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한 사람의 정서처럼 깊숙히, 한 인생의 서사처럼 지긋이

여러 아티스트 『강의 노래』
1,49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3
Volume Compilation
레이블 푸른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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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내지는 컴필레이션 기획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론은 '따로 또 같이'이다. 원론적이면서도 쉬워 보이는 이 원리의 실현이 어려운 까닭은 대부분의 결과물들이 '따로'나 '같이' 중 어느 한 쪽에만 방점이 찍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컴필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개별 작품들의 단순 합집이나, 작업에 대한 고민 없이 소속사 가수들이 단지 뭉쳐 나오는 마케팅 일환 등은 진정한 의미의 '따로' 더하기 '같이'를 절대 구현할 수 없음에도 그와 같은 것들이 오늘날 컴필레이션의 전부인 마냥 소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강의 노래』를 앞두고 '이들은 다르다'라는 믿음이 선행한다면 이는 결코 헛된 신뢰만은 아니다. 믿음은 역사에 근거한다. 조동진 그리고 조동익, 정원영과 이무하, 장필순, 한동준 등은, 일찍이 구(舊) ‘하나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미 추상적이면서도 익숙한 주제들을 저마다의 이야기와 음악으로 능숙하게 풀어주었던 익숙한 이름들이다. 비록 ‘함께’를 지탱해주던 하나음악이 2002년 문을 닫고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조동진의 기획을 시작으로 그들이 신(新) ‘푸른곰팡이’의 이름 아래 오래간만에 뭉쳐 새로운 노래를 들려준다고 했을 때 ‘진짜’ 옴니버스를 향했었던 갈증은 자연스레 해갈의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 감동이라는 두 글자로 쉽게 풀어내는 정서의 환기, 정념의 개화는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함으로써 일어난다. ‘강에 대한(about river)’ 노래이자, ‘강의(of river)’ 노래이기도 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함께(같이) ‘강’을 되새기는 과정은 비록 현 시점에 낡은 어법이자 목소리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낯선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소통방식이다. ‘강’이 환기하는 이미지와 정서가 지금 우리의 삶과 첨예하게 맞닿아 있지 않음에도 그 도전과 시도가 큰 감흥을 자아낼 수 있는 까닭이다.

 

강은 흔히 물이 지닌 속성들을 두루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그만의 특수성을 지닌 복합적인 대상으로 치부된다. 곧 보편적인 ‘물’의 속성을 지니지만 바다처럼 광활하기도, 시냇물처럼 협소하기도 하며, 직선적이기도 하고 굽이치며 곡선을 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양태를 띤다. 대부분 끊임없이 흐른다는 지속성과 흐름을 거스르는 일 없이 단방향으로 흐른다는 불가역성 또한 강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이미지이다. 강은 이러한 성질들이 흔히 인생과 비교됨으로써 자기만의 메시지를 획득하며 이는 『강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되새기기 어려운 근원적인 가치와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그럼에도 역시 정주할 수 없는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유희 등을 하나의 음반 안에서 조화로이 어우르고 있는 것이다.

 

