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사랑스러운 순간

우효 (Oohyo) 『소녀감성』
2,039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05
Volume EP
레이블 뮤직커벨

이 앨범을 플레이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커버때문이었다. 이목구비가 올망졸망 예쁜 헬멧 쓴 아이.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지금 씬에 말랑말랑한 음악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 위로하려는 음악이 너무 많다. 지나친 힐링은 그 뒤에 있는 고통을 분명하게 한다. 가뜩이나 쉽게 싫증을 느끼는 편이라서 동어반복을 참기 힘들다. 들으면서 별거 아니면 그냥 스킵하려고 했다. 인생에는 음악보다 중요한 일이 많거든. 그러고 나면 십중팔구는 평생 안 듣게 된다.  그런 앨범이 너무 많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맞다. 푹 빠져 버렸다. 스킵했다면 이런 글도 쓰지 않았겠지.

 

아니,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첫 곡 「This Is Why We’re Breaking Up」이 별로였거든. 사실 그리 나쁜 곡은 아니지만 말랑말랑에 대한 선입견에 영어 가사에 대한 실망이 더해졌던 것 만은 사실이다. 순간 트램폴린이 떠올랐다. 신디사이저로 발라버린 인디감성에 영어가사. 힘없이 부르는 목소리도. 아마 2011년에 내가 트램폴린에게 빠지지 않았더라면 (당시 내 차트에서 트램폴린 2집은 2위를 기록했다) 정말 스킵했을지도 모른다. 매력적이지만 21세기엔 평범한 사운드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트랙으로 넘어간다. 「Motorcycle」.

 

묘한 이질감이 든다. 소녀적 신파가 가득한데 드럼 루프는 박력있다.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컴컴한 남산 순환도로를 달리는 것 같다. 남자 아이 허리를 꼭 쥐고 있고 이어폰에선 슬픈 음악이 나온다. 세상에 걔네 밖에 없는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 때 깨닫는다. 아! 또 사랑에 빠져버리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소녀감성100퍼센트」에서 소녀는 네 살때부터 농구훈련을 했고 오빠는 소녀를 선수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오빠의 야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소녀는 멋진 여고생이 됐다. 우효 본인의 이야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학원물 스토리텔링을 노래에서 경험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특히 “난 아주 멋진 여고생이 됐지”라고 노래하는데, 얼마나 멋진지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보지 않아도 이미 반해버렸다. 예쁜 여고생이 아니라 멋진 여고생이거든. 치마만 아니면, 앞머리만 아니면 일대 일 누구든 자신있다고 하거든. 정말 좋은 건 다음 가사다. 옆반 훈남이 농구할 때 어쩌다 눈 마주치면 두근두근하는 멍청한 짓은 안 한다고 했다가, 멋있다고 했다가, 비웃는다고 했다가, 재미있다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한다. 소녀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동안 듣는 중년은 큰 미소가 지어진다. 로맨틱 코메디 한 편, 학원물이 가미된 스포츠 만화의 사랑 시퀀스가 머리속에 아날로그 필름으로 지나가면서 조건반사처럼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은 가사란 어려운 단어들과 굉장한 사상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순간의 감성을 아로새기는 것이라고 열 여덟살 부근의 감성이 웅변하고 있다.

 

설명하지 않고 상상력을 깨우는 재능은 앨범 도처에 암초처럼 매복해 있다. “저기 멋진 저녁 노을이 대신 말해주지 않”는다는(「Teddy Bear Rises」) 가사를 통해 성산대교 북단에서 목동 쪽을 바라보는 저녁 7시 35분쯤 자전거족의 땀냄새 사이로  느껴지는 비터스윗한 샤워코롱 냄새를 맡을 수 있다. “my heart as light as dust” (「Piano Dust」)라는 가사는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때문에 비로소 드러나는 학교 강당의 청결상태를 기억나게 한다.

 

이 앨범의 매력은 상상력 출중한 감성적 송라이팅이지만 사운드도 잘 만들었다. 둘의 호응이 좋다. 「소녀감성 100퍼센트」에선 90년대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 같은 풋풋한 건반 간주가 흘러나올 때 설레이게 되고, 단출한 기타 세션으로 진행되는 「Teddy Bear Rises」 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영롱한 펜더로즈 로 인해  감정을 추스리게 된다. 이 앨범의 공동프로듀서인 에니악이 자신의 블로그에 우효와 함께 만든 작업일지를 올려 놓았는데, 원석 같은 감수성이 어떻게 음악으로 만들어지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 매우 유익하다. (http://blog.naver.com/luxurysound/220036864226) 이 글에 의하면 신인의 풋풋함과 완성도 있는 팝의 중간을 견인해 내는데 신경썼다고 하는데, 프로듀서에 의해 존재의 뿌리마져 바뀌어버리는 K-POP들과는 달리 아티스트의 감성을 이해하는 좋은 프로듀싱이다.

 

트램폴린은 조금 특별한 케이스이고, 우효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아티스트는 야광토끼와 프롬인 것 같다. 모두 자신의 분명한 감수성과 퍼포먼스를 가진 여성 아티스트이고 외부 프로듀서와 함께 신스팝에 기댄 인상적인 데뷔앨범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모두 “말랑말랑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말랑한 음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완성도 높은 감수성을 들려주는 신스팝 아티스트들은 말랑과 힐링의 키워드와 좀 떨어져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로듀서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인디/ 메이저 패러다임 안에서 도드라지는 스타일로 인정해주고 싶다. 돌이켜보면 신디사이저는 언제나 수단으로 쓰여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성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신스팝은 드물었다고 생각든다. (물론 산울림의 「니가 고백을 하면 아마 놀랄거야」는 빼고) 라 루(La Roux)나 그라임스(Grimes)가 여전히 매력적인 것처럼, 이렇게 은근한 신스팝은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 계속 듣고 싶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This Is Why We’re Breaking Up
    -
    -
    -
  • 2
    Motorcycle
    -
    -
    -
  • 3
    Vineyard
    -
    -
    -
  • 4
    소녀감성100퍼센트
    -
    -
    -
  • 5
    Piano Dust
    -
    -
    -
  • 6
    Teddy Bear Rises
    -
    -
    -
  • 7
    Vineyard (ENG VER.)
    -
    -
    -
  • 8
    소녀감성100퍼센트 (Radio Edit)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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