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밴드, 희망을 건네다

블랙홀 (Blackhole) 『Hope』
1,323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03
Volume EP
레이블 윈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잡지 파라노이드에 실렸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1. 2000년 가을

 

2000년 10월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오후의 뉴욕 시내는 한가로웠다. 연휴를 앞두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도시를 떠난 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센트럴 파크에도 운동하는 이들보다 애완견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이들의 숫자가 더 많게 느껴졌다. 공원 내 경찰의 안내로 우리가 탄 차량은 한 무대 뒤편으로 안내되었다. 다음날 추수감사절을 맞아 뉴욕의 한인을 위한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관악기가 더해진 6인조 미국인 밴드는 우리 귀에 익숙한 트로트를 포함한 몇몇 한국 노래의 반주를 리허설하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사이, 마이크 테스트가 이어지고, 함께 간 당시 인기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주가 아니라 노래 전체를 그대로 틀어놓고 체크하는 것으로 봐서 다음날도 립싱크를 할 요량인 모양이었다. 방송을 통해 익숙한 노래 몇 곡이 흘러나온 후, 나는 블랙홀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리허설을 진행하던 무대 감독은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왜 왔냐는 듯한 투로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미리 요청했던 앰프와 악기 세팅을 확인하러 왔다는 우리의 대답에 그는 황급히 무전을 보냈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한, 큐시트와 헤드셋 뿐 아니라 허리에 찬 육각렌치와 작은 드라이버 뭉치가 눈에 띄는 음향감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에게 정말 목록에 적힌 앰프와 악기들을 사용할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당연히 무대에서 사용하기 위해 신청한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나는 블랙홀은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헤비메탈 밴드 중 하나이며, 당연히 목록 속 장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음향감독은 적잖이 당황하며, 연휴라 지금 이 악기를 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약간 신경질적이 된 나와 아직 평정심을 잃진 않아 보이는 밴드 멤버들 사이에 온도 차이는 있을망정, 당황스럽긴 매 한가지였다. 한국에서라면 주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악기를 구하거나 합주실에서 악기를 공수해서라도 공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악기를 대여할 수 있는 한국이 아니었단 말이다. 뉴욕, 그것도 추수감사절이라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가장 큰 연휴의 한복판이었다. 나는 음향감독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신이 거의 매년 한인 행사의 음향을 맡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런 장비를 요구받은 적이 없어서 잘못 온 줄 알았다는 거다. 거기에 한국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연주팀의 백업으로 노래하는 싱어만 오던가, 아예 보컬까지 녹음된 CD를 틀어놓고 춤만 추다 갔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기존 행사에 맞춰 준비를 했다는 거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당연히 악기 렌탈을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당장 어디서 앰프를 빌린단 말인가? 다음날의 반주를 위해 리허설 중인 밴드는 기타와 베이스가 각각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트윈 기타를 연주하는 블랙홀에겐 최소한 기타 앰프가 하나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 지독한 상황인 것은 악단이나 공연 스텝 누구도 우리에게 해결 방법에 대한 팁이나 요령조차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우선 현 상황에서 가능한 만큼 리허설을 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그마저 거부당했다. 한국에서 온 공연팀 중에 공연 전날 제대로 사운드 체크나 리허설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리허설을 생각하지 않고 밴드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오늘 그들의 장비를 다른 팀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연 당일인 내일은 어떠한지 물었다. 음향 감독이 밴드 멤버들과 얘기를 나누더니, 통보하듯 얘기했다. 자신들의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7시 반 정도에 당신들의 악기와 장비를 가져와서 세팅하고, 사운드 체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러나 사운드 체크일 뿐 절대 리허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밤새 한인들이 운영하는 여러 라이브 공연을 하는 업소를 소개받아 다녔지만, 적당한 앰프를 구하지 못한 우리는 기타 한 대를 앰프가 아닌 라인으로 뽑기로 결정했다. 새벽까지 돌아다니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대에 올랐다. 장비를 설치하는 블랙홀 멤버들의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에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무대에 올라와 살펴보던 음향감독의 눈빛이 다소 달라지는 게 보였다. 약속한 대로 장비 설치 후 각자의 악기 소리를 살펴봤다. 뭔가 어색했지만, 수많은 공연을 통해 별의 별 경험을 다 해본 블랙홀은 금세 자기 소리를 찾아갔다. 물론 PA로 빠지는 소리는 또 달랐다.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서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사이, 나는 콘솔로 뛰어가야 했다. 음향감독과 함께, 기존의 세팅과 다른 블랙홀의 소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SR 장비를 만질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블랙홀과 친분이 있는 글쟁이이자, 아마추어 밴드의 멤버였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그저 “Louder!”와 “More!” 뿐이었다. 콘솔에 앉아있던 젊은 엔지니어는 주로 웨딩 파티 밴드 음향을 주로 해온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음향감독이 직접 블랙홀의 사운드 체크 동안 콘솔을 잡았다. 밴드가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음향감독의 눈빛이 달라졌고, 손놀림이 바뀌었다. 사운드 체크만 해야 한다던 그는 노래를 연주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장비 설치를 제외하고 십 여분의 리허설 시간이 끝났을 때, 전날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전했다.

