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끝나지 않은 분노

김오키 『격동의 시간여행』
1,66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1
Volume 2
레이블 일일사운드
공식사이트 [Click]

“나는 재즈 연주자가 아니다”라는 김오키의 선언에는 어떤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그는 장르를 넘어 음악의 힘 즉, 정치 제도의 부당함과 사회 정의의 무참함을 까발리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음악의 존재 가치를 믿었고 또 활용했다. 그것이 자신만의 음악을 너무나 갖고 싶어 한 김오키라는 ‘동양청년’의 순수한 음악적 동기였다고 본다.


음악에선 프리 재즈를, 앨범 재킷에선 70년대 재개발 냄새를 풀풀 풍겼던 김오키(와 동양청년)의 1집이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에서 영감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하다.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를 반성하고 과거에 분노했던 그 앨범이 이야깃거리를 찾아 헤매는 평론 집단의 레이다에 걸리면서 김오키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고 이렇게 햇수로 2년 만에 없이 사는 이들끼리 아웅다웅 하는 세상을 한 번 더 비웃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번에도 과거를 향해 있다. 무그(moog)의 일렉트로 무드에 날(生) 드럼이 뒤엉키는 「쓰리 김박사와 서조교의 시간 여행」이 다시 7~80년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김오키가 아직 1집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감당해내고 있는 2015년의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의지로 읽힌다. 하드코어 록 비트에 맥락을 거세한 색소폰 프레이징을 줄기차게 가하는 「보트피플 상륙작전」이라는 곡에서 그 의지는 더 뚜렷해진다.


다 쓸어버리겠다는 듯 밀어붙이던 패기가 재즈의 즉흥적 평화 앞에 스러지는 「주안에 평화」를 지나 7분40초간 얌전히 순환하는 「악순환」은 다음 곡(이라기보다는 형제 사이 ‘대화’에 가까운) 「하고 싶은 말」이 품은 긴장의 예고편과 같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으로 이어질 듯 ‘김오키의 형들’로 설정된 두 사람의 언쟁은 앨범에서 짧지 않은 시간(4분13초) 동안 살벌하게 펼쳐지는데 여기에서 주제는 어머니 한약이 아닌 (껍질만)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 현대사를 피멍 들게 한 바로 그 단어 ‘빨갱이’이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인간, 그것이 바로 빨갱이라는 큰 형의 무식한 정의는 음악적으로 흥미로웠던 이 앨범에 일순 정치적 그림자를 드리운다. 할 말 하고 살 수 있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실시간으로 통용되며 일부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저 파렴치한 고유명사. 이것은 어쩌면 이 앨범의 핵심어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예감하며 음악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그랬다. 그들은 유혈이 낭자했던 바로 그 광주에서 「5월의 형제」였을지 모른다. 마치 Robert Fripp과 Albert Ayler의 협연을 듣는 듯 두 형제의 말싸움은 김오키와 준킴의 뜨거운 즉흥 대화로 음악화 되어 우리 귀를 겁탈한다. 이 독특하면서도 정당한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들의 대화가 다시 바닥에 깔리는 무그 사운드를 타고 '음악을 제대로 알 리가 없는' 김오키를 얕잡는 순간 그의 「上놈타령」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타령조 색소폰 솔로로 이어질 것만 같았던 곡 진행이 1분 20초에서 반전할 때 전위(avant-garde)라는 세간의 오해는 다시 그의 음악에 꼬리표가 될 듯 비쳤는데, 그나저나 여기에서 ‘上놈타령’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내 생각은 미쳤다. 그것은 신분이 낮은 남자를 얕잡아 이르던 우리 옛말이 아닌 ‘上놈’이라는 데서 제법 야한 풍자가 된다. 상놈 같은 上놈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에 보내는 김오키의 동정이랄까. 불의를 긍정해야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 대접을 받는 우리의 지금은 때문에 그 동정 앞에서 참으로 가엾고 염치없다.


「보트피플 상륙작전」 뒤로 김오키가 약속했던 록 사운드가 전면에 나서는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는 이 앨범의 절정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표현해온 ‘혹세무민 하는 파렴치한’들에 가하는 일종의 음악적 테러라면 맞을 것이다. 저들의 고장난 도덕의식 같은 무그 신시사이저의 마지막 헐떡거림은 말기 암환자 마냥 기력 없는 대한민국의 호흡인 것만 같아 서글프다.


산(山) 사람처럼 나레이션을 펼친 「하나 그리고 둘 사이에서」, 그리고 다시 프리 재즈를 탐구하는 「불타는 거리의 작별 인사」가 내뱉는 그 뼈아픈 진실과 질문들에 사람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또 대답할 수 있으려나. 쉬 알아 듣기 힘든 창백한 여성의 독백이 드림 팝 사운드에 실려 퍼지는 「우리 만나고 헤어짐이」와 인간관계 또는 삶 그 자체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일본 여성의 나레이션 「이미 정해져 있지 않기를」이 남긴 여운의 실체는 곧 있을 그와 인터뷰에서 물어보고 싶다. 나는 결국 이 앨범을 정치적으로 들은 셈이고 그래서 『천사의 분노(Cherubim`s Wrath)』(2014)는 1년여가 지난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김오키가 믿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Credit

[Musician]
김오키 : Saxophone
준킴 : Guitar
김윤철 : Bass
서경수 : Drum

[Featuring]
Track 02 : 박지은
Track 06 : 박찬우, 마광현
Track 08 : 유혜리
Track 11 : 김일두
Track 13 : Takako Ito, 호인인, 이민휘
Track 14 : Takako Ito

[Staff]
Producer : 김오키
Co-Producer : 준킴, 김윤철, 서경수
Recording : 이성록
Sound Design : 이정용 (Track 02), 김오키 (Track 06, 08, 11, 13, 14)
Recording Studio : 청홍

Special Thanks : 한지연, 염성원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쓰리 김박사와 서조교의 시간여행
    -
    김오키
    -
  • 2
    안내방송
    -
    김오키
    -
  • 3
    보트피플 상륙작전
    -
    김오키
    -
  • 4
    주안에 평화
    -
    김오키
    -
  • 5
    악순환
    -
    김오키
    -
  • 6
    하고 싶은 말
    -
    김오키
    -
  • 7
    5월의 형제
    -
    김오키
    -
  • 8
    정신세계
    -
    김오키
    -
  • 9
    上놈타령
    -
    김오키
    -
  • 10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
    김오키
    -
  • 11
    하나 그리고 둘 사이에서 (김일두 2집, 하나 그리고 둘 中)
    -
    김오키
    -
  • 12
    불타는 거리의 작별 인사
    -
    김오키
    -
  • 13
    우리 만나고 헤어짐이
    -
    김오키
    -
  • 14
    [Bonus Track] 이미 정해져 있지 않기를
    -
    김오키
    -

Editor

  • About 김성대 ( 66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