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뜻밖의 이미지 컨설팅

이규호 『Spade One』
2,39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3
Volume 2
레이블 푸른곰팡이

이규호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시시때때로 격변했다. 비단 매체를 통해 회자되던 동안 페이스뿐 아니라 음악 내적으로도 계속 바뀌었다. 「나는 달」에서 우주적 풍경으로 넓어진 조망도, 「몰린」에서 보여준 이전의 고적한 감성과의 조화, 「노」에서 물꼬를 튼 동양미에의 접근은 이규호를 둘러싼 신비로운 기척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런 와중에 푸른곰팡이가 들썩였다. 소식조차 접하기 어렵던 장필순이 신보를 내고, 그 앨범의 질이 어떻든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베스트 트랙 중 하나였던 「맴맴」을 들으며 이규호의 팬들은 또 속만 타들어 갔다. 섣불리 기대하기에는 이골이 날만큼 익숙했지만, 행보에 비추어본다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앨범이 나와서도 반가웠고 혹여나 객관을 잃을까 우려하며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아마 다 그럴 게 뻔하다.


다 알 법한 소개를 하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이미지가 이규호 본인을 감싸 안으며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의 숙명은 마이너, 인디 등의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대중과의 거리감이었다. 수시로 의도치 않은 소재로 화젯거리가 되고 때로는 그로 인해 디스코그래피가 오염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SNS를 돌아다니며 검색어 순위까지 차지한 사진 탓에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올 앨범까지 함부로 예단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므로 『SpadeOne』이 빛을 보려면 이미지가 이규호를 함몰시키는 과정의 연출을 막아야 했다. 내놓기도 전에 책무가 주어진 상황에 Kyo의 대처는 어땠나. 결과는 흡족하다.


처음에 했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규호의 위치는 다소 의뭉스럽다. 사실 김예림의 EP가 아니었다면 어떤 노래가 담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티저가 나왔을 때 기시감이 치솟았다. 더불어 이 포지션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현답을 주리라고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의외였다. 우선 애용하던 피아노 위주의 작법에서 신디사이저의 운용을 강조했다. 여기서 시계소리, 유난히 사운드를 부풀린 스네어 등과 함께 예전의 고즈넉함은 저 멀리 후퇴한다. 이전까지의 이규호를 반추하는 장치는 후반부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고 그전까지 환상에 심취한 독백과 종잡을 수 없는 서사는 문학적이고 기능적이다.


서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한국 발라드, 포크가 태생적으로 끌어안던 대상 없는 집착을 이규호는 누구보다 유려하게 다룬다.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않음으로써 이규호는 한탄으로 트랙을 채우지 않는다. 끌어올린 사운드가 쳐내는 효과음은 기타 사운드보다도 앞서 특유의 겉돌면서 들춰내는 가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세상 밖으로」는 팬들에게 보내는 연서이면서 동시에 지금까지의 근심 따위 갖다버리라는 단호한 선언이며, 「매일 지구 굴린다」의 “꿈으로 가득 찬 돼지처럼” 이후 속삭이듯 나름대로는 내질렀을 묘한 후렴구는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음흉함과 넓디넓은 자기변호는 「Virus」에서 절정을 맞는다. 몇십 년 전 신스팝을 연상시키는 편곡에는 그토록 애용하는 관악기와 스트링 세션이 미니멀한 구성으로 프론트라인을 이루면서 리듬을 더욱 다층적으로 뒤집어낸다. 사실 여기까지가 모든 상황에 대한 이규호의 조처다. 「뭉뚱그리다」부터는 팬들이 알던 이규호로 돌아온다. 물론 이전까지의 장치들이 조금 축소되고 살짝 품은 신파에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술취한다」의 구색이 눈물 찔끔 나게 하는 「순애의 추억」과 같진 않으니까.


가장 적절한 복귀가 아닌가 싶다. 치밀하게 자신을 뒤엎는다는 게 얼마나 호방한 일인가. 공들였다는 티가 난다는 것도(그게 아니더라도) 정감이 간다. 나는 여전히 그의 감각이 사랑스럽다. 단순히 가사를 흠모하는 걸 넘어 이런 변화가 신작 이상으로 반갑다. 여전히 외롭지만 그래서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고 믿는 게 상책이다. 기대했다가 또 방심했다가 무심코 누른 트랙들이 귀에 더 들어온다. 미니멀한 어쿠스틱으로 일관하는 마지막 트랙에서 이규호는 여전히 외롭다고 말한다. 톤은 변함없지만 차분하고 묘한 이 목소리의 포지션은 이전 세대가 90년대 작가로만 여겨지는 작태에 대한 적절한 항변이고 역시나 현답이다. 이미지 컨설팅? 웃기지만 아무튼 이 90년대 작가로 일컬어지는 구색들이 오로지 그때로 남지 않는 것만으로 『SpadeOne』은 이규호가 내놓은 새로운 길의 시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다시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막상 귀를 쫑긋 세우며 분석하고 난 뒤에도 그런 마음이 앞선다. 불가항력이다. 주관을 되도록 배제한 리뷰를 쓰려 했는데 말이다. 아아, 장렬히 실패.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세상 밖으로
    -
    -
    -
  • 2
    매일 지구 굴린다
    -
    -
    -
  • 3
    없었다
    -
    -
    -
  • 4
    포크레인
    -
    -
    -
  • 5
    보물섬
    -
    -
    -
  • 6
    Virus
    -
    -
    -
  • 7
    뭉뚱그리다
    -
    -
    -
  • 8
    술취한다
    -
    -
    -
  • 9
    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
    -
    -
    -
  • 10
    순애의 추억
    -
    -
    -

Editor

  • About 박상준 ( 21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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