 

행사의 중간 정도였던 오후 3시 경, 블랙홀은 무대에 올랐다. 「깊은 밤의 서정곡」으로 시작해서 「물 좀 주소」의 리메이크로 끝난 정말 짧은 공연이었다. 블랙홀의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콘솔은 다시 원래의 젊은 엔지니어가 잡았고,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지는 짧은 시간 사이에 드럼의 트윈 페달을 다시 원 페달로, 단단히 조여졌던 스네어는 바로 평범한 소리로 돌아갔다. 앰프와 기타 사이의 페달박스는 사라지고, 다시 미국인 밴드의 할로우 바디 기타와 앰프가 직접 물려졌다. 마침내 밴드는 반주 (혹은 목소리까지 녹음된) CD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아나운서의 진행을 돕기 위한 안내 음악을 연주하는 하우스밴드로 돌아갔다.

 

 

2.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이 이야기는 필자가 2000년 가을 블랙홀과 우연히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동행하면서 겪은 일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도 없었고, 비도, 보아도 미국과 먼 존재였던 시절 얘기다.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올라서 노래하는 혹은 AR을 틀어놓고 무대에서 춤만 추고 내려가는 존재로 한국 가수를 바라보던 미국인 엔지니어의 시선이 마뜩하진 않지만, 그를 탓할 수도 없다. 그건 그때까지 그가 경험한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였을 테니까. 더 중요한 것은 블랙홀에게 이런 경험은 낯설고 상상도 못한 황당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보다 약간 답답하긴 했지만, 그날도 태연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구하려 노력하고, 무대에 올랐다. 다시 말해, “한국의 헤비메탈 밴드”라는 말에 생경하게 반응하던 미국인 음향감독의 모습이 “한국에서 (당시) 15년 가까이 활동했던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단 거다. 한국에서라고 헤비메탈이나 록을 바라보는 시선이 뭐가 달랐을까? 자신들이 원하는 장비와 시스템을 갖춘 무대를 얼마나 올랐었을까? 그렇게 자신의 음악과 환경을 꾸준히 개척하고, 닦고, 벼려오며 밴드 블랙홀은 어느새 활동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블랙홀은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을 추구한다. 헤비메탈이 얼마나 거대한 음악 장르인가? 흔히 블랙홀의 음악을 멜로딕 스피드 메탈 혹은 멜로딕 파워 메탈이라 통칭하는 유러피언 메탈과 구조적인 측면에서 닮았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그와 똑같다고 하기에 블랙홀의 음악은 좀 더 다양한 층위가 겹쳐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틀즈(the Beatles)가 음반 활동을 했던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밴드의 음악이 얼마나 크게 변했던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나 딥 퍼플(Deep Purple)이 걸었던 음악의 길도 그러했다. 마찬가지로 블랙홀도 30여년 활동을 이어왔고, 그 사이 약간의(약간일 뿐이다) 멤버 교체가 있었으며, 블랙홀을 둘러싼 헤비메탈 음악 자체도 변했다. 밴드 안의 시간이 흐르는 만큼, 밴드 밖의 시대도 변한 것이다. 만일 블랙홀의 음악이 1989년의 데뷔작 『Miracle』로부터 2014년의 『Hope』까지 변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블랙홀의 음악은 분명 유러피언 헤비메탈이라는 틀거리를 가지지만, 그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딥 퍼플의 흔적이 역력한 하드록은 물론, 전매특허인 특유의 슬로우 록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네오 클래시컬 메탈의 영향도 적잖이 흡수했다. 무엇보다 한글로 된 가사가 한국의 청자와 나누는 묵직한 교감이라는 강력한 한 방도 있다.

