가지고 논다. 이 소리의 어울림에는 정확함 대신 네 사람의 폴리 리듬 인터 플레이 안에서만 감지되는 독특한 정교함이 넘실댄다. 색소폰과 함께 FX를 담당한 김오키(와 베이시스트 송남현)가 끄집어내는 수많은 잡음들이 드럼과 베이스의 굽이굽이 널뛰는 리듬 사이로 자글댄다. 이 소리들 사이를 비집고 자기 영역을 굳건하게 세우며 전체 사운드를 정리하는 표진호의 목소리는 몽골 음악 같은 초저음에서 돌고래 소리 같은 고음, 구조화된 스캣과 파열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리 지름”까지 거침이 없다.

 

2.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연주로 똘똘 뭉친 네 사람은 서곡에 해당하는 「The South Korean Rhythm Kings」로 앨범의 문을 연다. 핑거 피킹의 텐션이 가득 느껴지는 더블베이스가 분위기를 몰아가는 가운데 리프처럼 반복되는 음을 나열하는 스캣이 귀를 잡아챈다. 앨범 끝까지 경이로운 성대 연주를 들려주는 표진호의 능력이 첫 곡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SKRK만의 소리빛깔을 빚어내는 과정에서 표진호의 보이스는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어지는 「모내기」의 단조로운 듯 반복되는 더블베이스의 보잉과 함께하는 심벌 소리는 그 자체로 모내기의 정경이다. 단순하지만 근면하게 반복해야 하는 모내기, 욕심을 부린다고 더 빨라지지도 않고, 외려 제대로 땅에 심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그 작업을 보잉 하는 활의 느지막한 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농사의 과정을 표방한 전곡의 제목은 놀랍도록 그 안에 담긴 연주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처음 듣자마자 제목을 다시 찾아보며 무릎을 쳤던 「거름」이 「모내기」의 뒤를 잇는다. 거름이라는 게 뭔가? 똥, 오줌, 잡풀과 효소가 만나 뒤섞이며 없던 열을 푹푹 내고는 각각의 성질을 버리고 하나의 물질로 화합한 결과물 아니던가? 바로 그 과정이 색소폰과 보이스가 서로를 자극하는 합주와 콜 앤 리스펀스를 오가며 소리로 표현된다. 「뙤약볕」은 드문드문 터지는 더블베이스의 울림으로 표현되는 땅의 목마름이 청자의 귀를 자극한다. 표진호의 건조한 목소리로 울리는 스캣(에코를 통해 타들어가는 건조함을 강조하는)은 쩍쩍 갈라진 땅이 된다. 노래 막판에 가면 뙤약볕의 어질어질한 고통이 부유하며 가청 공간 여기저길 찔러대는 색소폰과 FX를 통해 소리로 살아난다. 「홍수」는 어떠한가? 더블베이스와 울림을 다잡은 스네어와 탐탐의 절제된 연주로 서서히 밀려오는 물의 공포가 그려지더니 농부들의 정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쓸어버리는 물폭탄의 모습이 쇳소리를 강조하는 드럼과 표진호의 목소리로 폭발한다. 5분을 넘어서면서부터 홍수 다음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맑아진 하늘을 경쾌한 더블베이스로 표현한다. 어머니의 텃밭이 홍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이 있다. 다음날 황망해하는 우리 가족 머리 위론 습하고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고, 새들은 뒤집어진 밭 덕분에 모습을 드러낸 막 맺히기 시작한 감자 씨알을 쪼아 먹기 바쁘더라. 딱 그 느낌이다.

