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안녕, 魔王 #15] 다양성 교차의 경험에 기초한 본질 탐구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Theatre Wittgenstein Part 1 : A Man's Life』
2,37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0.12
Volume 1
레이블 빅뱅




로커 비트겐슈타인


“고3 때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이 사람은 로커다’ 하고 생각했어요. 나이 스무살에 철학적 세계관을 설파했지요. 그리고 음악 테크놀로지에 푹 빠지면서 ‘너희들이 뭘 말하고 있는 지부터 깨달아라’는 그의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음악 동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게 됐죠.”


『Lazenca : A Space Rock Opera』(1997) 앨범을 끝으로 넥스트가 해체한 이후 신해철은 영국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2000년 무렵에 귀국,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국내 언더밴드 출신의 키보디스트 임형빈이라는 두 젊은 연주자를 영입하여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는데 이 밴드가 바로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다. 그가 ‘~슈타인’이라는 어미를 밴드 이름에 쓰고 싶었는데 그 중 가장 적합한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스트리아 출신 저 영미철학자의 철학관과 신해철의 철학관은 분명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내용적으로 전기와 후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또한 시기적으로 무한궤도 시절, 넥스트 시절, 2000년대 이후 시기들이 구별되는 신해철의 디스코그래피와 통하는 맥락이 있다.



천재의 의무


비트겐슈타인. 20세기 철학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는 철학계에서의 그 이름만큼이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의 신해철의 이름도 개혁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이는 어법에 대한 둘의 태도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문법을 단어의 사용 규칙과 관련된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철학이 문법의 후견인으로서 세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문법적 탐구가 곧 철학적 문제에 빛을 던져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문법 개념이 그의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필요에 따라 그러한 개념을 사용할 뿐 그에 따르는 부연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도 참고할 만한 사실이다. 이는 신해철에 대한 설명, 그리고 밴드 비트겐슈타인의 유일한 앨범 『A Man's Life』에 대한 술어로도 고스란히 대체 가능하다. 『A Man's Life』는 그가 실험해본 일종의 게임 이론이었다.


『A Man's Life』는 마치 앨범 하나가 신해철의 게임을 위한 재료가 된 양 전곡 충실히 그가 의도한 문법 실험의 전제를 따르고 있다. 대전제는 드럼 시퀀싱의 사실적 시뮬레이션. 지금에서야 실험 아닌 무수한 방법론 중 하나일 뿐이지만 당시 그에게 있어 이는 검증되어야만 할 시대 요망적인 과정이었다. 두 번째 전제는 개인적인 것으로, 신해철 자신의 전면적인 앞섬을 자제하는 일이었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 음악을 책임지는 총괄 프로듀서였지만 한편으로 『A Man's Life』를 시작으로 작업의 많은 부분을 나머지 멤버들에게 일임하는, 일종의 매니저로서의 역할에 눈을 뜬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불사르기보다 이후의 장기 레이스를 의식한 듯한 포석이었다.


본격적인 실험의 결과는 장르의 버무림으로 드러난다. 거친 그런지 풍의 록 사운드부터 당시의 첨단을 달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A Man's Life』는 록을 기반으로 한 의무적인 실험처럼 꼼꼼히 파생 장르들을 배치해낸 하나의 혼합 코스요리였다. 첫 곡 「Theatre Wittgenstein Part 1」부터가 신선한 파격이다. 블루스 풍의 올드한 리듬에 헤비한 사운드를 얹어 귀에 익숙하면서도 흥겨운 감각으로 앨범의 포문을 열더니, 타이틀 「오버액션 맨」에서는 그간 솔로 활동을 통해 실험했던 전자음악 감미료를 곡 곳곳에 배치했다.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와 「수컷의 몰락 Part 2」에서는 사운드가든(Soundgarden)과 펄 잼(Pearl Jam) 풍의 그런지 록이 『A Man's Life』의 메인 디쉬를 소개한다. 「The Pressure」에서는 랩 메탈이 강한 사운드가 귀를 자극하고 「Dear My Girlfriend」에서는 가벼운 모던 팝 멜로디가 앨범의 끝을 달콤하게 마무리 짓는다.