 

『Made In Korea』(1994)와 『City Life Story』(1995)의 성과는 블랙홀이라는 밴드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부조리를 헤비메탈 음악으로 풀어낸 쾌거였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새로 보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다. 팟캐스트, 인터넷 게시판, 새롭게 풀어쓴 역사 서적들까지, 이러한 쏟아지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나는 이러한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지난 100여년 사이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위정자들이 어떤 식으로 민중을 호도하고, 무시하고, 짓밟아왔는지 하나의 흐름으로, 서사로 얽어내는 작업이라 본다. 즉, 파편화되어 있는 개별 사건이 결코 하나하나 우연의 결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위정자들의 계보 안에서 꾸준히 민중들을 농락한 슬픈 역사의 연속이었음을 이야기-서사의 형태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나쁜 놈들의 계보도와 서사 만들기”랄까? 그러한 점에서 블랙홀은 선구적으로 “나쁜 놈들의 서사”를 음악으로 표현해 왔다고 할 수 있다(당장 이번 앨범의 「진격의 망령」과 4집의 「공생관계」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역사적, 문화적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데 헤비메탈이라는 음악 소리, 분노에 찬 정서는 정확하게 부합했던 것이다. 서구의 헤비메탈이 가지고 있던 사회문화적 지형도 속의 헤비메탈에 대한 이해를 가졌네, 아니네, 혹은 그들과 블랙홀이 헤비메탈을 다루는 태도가 같고, 다르고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 블랙홀은 한국에서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한국어로 이야기해 온 밴드였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블랙홀은 한국적이다. 여기서 “한국적인”이라는 말은 국수주의적 쇼비니즘을 의미하지 않는다. 블랙홀은 당대의 한국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헤비메탈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헤비메탈”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적인 헤비메탈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헤비메탈의 형식이 한국인이 느끼는 수많은 굴곡진 사회와 역사를 가장 직선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이 음악을 해 온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도 남달랐다. 블랙홀은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결코 자신들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는 대중을 탓하거나,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좋아해주건, 시큰둥하건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 이해했다. 미얀마에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 밴드와 함께 미얀마의 민주화를 기원하는 공연 무대에 나섰던 예는 블랙홀이 생각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 즉, 우리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준다. 그 연장선에서 『Hero』(2006)를 보면, 한국의 전통악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 앨범의 수록곡은 몇몇 얄팍한 “민족주의”라는 쇼비니즘 위해 국악을 어설프게 차용한 음악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는 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헤비메탈 혹은 장르 음악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영미의 헤비메탈의 역사를 일별하며, 그 한켠에 한국의 헤비메탈 계보를 엮어 넣겠다는 시도들이 중심-제국의 입장에서 어떻게 읽힐 것인지 상대화 시켜보자는 얘기다. 로컬의 맥락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로컬음악은 도대체 무슨 의미이며,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로컬을 외면한 채, 록의 종주국-제국에서 특별한 로컬라이즈드(localized) 록으로 인정받고 싶은, 나아가 그 인정을 통해 로컬을 개혁하고 싶다는 욕망은 100년 전 식민지의 유약한 지식인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못한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도시가 얼마나 많은 지 실감할 수 있던 계기가 있다. 한참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던 시절의 블랙홀의 일정 속에서였다. 안동, 삼척, 대천의 시민회관 무대에 올라 헤비메탈 공연을 일궈내던 밴드. 나는 당시 블랙홀의 일정표에 적힌 40개에 육박하는 도시를 보며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서울 공화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서울 밖을 타자화 시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도시들이야말로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블랙홀은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으로 이 현실을 체감케 해 준 것이다.