공통 주제에의 진지한 몰입을 견인하고 '함께'로서의 일관성을 성취하는 것은 첫 번째로 지속적이면서도 일방향적인 ‘강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다. 「엄마야 누나야 + 오래된 슬픔 건너」에서 여러 변주와 효과 가운데서도 끊어짐 없는 소리의 이어짐을 통해 부드러운 이어짐을 표현해내거나, 「너와 나」의 경우 박용준의 건반에 맞춰 흐르는 보컬과 사운드가 그만의 느린 유속을 유지한 채 동일한 리듬감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 그와 같은 인식에 근거한다. 조동진의 「강의 노래」에 이를 때 강의 물살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드디어 조금씩 좌우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앞섰던 강의 굵은 줄기와 대조하여, 하나둘 합류하는 작은 물줄기의 합집을, 켜켜이 목소리를 쌓아올리는 아카펠라 방식으로 표현한 「시냇물」의 흐름 또한 ‘강의 흐름’이다. 같은 음형이나 사운드의 반복 혹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디 브라스와 스트링의 표현들 모두 동일한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강에 투영하고 또 그를 통해 되새기는 ‘나’와 ‘너’에 대한 인식이다. 강으로부터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엄마야 누나야 + 오래된 슬픔 건너」로부터 출발하여 「그 강을 따라가겠지」, 「비행」, 「돛」에서의 나, 「강의 노래」, 「O Coração(그 마음)」, 「당신은 그렇게 흘러」에서의 너, 「너와 나」, 「시냇물」, 「유리강」, 「흐르는 물」의 나와 너까지 마주하기에 이르면, 결국 내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강이 그려내는 심상이 얼마나 투명한지를, 강은 저편의 다른 무엇이 아닌 너이고 나라는, 1인칭이자 2인칭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모든 트랙은, 참여 뮤지션들 각자의 기억과 경험이 강의 이미지 위에 교차하며 저마다의 풍경을 그려내기에 “따로”로서의 개성 또한 갖추고 있다. 강의 중심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소통의 문을 열어, 강의 외부에 시선을 두거나, 흐르는 수면을 따라가거나, 또 깊은 강 속을 헤엄치는 등 나와 너에 이르는 눈길은 여러 경로와 다른 감정들을 통한다. 한 곡 내에서도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두루 사용하며 복합적인 강의 속성처럼 곡의 색채감을 고민한 모양새는 뚜렷하며, 같은 피아노 선율임에도 이경이 그려내는 맑은 아르페지오의 「봄날의 따뜻한 강」과 가쁜 숨을 내쉬듯 건반을 내리누르는 박용준의 「지수리」는 온도가 천양지차이다. 소희-송용창-오소영으로 이어지는 각양의 지류는 제 고향의 향기를 품어낸 이국적인 강의 풍경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앨범에 매력적인 색깔을 더한다.

 

'따로'와 '같이'를 아우르는 것은 결국 본류로서의 앨범 전체이다. 생동력 넘치는 환희와 상실의 그림자를 차례로 경험하고 따뜻한 찰나와 심연의 기억을 오가면서도, 또 오르내리는 앨범의 요동치는 굴곡이 마치 여러 사람의 목소리임에도, 이 모두가 단 한 사람의 정서처럼 깊음을 더하고 하나의 인생 서사처럼 지긋이 다가오는 것은 ‘강’이라는 주제에 깊이 천착하고자 했던 뮤지션 한 명, 한 명의 진지한 태도와 이를 ‘강’이라는 물의 파형 아래 익숙하고도 새로운 단 하나의 강의 노래로 완성시켜낸 이들의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주제로 강을 이루어 메마른 땅을 덮어준 이들의 익숙하고도 새로운 합수(合水)를 두 손발 모두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엄마야 누나야 (Vocal. 장필순)
    김소월, 조동익, 장필순
    김광수, 조동익, 장필순
    조동익
  • 2
    오래된 슬픔 건너 (Vocal. 조동익, 장필순)
    김소월, 조동익, 장필순
    김광수, 조동익, 장필순
    조동익
  • 3
    너와 나 (Vocal. 새의전부)
    이원혜
    이원혜
    박용준
  • 4
    강의 노래 (Vocal. 조동진)
    조동진
    조동진
    조동익
  • 5
    시냇물 (Vocal. 이규호)
    이규호
    이규호
    이규호
  • 6
    유리강 (Vocal. 조동희)
    조동희
    조동희
    박용준
  • 7
    지수리 (inst.)
    -
    박용준
    박용준, 조동익
  • 8
    봄날의 따뜻한 강 (inst.)
    -
    이경
    이경
  • 9
    그 강을 따라가겠지 (Vocal. 고찬용)
    고찬용
    고찬용
    고찬용
  • 10
    O Coração : 그 마음 (Vocal. 소히)
    소히
    소히
    고찬용
  • 11
    비행 (Vocal. 송용창)
    송용창
    송용창
    송용창
  • 12
    흐르는 물 (Vocal. 오소영)
    오소영
    오소영
    오소영
  • 13
    당신은 그렇게 흘러 (Vocal. 한동준)
    한동준
    한동준
    배영길
  • 14
    돛 (Vocal. 이무하)
    이무하
    이무하
    이무하
  • 15
    새는 걸어간다 (Vocal. 정원영)
    정원영
    정원영
    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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