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알앤비는 이제 「맛」을 보고 있다

벤 (Ven) 『The Vgins』
770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08
Volume 1
레이블 PJR

한국에서 알앤비라는 장르 음악은 200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범위와 정의가 상당히 모호했다. 알앤비라고 칭하기에 어려운 사운드와 멜로디, 분위기를 지니고 있음에도 알앤비라 불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모호한 상황은 대중들이 알앤비를 ‘우는 음악’, ‘바이브레이션이 많이 들어간 음악’ 정도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데에 일조하기도 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알앤비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한 음악도 있었지만, 대개는 알앤비의 몇 가지 특성만을 차용해왔을 뿐이었다. 그 위 얹어진 건 소위 ‘뽕끼’ 섞인 목소리와 멜로디, 그리고 주로 신파적인 요소를 담고 있던 한국 발라드의 가사가 뿜어내는 감성과 표현법이었다. 이 말은 한국 발라드 음악 전체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보다는 당시 알앤비로 칭해지던 음악들이 알앤비가 가진 기본 장르적 특성과 몇몇 한국적인 요소를 썩 잘 결합시킨 것 같진 않다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2010년대부터 한국 알앤비 음악은 점점 요동치기 시작한다. 태양은 미니 앨범 『Hot』(2008)에 이어 여전히 힙합, 알앤비 트랙으로 가득 채운 정규 앨범 『Solar』(2010)를 발표했고, 2PM을 탈퇴한 이후에 박재범은 솔로 아티스트로서 꽤 멋들어진 첫 앨범 『New Breed』(2012)를 발표했다. 또한, 각자의 멋을 고스란히 앨범에서 뿜어낸 싱어송라이터, 디즈(Deez)와 포티(40)가 2010년 근방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 와서는 아메바컬쳐(Amoebaculture) 소속의 자이언티(Zion.T)와 크러쉬(Crush)가 소속되어 있는 크루 비비드(VV:D)가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를 굳건하게 세우면서도 최근 알앤비의 흐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렇듯 국내 알앤비 아티스트들은 장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크루 비스메이저(Vismajor) 소속의 벤(Ven) 역시 이 전체적인 흐름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알앤비라는 장르 본질에 충실한 멋진 결과물을 내놓았다.


벤의 이번 미니 앨범 『The Vgins』는 다섯 트랙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인스트루멘탈 제외),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면서도 단단하고 힘이 있다. 그는 최근 트렌드 중 하나인 트랩에 노래하기도 하고(「Taste」), 슬로우잼 스타일의 트랙에서는 트레이 송즈(Trey Songz)가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너의 몸에 벤」), 창법적인 부분에서는 올해 정규 앨범 『Testimony』를 발표한 어거스트 알시나(August Alsina)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감상 속에서도 그의 음악이 단순히 외국 알앤비 음악에서 레퍼런스를 따왔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멋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데, 그의 노래가 특유의 가사를 읊어나가는 억양과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 박자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그의 하악 구조(?)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는데, 사실 그보다는 곡에 맞춰 강약을 잘 조절하고, 매 마디 강조해주어야 할 부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창 이외의 짚어볼 만한 또 다른 지점으로는 제목과 가사에서 주제를 표현해낼 키워드를 잘 잡아나가고, 그에 맞춰 이야기를 유연하게 전개해나간다는 점이 있다. 벤은 자칫 유치해지거나 진부해질 수 있는 주제들을 각 곡의 테마로 잡고도 전혀 그러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세련된 면모를 보인다.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포부를 드러내는 「Taste」를 제외하고는 어장관리나 형식적으로 변한 연인 관계 등의 남녀 사이에서 흔히 있을 법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데, ‘성공의 맛’을 컨셉으로 잡고 ‘허기져’라는 표현을 후렴에서 어색함 없이 활용하기도 하고, 상대방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한 지루함을 잠이 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타이틀곡 「너의 몸에 벤」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활용하면서 감상에 있어 포인트를 준다. 이렇듯 그는 알앤비 특유의 원색적인 주제를 원색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해내지는 않지만, 주제를 구현해내는 방식에 있어서 묘미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한 벤 특유의 그루브 넘치는 가창으로 인해 더욱더 세련되게 표현된다.


사실 따져보면 벤은 이번 앨범에서 외국 알앤비 음악에서 주로 다루는 이성에 대한 구애나 성행위 그 자체를 다루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발라드가 다루는 신파적인 내용을 다루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담아냈고, 프로덕션으로는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 벤이 이번 앨범으로 장르적 문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정말 실제로 겪을 법한, 현실과 괴리감이 없는 주제를 어색하지 않게 다뤘다는 건 어찌 보면 한국 알앤비가 이제는 애매한 범위와 정의로 규정될 필요도, 또 그렇다고 외국 알앤비 신의 느낌을 그대로 따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전체적인 흐름이 계속된다면 한국에서 알앤비라는 장르 음악이 더 확고하게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벤은 멋진 앨범으로 그 흐름에 동참한 것이고 말이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Taste (feat. Deepflow)
    Ven, Deepflow
    Ven, TK
    TK
  • 2
    너의 몸에 벤 (feat. Beenzino)
    Ven, Beenzino
    Ven, TK
    TK
  • 3
    ZZOM (feat. ODEE)
    Ven, ODEE
    Ven
    Ven
  • 4
    우리 이래도 돼?
    Ven
    Ven
    Ven
  • 5
    잠이와
    Ven
    Ven, TK
    TK
  • 6
    너의 몸에 벤 (inst.)
    -
    Ven, TK
    TK

Editor

  • About 김정원 ( 7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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