 


3. 새로운 앨범 『Hope』

 

솔직히 블랙홀은 지쳐보였다. 한 해에 100회 가까이 무대에 오르고, 전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만들어내던 밴드의 활력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2008, 2009년에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긴 했지만, 확실히 예전의 거침없이 돌파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앞서 지적했던 계몽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대중과의 호흡이 오히려 두 장의 싱글에 담겼던 네 곡에서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우직한 헤비메탈로도 충분히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밴드의 오랜 믿음조차 흐려진 느낌이었다.

 

기존에 발표했던 4곡의 디지털 싱글과 5곡의 신곡이 더해진, 확장된 EP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Hope』를 받아들고 잠시 고민 했다. 이 음반은 지금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몇 년 사이 움츠러들게 느껴지던 밴드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그러나 첫 곡 「Universe」를 들으며,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도(일렉트로니카를 이용한)가 얼마나 완성도가 있었는가에 대한 평가에 앞서, 이 노장 밴드가 악기 하나하나의 터치에서부터 다시 살아나고 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기존 발표곡과 신곡 사이에 음질의 차이도 있고, 앰프 세팅도 다르기에 겉도는 느낌이 있다. 아마 밴드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6, 7년의 간극이 있는 신곡과 기발표곡 사이의 온도차를 통해 외려 강건해진 밴드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여전히 어색함을 버릴 수 없는 4곡의 기발표곡과 달리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작업한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를 제외한 새 노래들은 하나같이 작정하고 달려든다. 일렉트로니카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모습은 이 밴드가 지난 30년 간 계속 활동할 수 있던 저력이 아집과 닫힌 마음이 아닌 열림에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스윕 피킹과 같은 고전적 헤비메탈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재형으로 들리게 만드는 「진격의 망령」, 「단기 4254년 3월 1일」의 리프 구조를 보라. 새로운 에너지가 귀를 가득 채운다. 기타 솔로를 과감하게 들어낸 곡 구조도 패기를 회복한 밴드의 자신감으로 읽힌다. 이 노래들은 “나쁜 놈들의 서사”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 나쁜 놈들의 서사에 지친 이들에게 「일어나 괜찮아」를 건네는 대목은 가장 블랙홀다운, 블랙홀 화법의, 블랙홀의 모습이다.

 

앨범 전반에 걸쳐 드럼 연주는 탄력이 가득하다. 단순하지만 정교한 속도, 우직한 무게가 한 타 한 타에 실린다. 여기에 드러내길 주저치 않는 베이스 연주가 드럼의 탄력을 배가 시킨다. 스윕 피킹이 난무하는 베이스 라인에 툭툭 리듬을 끊어내는 과감하고 단단한 기타 연주가 만날 때, 귀가 뿌듯해진다. 곡 만듦새는 노련하지만 젊어졌고, 연주는 힘이 들어갔지만 유연해졌다. 물론 빡빡한 리프에 비해 어딘가 힘이 달리는 코러스의 균형이 아쉬운 대목도 있다. 그러나 다시 시동을 건 30년차 형님들의 결기를 꺾을 수 없다. 예전과 같은 기세로 전국을 장돌뱅이처럼 누비는 메탈 밴드, 편향된 방송과 왜곡된 음원시장 밖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밴드로 다시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완벽하지 않은 앨범에서 오히려 더 쏟아낼 에너지를 기대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길 위에 선 블랙홀을 만나고 싶다. 나의 바람이 밴드에게 너무 가혹한 것일까?

Credit

Executive Producer 윈엔터테인먼트
Producer & Director 주상균
All Music Arranged by 블랙홀

Guitar & Vocals 주상균
Bass 정병희
Guitar 이원재
Drums 이관욱
Chorus 블랙홀, 김탁영, 손창현

Recorded by 황경수 @Sonicboom Studio, 이재형 & 김정훈 @덕윤 Studio
Mixed by 황경수 @Sonicboom Studio
Mastered by 황경수 @Sonicboom Studio
Instruments Technician 김탁영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Universe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2
    The Press, Depress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3
    E.C.I.C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4
    일어나, 괜찮아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5
    단기 4252년 3월 1일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6
    라이어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7
    진격의 망령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8
    사랑한다면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 9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
    주상균
    주상균
    블랙홀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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