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흐름을 선도하는 연주자이자 통역가

가민 『Gamin Contemporary』
904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1
Volume 3
레이블 루오바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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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종의 잘된 통역 행위이다. 가민(강효선, 이하 가민)은 이번 앨범에서 나효신, 전상직, 박동욱, 구본우 등 각각 클래식과 국악의 영역에서 동양과 서양의 합을 이야기하는 국내 작곡가들의 곡들을 선보이는데, 단순히 피리 연주자 혹은 피리를 비롯한 생황·태평소 등 전통 관악 연주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퓨전’이라는 이름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의 장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제2외국어를 해석해내려 노력한다.

 

기존에는 전통음악 작곡자의 작품이든 서양음악 작곡자의 작품이든 창작 국악 관현악 작품의 경우 전통음악이 작곡의 기본 용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창작국악의 역사가 쌓이고, 많은 작곡가들이 노력함에 따라 작곡과정에 어느 한 영역의 스타일을 근간으로 삼기보다 두 영역의 교역지대에서 창조되는 소리 자체 집중하는 창작 기악곡들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가민은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을 선도하는 연주자이자 통역가로서 제 역할을 해내가고 있음을 이번 앨범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통역은 간단한 전환과정이 아닌 제3의 언어로의 창작과정이다. 오늘날 통역(퓨전·크로스오버 음악 작곡)을 위해서는 모국어(자기 장르에 대한 이해와 연주 스킬)와 제2외국어(타 장르 이해) 실력은 기본이거니와 교점을 횡단하는 자기만의 선로(線路)가 필요한 법인데 가민은 모국어 발음 규칙(전통 주법)들을 거스르는 극단적인 모험 없이도 언어의 차이를 넘어선 양 문화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음악의 정서)와 범세계적 가치(소리)에의 몰입을 통해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획득해냈다.

 

현대음악에서의 전통악기의 역할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 보다 직설적인 표현이고, 전통악기의 소리나 새로운 소리를 위한 실험 강박에 경도되는 우(愚)를 범하지 않고, 도리어 범관악기의 사운드 특성에 몰두하여 융통성 있는 주법으로 악곡들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가민이 주로 연주하는 피리, 생황 등 전통 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금관악기, 목관악기 모두 포함 클래식 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분명히 다르다. 이는 단순히 국악기냐 양악기냐 하는 악기의 차이가 아닌 호흡의 사용을 통한 소리의 이음새 표현 방식의 차이로부터 기인하는데 가민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서가 핵심인 전통 관악기의 표현과 소리의 이음새에 집중하여 악곡의 맥락을 중시하는 서양 관악기의 표현. 가민은 둘 사이를 오가는 신축성 있는 호흡의 표현을 통해 두 사이를 완벽히 오가는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에 따라 이번 앨범이 여러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가민은 국악적인 표현이 중시된 악곡이든 클래식 악곡이든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재현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정서를 녹여낸 초월적인 해석의 가능성 또한 열고 있다.

 

2008년 『Juxtaposition』에 포함되었던 첫 번째 트랙 「‘Katuta‘ For Saenghwang And Marimba」를 예로 들면, 다성악기로서의 생황의 특색을 과장하지 않은 채 마치 소규모 실내악단의 관악기 연주자 두세 명이 연주하듯 악곡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공간감에 보다 중점을 둔다. 이는 합주되는 클래식 악기 마림바의 울림 있는 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이기도 하다. 전상직에 의해 ‘선’을 테마로 작곡된 「‘Linie‘ 4 For Piri & Strings」의 경우 ‘연속성’이라는 선의 속성 표현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곡가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특히 가민의 연주를 거치며 호흡의 완급 조절을 통한 생명력 있는 악곡의 서사가 훨씬 춤추며 살아난다. 피리와 현악기, 두 강한 정서적 매개체의 협주가 마주할 수 있는 주도권 경쟁을 탄력적으로 조율함으로써 입체적 악곡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효신의 작곡 스타일은 이러한 가민의 연주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효신은 악곡에 국악기와 양악기를 동시에 배치하고 또 역할을 배분함에 있어서, 국악과 클래식의 이분법적인 경계 구분 혹은 단순한 국악기의 클래식 연주 수준을 넘어 두 악기의 소리가 어우를 수 있는 전체 소리의 합에 주목한다. 국악기 본연의 소리를 중시하면서도 연주자에게 전통 주법을 강요하기보다 의도하는 음색과 음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성향은 마치 그녀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가민을 만나 「’Chohanga II’ For Any Melodic Instrument And Percussion」에서 충실히 표현된다. 가민의 독주가 오롯이 곡의 전체 서사를 지탱하지만 명백한 전통의 소리로부터 출발, 지극히 현대 클래식적 면모가 보이는 후반부로 한 호흡에 내달리는 구성과 연주는 경계의 옮겨감을 하나의 서사로 녹여낸 이 앨범 백미의 순간이다.

 

제1과 제2의 영역-속성 사이에도 완벽한 중간지대는 여전히 존재하기 어렵다. 주체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제3의 영역 위에 존재하든, 어느 한 영역에 발을 담근 채 양 측을 오가든 음악의 ‘본태성’은 숨길 수 없는 모국의 정서가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구속의 반의어는 방임이 아니며, 훌륭한 통역가에게도 모국어는 존재하는 법이다. 가민이 주법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의 언어로서 소리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몰두하고 다양한 악곡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제멋대로’의 함정에 쉬이 빠지거나 국적불명의 ‘미아’가 되지 않는 것은 전통 관악 연주자로서 자기 소리를 전혀 잊지 않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Katuta」 for Saenghwang and Marimba 「Cheot」 for Saenghwang & Gayageum
    -
    구본우
    -
  • 2
    1st Movement
    -
    신수정
    -
  • 3
    2nd Movement
    -
    신수정
    -
  • 4
    3rd Movement
    -
    신수정
    -
  • 5
    4th Movement
    -
    신수정
    -
  • 6
    「Linie 4」 for Piri & Strings
    -
    전상직
    -
  • 7
    「Contrast」 for Sae-Piri, Saenghwang, Yangkeum & Percussion
    -
    박동욱
    -
  • 8
    「Duologue」 for Saenghwang and Marimba
    -
    박태종
    -
  • 9
    「Chohanga Ⅱ」 for any melodic instrument and percussion
    -
    나효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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