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명탐정 어어부의 기록

어어부프로젝트 (Uhuhboo Project)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1,74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12
Volume 4
레이블 From Charlie
공식사이트 [Click]

재미있다.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것이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대한 뒤늦은 리뷰를 쓰며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일반적인 대중음악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아방가르드다, 백현진 보컬이 특이하다, 이런 얘기를 발매 100일이 지나 또 늘어놓는 건 실례일 것이다. 마지막 노래 「1111 대리알바」를 들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는 바람을 가르며 예쁜 아가씰 귀가시키고 있다” 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귀가를 시키고 있다니. 그러면서 “대리하면서 그래도 좋은 날”이라니. 훵키하고 말쑥한 록 사운드에 이런 얘기를 붙여놓다니. 기가 막히도록 재미있지 않은가. 똑같이 록으로 표현된 바로 앞의 노래 「0815 실시간」은 또 어떤가.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시츄에이션 12개를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은 다음, 귀에 쏙 박히는 후렴에 디스토션 기타를 대동하여 내뱉는 결론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단 말야 너를 죽도록 사랑해 이 바보야”다. 정말 기가 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에서 문성근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개, 럭키 스타』(1998)의 송도순을 떠올리고, 러닝 타임이 63분이라는 걸 확인하며, 본격적인 첫 곡 「0107 빙판과 절벽」(박찬욱/박찬경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에 쓰였던)의 키보드, 신디사이저, 클라리넷의 불길한 소리 뭉치에 다다랐을 때 이미 이 앨범을 걸작이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옛 애인과 술 한 잔 하며 “간신히 서서”라고 말하자 충동은 더 구체화됐고, 몇 트랙 걸쳐 「0629 헤엄」 쯤 왔을 때 걸작 여부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이딴 식으로 음악을 만들어 놓을 수 있겠는가. 초현실주의와 극사실주의의 병치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난해하진 않다. 무시무시하고, 정곡을 찌르며, 다른 대중음악이 들여다보지 않는 곳을 들여다본다. 너무너무 재미있게, 그것도 노래마다 인상적인 후렴구를 줄줄이 매달고서.


혹자는 『개, 럭키 스타』(1998)의 「불충분 조건」이나 「면도칼 계시록」처럼 록 문법에 다가서는 「1001 역지사지」 에 이르러서야 뭔가 음악적 숨통이 트인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이 앨범의 끝장을 보여주는 구간은 5번부터 7번까지의 세 트랙이다. 타악 중심의 사운드를 구성하며 베이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팽창되어 있는 「0826 사적인」, 피아노의 지속적인 중저음 위에서 현악 4중주가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0417 황색생활」, 느리게 오르내리는 기타와 타악 연주 위에서 터벅터벅 거닐던 노래가 후렴에서 교향곡처럼 장중하게 솟구치는 「0629 헤엄」은 음악적으로 철저하게 흥미롭다. 탐정 짓 하는 나그네 본인까지 포함하여 “철저하게 사적인” 뭔가로 선회해야한다 말하고, 잠복근무의 외부 기록과 내부의 가정사가 뒤죽박죽 섞이고, 헤엄치며 “숨을 참고 숨을 쉬고” 하는 것이 “추적하고 기록하고 허탕치고 낙서하고 보험 들고 보험 깨고” 하는 것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비되는 이 세 트랙의 풍경은 어어부 프로젝트가 나그네를 개입시켜 하고자 하는 그들의 탐정 짓이다. 이 탐정 짓에 동반된 음악은 완벽하고 철저하게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이 앨범에 안 좋은 곡이란 단 하나도 없으므로 훌륭한 곡은 도처에 널렸다. “그저께 산 부엌칼로 어저께 산 지구본을”이라는 중독적인 후렴을 지닌 「0312 도파민」과 그보다 3배는 더 중중독적인 “함부로 라이타를”을 반복하는(이건 “hamburolitareul”이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0214 라이타」는 각각 알콜달콩한 리듬과 술집의 뽕짝 기운으로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어부표 일렉트로닉이랄 수 있는 「1226 의뢰인 이창숙 씨에게」와 「0607 용암」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다. 「0607 용암」의 건조한 전자음들 사이에 던져놓은 질문 “지난겨울 내가 본 것은 대체 무엇일까?”는 앨범을 관통하는 본원적인 질문이다.


언급하지 않은 곡들이 몇 개 더 남았지만 이쯤 해두기로 한다. 인용하고 싶은 노랫말들이 부지기수지만 역시 이쯤 해두기로 한다. 이 결과물이 동명의 공연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걸 알지만, 그걸 목격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 앨범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수많은 즐길거리와 생각거리와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직관을 담은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개, 럭키 스타』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의 양대 산맥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의미든 『개, 럭키 스타』보다 세상사에 몇 발자국 더 가깝기 때문에 듣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재즈와 록과 일렉트로닉과 트로트의 짬뽕이면서 한글 노랫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한 표본이 되는 이 앨범을 앞에 두고 비평이 머뭇거리는 수사를 동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따위의 개소리는 집어치우자. 그딴 얘기는 로베르 브레송더러 왜 하워드 혹스처럼 영화를 찍지 않느냐고 딴죽 거는 것과 같다.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레벨이 다른 음악이다. 이건 그냥 100점이고 1년 단위를 뛰어 넘는 21세기 전반부의 걸작이다.


Credit

Producer : 어어부 프로젝트
Mastering : 김남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시작 (inst.)
    -
    장영규
    -
  • 2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백현진
    백현진
    -
  • 3
    0107 빙판과 절벽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4
    0312 도파민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5
    0826 사적인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6
    0417 황색생활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7
    0629 헤엄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8
    0214 라이타
    백현진
    백현진
    장영규
  • 9
    1001 역지사지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0
    0921 마음과 뇌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1
    1226 의뢰인 이창숙 씨에게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2
    0607 용암
    백현진
    백현진
    장영규
  • 13
    0509 (inst.)
    -
    장영규
    장영규
  • 14
    0723 슈퍼컷아웃(나그네의 습작)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5
    0815 실시간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6
    1111 대리알바
    백현진
    장영규
    장영규
  • 17
    0101 양력설
    -
    장영규
    장영규
  • 18
    맺음 (inst.)
    -
    장영규
    장영규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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