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Album-Out #3-3] 불편한 내면, 정갈한 외형, 그리고 감정의 교차

혁오 (Hyukoh) 『22』
2,04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5
Volume EP
레이블 두루두루amc
공식사이트 [Click]

아마 나는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위잉위잉」(2014)에서 고개를 숙이면서 읊조렸던 혁오가 다시 등장한다면 ‘22살인 너희가 뭘 알어?’하는 비웃음을 선사할 준비 말이다. 비록 한차례 태풍을 일으켰던 그들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들이 구사하는 나이를 초월한 관조적인 비웃음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길 원했던 비겁함이 있었다. 왠지 그래야만 그들보다 더 살았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22』가 찌르는 폐부는 그래서 더 울컥한다. 작은 배처럼 통통튀면서도 약간의 점성이 느껴지는 「Settled Down」의 베이스라인은 바로 그 불안감의 시작이다. 어울리지 않게 어른인척 하려거나, 갑자기 뜬금없는 화려함으로 맞이하면 ‘꼰대’같이 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건만, 좁은 영역에서 간질거리기만 하는 리듬 커팅과 베이스의 합은 그 여지를 없애버린다. 「Settled Down」이란 제목은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를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흐름 측면에서는 확실한 정착이다. 그리고 너무나 잘 어울리게 어른인 척 하고 있다.

 

대중에게 그들을 각인시켰던 「위잉위잉」보다 조곤하고 담백하지만, 「와리가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폭이 더 크다. 생각해보면 「위잉위잉」은 꽤 친절했다. 화자가 ‘일 없는 젊음’이라는 것도 잘 나타나있고 ‘Please don’t tell’이라는 요구조건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그러나 「와리가리」에서는 뭘 해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훵크 사운드에 얹은 간질거리면서 짤막한 기타 리프처럼 교묘하게 핵심을 계속 비껴간다. ‘와리가리’라는 놀이가 그렇지 않은가. 공(사람)을 잡으려는 사람은 한없이 불리하고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에서 말이다. 결국에 잡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게임을 끝내는 방법이라는 것도.

 

비록 6곡에 불과하지만, 『22』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그런 경향을 지닌다. 허락된 시간 안에서 뭔가 많은 말을 주절거린다. 우리는 자의적으로 어느 한 문장 혹은 한 순간에다 대고 ‘혁오’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확신을 선언해야 한다. 「큰새」와 같이 시원해 보이는 기타팝에서도 확실한 부분은 ‘이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이라는 한 구석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텁텁하게 섹시한 보컬, 원숙한 연주로 구성된 훌륭한 음악적 틀 속에 담겨져 있다. 훵키하게, 그루브하게, 힙스럽게 등등, 각 멤버의 취향들을 원하는 대로 반영한 능동적 결과물들이다.

 

이 불친절함, 애매모호함의 원천에는 억누름이라는 기조가 있다. 언뜻 들어보면 검정치마나 장기하와얼굴들과 비슷해 보이다가도, "씨발 나 어떡해"(「Tangled」(2010))나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싸구려 커피」(2008))처럼 극한의 고통으로 폭발하는 장면 자체가 드물다. 자식이 죽어 아파도, 전염병으로 아파도 제 몸 하나 못 가눈 피해자의 잘못이 되어버린 세상이 고스란히 체득되는 순간이다. 더 이상 인내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체념은 마지막 곡 「공드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의 침묵은 기회일까 내 기댈까
또 그냥 나만의 생각일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나 나서볼까
괜히 또 나서는 건 아닐까

 

그들이 『22』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에는 좀 복잡한 측면이 있다. 자신의 또래들에 대한 공감의 코드이기도, 행동하지 않는 ‘꼰대’들에 대한 일갈이기도 한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없이 불편한 내면을 바라보면서도 정갈한 외형으로 달래주고 있는 본작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는 참으로 대단하다. 물론 평생 대부분을 외국에서 살다온 주변인적 경험이나, 갑자기 이룬 성공에서 손아귀의 모래처럼 빠져나간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특수함이 녹아든 덕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담배를 필 때, ‘니코틴과 타르가 뇌에 영향을 어떻게 미쳐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알고리즘에 도달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속을 뒤집어 놓는 무언가가 있더라도 일단 그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시나브로 주절거림에 이끌려 어느 순간 청자를 세상 한복판에 던져놓는 작품. 한편으로는 내가 애초에 품었던 '어린 그들에 대한 시기'가 그렇게 부당한 처사가 아니었음을 안심시켜주는 그런 앨범이다. 여전히 나 스스로는 꽤 비참하지만.

 

Credit

오혁 : Vocal, Guitar, Synth, Organ
임현재 : Guitar
임동건 : Bass
이인우 : Drum

Executive Producer : 강명진
Producer : 오혁
Recording Engineer : 허정욱@석기시대레코드, 전부연@큐브스튜디오
Mixing Engineer : 고현정@MUSICABAL
Mastering Engineer : John Davis@Metropolis Mastering Studio, UK
Cover Design & Artwork : 노상호@nemonanet, 605@605c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Settled Down
    오혁
    오혁, 임동건
    혁오
  • 2
    와리가리
    오혁
    오혁
    혁오
  • 3
    큰새
    오혁
    오혁
    혁오
  • 4
    Mer
    오혁
    오혁
    혁오
  • 5
    Hooka
    오혁
    오혁
    혁오
  • 6
    공드리
    오혁
    오혁
    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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