 

3.
우직한 농사는 그래도 계속 된다. 무서운 기세로 자라는 풀의 사투를 다룬 「김매기」를 지나 행진곡 풍으로 편곡된 「새참」에서 우리는 새참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새참은 즐겁고 행복한 휴식인 동시에 다음 노동을 위한 독려의 압력이기도 한 것을. SKRK는 이를 놓치지 않는다. 농사라는 노동 행위를 제대로 이해한 후에 즉흥연주를 펼친 것이 「거름」, 「품앗이」, 「풍년」, 「열매」 같은 곡이 길이나 연주의 밀도 모두에서 가장 집약적이라는 사실서 확인된다. 문제는 뿌린 대로 거두는 농사는 우리 시대와 조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뿌린 것의 수 십 배는 뽑아야, 화학물질을 땅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퍼부어서야, 이 시대의 생계형 농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농부는 원초적이고 우직한 직업이 되기 힘들어진다. SKRK의 세련되지만 원초적이고, 멤버들의 연주역량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마치 진짜 잘 발효된 거름처럼) 우직하고 순수한 리듬의 유희가 대중과 유리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진짜 농부는 브뤼꼴레르(Bricoleur)에 가깝다. 레비스트로스라는 100수를 누린 인류학자가 참 좋아했던 용어인데, 주어진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지식과 도구, 재료를 가지고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항상 예측하고, 예상하기 바쁜, 심지어 그 예상이 무너지거나 어긋나면 해결에 나서기에 앞서 패닉에 이르러버리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SKRK는 당신이 예상하는 리듬의 전개를 벗어나지 않지만, 교묘하게 밀고 당기며 자신들만의 그루브, 자신들만의 소리를 창조해낸다. 그것도 네 명의 멤버가 스튜디오와 주어진 악기와 장비를 활용해 임기응변으로 자신들이 부여한 표제에 맞게 소리로 해결한다. 예측가능한 똑같은 리듬의 전개, 화성의 전개, 멜로디의 전개를 실력인양 자랑하는 뮤지션과 그런 전개를 조금만 벗어나면 갈피를 못 잡는 대중 모두를 비꼰다. 어쩌면 SRKR은 리듬의 브뤼꼴레르를 제대로 실천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Re-0.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농사의 과정을 제목으로 정해놓고 즉흥연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우선은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사실 일부러라도 묻지 않으려 했다. 왠지 SKRK 멤버들은 자신들이 어떤 의도에서 어떤 시도를 어떻게 앨범에 담고자 했다고 주절주절 설명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청자나 평자가 이 소리를 어떻게 감상했을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런 리뷰가 이 앨범을 놓고 아티스트와 청자 사이에 대화를 터줄 가능성의 가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바래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앨범의 가장 큰 의도는 앨범 제목에서 확인된다. “뿌린대로 거두리”. 한국에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일 아닌가? 앨범 속 곡 제목들처럼 모내기에서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펼쳐지는 (전통적) 농사의 과정은 지난하지만 정직하다. 요행이나 권력, 금력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종류의 일인 것이다. 정경유착, 극단으로 향하는 양극화와 계급재생산,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 펼쳐지는 차별과 특혜가 판을 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정직하게 뿌린 대로 거두는 일은 어쩌면 가장 벌어질 수 없는 일일는지 모르겠다. 비판을 넘어 염세적인 성격까지 내비치던, 그러나 유쾌하고 익살맞은 네 멤버가 던지는 지독한 역설의 음악인 셈이다. 이렇게 우리는 한국 즉흥음악의 전혀 새로운 장 하나를 통쾌하게 맞이한다.

 

Credit

송남현 : Double Bass & FX
표진호 : Voice
김오키 : Tenor Saxophone & FX
김책 : Drums

Produced by The South Korean Rhythm Kings
Mixed by 송남현
Mastered by 최임식
Recorded at 선인장 Studio, Seoul, Korea, 2015
Cover Picture and Designed by 김범렬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The South Korean Rhythm Kings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2
    모내기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3
    기름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4
    뙤약볕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5
    홍수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6
    김매기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7
    원두막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8
    새참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9
    가뭄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10
    품앗이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11
    허수아비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12
    풍년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 13
    열매
    -
    더사우스코리안리듬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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