침묵으로부터 표현으로


『A Man's Life』가 천재의 또 다른 수작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형식적 실험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신해철은 자기의 실험을 음악에만 한정짓지 않았다. 예술을 현실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 곧 작품의 실천적인 역할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가사들이 주로 뻔한 화제만을 이야기하거나 침묵함으로써 우리의 이야기들 중 간과되고 몰이해되는 것들에 대해, 곧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 의무를 친행한다. 물론 이는 『A Man's Life』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닌 신해철의 일관적인 음악관, 철학관이기도 했다. 개혁의 외연은 주로 음악적 형식을 바라봤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사회적 동기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시도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인식하는 삶’은 단순히 과학 언어의 명료화로써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의외로 삶 자체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중요한 가치로서 추구한 사람이다. 그에게 세계와 삶은 하나이며 삶은 곧 세계였다. 철학과 삶의 동일성, 윤리와 미의 동일성을 추구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음악과 현실의 메시지를 일원화하려 했던 신해철의 철학과도 내밀하게 맞닿는다. 그 중에서도 신해철의 시선이 주로 향했던 곳은 속물과 잉여다. 그에 대한 거친 이미지 마냥 신해철의 철학이 주로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상은 세상에 속한 속물들이었다. 한편 그는 거꾸로 잉여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견지한다. 남자의 인생으로 작명된 『A Man's Life』 역시 남성성에 대한 연민이 메시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신해철 = 카리스마 + 독설 = 마왕” 등이 곧 일반화된 공식이었던 그의 이미지가 『A Man's Life』의 사유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다.


"세상이 나를 몰라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영문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까" 2014년에는 ‘현시창’이라는 단 세 글자로 축약될 「백수의 아침」 속 가사는 마치 14년 후의 미래를 예단하는 듯 가혹하면서도 짠하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 맘에 드는 모습은 아니지만 하지만 나 지금 이대로 우리 다 이대로 그냥들 열심히 사는 게 내겐 너무 좋아만 보여” 「Friends」의 감성은 한 술 더 떠 생전까지 사회에 대한 비판과 그에 더한 희망의 목소리를 놓지 않았던 신해철의 목소리 그 자체이다. “약한 척도 안되고 변명도 않되고 남자답게 사내답게라는 그 말 안에 스스로 고립 된다”, “한밤중의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교회 십자가와 수컷들이 꿈속에서 남몰래 내지르는 신음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넥스트에서 ‘아버지와 나’를 노래했던 그가 아버지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그려내는 남자상은 보다 냉소적이고 처절하다. 어쩌면 『A Man's Life』에서 읊조린 그의 연민들은 차마 세상에 다 쏟아내지 않은 증오의 또 다른 은유였을지도 모른다.


되짚어 볼 때 신해철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마냥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완전히 묵과한 맹목적인 실험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와 같은 문법적 다양성이 곧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임은 물론, 그와 같은 다양성 교차의 경험을 통해 거꾸로 본질을 찾는 역설이 가능하다고 그는 직감했던 것 같다. 그 안에 담아냈던 메시지까지 신해철이 남긴 것은 분명 시대를 초월하여 반향을 일으킬 천재의 울림이었다.



Credit

Wittgenstein are
신해철 : Programming, Guitar, Vocal
데빈리 : Guitar, Bass
임형빈 : Keyboards, DJ, Vocal

Produced by 신해철

Written, Composed, Arranged and Performed by 비트겐슈타인
Engineers and Mixed by 신해철
Assistants : 데빈리, 임형빈
Mixed at Cromotron (NY, USA), Baxter Street Recordings (NJ, USA)
Mastered by Ted Jenson at Sterling Sound

Executive Producer : 김남훈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Theatre Wittgenstein Part.1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2
    백수의 아침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3
    Friends
    신해철
    신해철, 임형빈
    신해철
  • 4
    Theatre Wittgenstein Part.2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5
    오버액션 맨
    신해철
    신해철, 임형빈
    신해철
  • 6
    Cynical Love Song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7
    수컷의 몰락 Part.1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8
    Theatre Wittgenstein Part.3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9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 10
    The Pressure : 압박
    임형빈
    임형빈
    신해철
  • 11
    수컷의 몰락 Part.2
    신해철
    임형빈
    신해철
  • 12
    Dear My Girlfriend
    임형빈
    임형빈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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