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안녕, 魔王 #14] 예전에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

신해철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1,74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99.11
Volume Live
레이블 빅뱅

 

 

 


새로운 천 년을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 신해철이 미국에서 보내온 이 트리플 앨범은 99년 초 『Monocrom』 앨범 발매 당시 진행된 라이브 투어 실황과 미발표 신곡을 함께 담은 팬서비스 성격의 앨범이다. 라이브 파트인 『99 Crom Live』는 프로젝트 팀 ‘모노크롬’으로 오랜만에 국내에 돌아온 신해철의 전국투어 중 (오렌지빛 단발머리와 그 자체로 90년대 ‘테크노 패션’을 증명하는 은박지 옷을 입고 무대에 섰던) 99년 5월 5일의 잠실 체조경기장 공연을 담고 있다. 초반부엔 비교적 충실한 형태로 재현된 『Monocrom』 앨범 주요 수록곡들의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으며, 중반부터는 본 공연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편곡된 기존 신해철의 히트곡들이 주를 이룬다. 공연에는 모노크롬의 또 다른 축인 기타리스트 Chris Tsangarides부터 남궁연, 이자람, (이후 ‘비트겐슈타인’의 멤버가 되는) 임형빈 등 낮 익은 이름들이 다수 참여해 저마다의 소리를 더하고 있다.

 

『Monocrom』에서 본 라이브반으로 이어지는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감상의 포인트는 이 시절이 신해철의 긴 음악인생에서도 꽤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98년과 2000년 각각 컴백한 서태지를 따라다녔던 ‘대중을 버리고 매니아를 택했다’는 평가는 오히려 이 시기의 신해철에게 더 걸맞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99년의 『Monocrom』은 오직 아티스트 본인만이 숨은 그림 전부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치밀한 디테일과 순도 높은 실험들로 점철된 음학(音學)의 향연이었다. 그가 일렉트로닉 음악에 경도되었던 영국 유학시절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간단히 『Crom's Techno Works』(1998)의 연장선상에 놓고 볼 수도 있으나, 신해철 본연의 색채에 당대 유럽의 트렌드였던 빅비트 테크노 사운드를 얹은 모양새의 해당 앨범에 비해, 『Monocrom』은 여전히 일렉트로닉의 외피를 두르고 있되, 그 속에 강렬한 록 기타/드럼비트를 더해 인더스트리얼 록의 뼈대를 갖추고, 여기에 예전 「Komerican Blues」, 「The Age of No God」 등 주로 곡 단위에서 양념처럼 쓰였던 국악기와 판소리 소스를 앨범 전반에서 보다 비중 있게 기용했음은 물론, 추가로 앰비언트의 음습한 질감까지 마감재로 활용하는 다층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모든 사운드 텍스처들의 절묘한 혼재엔 그가 이전 발표한 앨범들에서 보험마냥 잔존해있던 대중적 멜로디와 가사 등 ‘음악을 쉽고 듣기 좋게 만드는’ 덕목들이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기시감을 수반한다. 결국 『Monocrom』은 신해철과 대중의 거리를 보다 멀어지게 만들고 나아가 팬덤까지 얇아지게 만든 주범일 수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바로 그런 점 덕분에 그의 음악인생 중 가장 시간 흐름에 따른 가시적 침식의 정도가 덜한 앨범이자, 오랜 세월동안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문득문득 고개를 들던 - 너무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스타일에서 기인하는 - 불편함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앨범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불친절한 결과물로도 투어에 수만 관객을 불러 모으고, 그 복잡한 음악을 거의 온전히 라이브로 컨버전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연주하고, 이를 생생한 사운드의 실황 앨범으로까지 별도 제작했다는 ‘사실’을 담은 『99 Crom Live』는 지금으로선 존재 자체로 ‘전설’마냥 느껴진다. 영향력 있는 대중뮤지션으로서의 이런 강단 있는 행보가 바로 9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그의 존재를 하나의 ‘축복’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지점 중 하나다. 그간 쌓아온 것이 크게 무너질 위험을 불사하고 파격적 시도를 감행해 이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아티스트가 지금 이 땅엔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Monocrom』 수록곡과 히트곡 퍼레이드를 거쳐 (언제나처럼) 데뷔곡 「그대에게」로 마무리된 『99 Crom Live』의 마지막 트랙은 「Introduction」이다. 이것은 공연을 마친 신해철이 직접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멘트로, 그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연덕스런 애정을 담아 팬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은 살아생전 그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다시금 느껴지게 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본 멘트가 (음반에 수록되지 않은) 공연의 앵콜연주를 암시하듯 신해철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뚝 끊어지고 나면, 이어지는 세 번째 CD인 『Homemade Cookies』에는 신해철이 테크노 뮤지션 ‘크롬’으로서 이전 두 앨범에서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들이 미발표곡 모음집 형태로 담겨 있다.

 

「그들만의 세상」은 『Monocrom』 앨범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최종 단계에서 누락된(신해철은 그저 ‘당시 기분이 안 좋아서’라고 말한다) 곡으로. 사운드 면에선 분명 『Crom's Techno Works』보다 『Monocrom』의 질감에 가까우나, 메시지 면에서는 「백수가」나 「매미의 꿈」 등 이전 그가 보여준 사회비판적이고 직설적인 포커싱이 명확한 곡이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와 묘하게 닮은 「너 네가 뭔데」와 『Crom's Techno Works』의 싱글 히트곡인 「일상으로의 초대」의 어쿠스틱 버전(이른바 ‘왕닭살 ver.’)은 『Crom's Techno Works』에 실릴 뻔했던 곡들이다. 전자는 프로디지(Prodigy)를 연상케 하는 전형적인 하드코어 테크노 사운드를 담고 있는데, 신해철은 바로 그 전형성 때문에 김이 새서 싣지 않았다가 나중엔 다시 그 전형성이 맘에 들어 뒤늦게 수록했다는 웃픈 사연을 밝히기도 했다. 후자는 기존 버전의 전자음과 정박 랩을 완전히 걷어내고 피아노 반주와 내레이션만으로 재구성되었는데, 암암리에 이 버전이 원곡보다 더 인기를 얻어 향후 많은 결혼식들에서 축가로 애창된 바 있다. 89년 솔로 1집 당시 남겨둔 곡을 10년만에 리믹스한 「여름은 쉽게 가버렸다」는 ‘20대 초반 미소년 신해철’의 풋풋함과 ‘30대 중견뮤지션 크롬’의 두 자아가 10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한 데 뒤섞이며 의외의 듣는 재미를 자아낸다.

 

『Homemade Cookies』의 마무리는 본래 ‘변재원’이란 가수에게 갈 뻔 했다가 취소된 곡이나, 정서가 유학 시절 본인의 심경과 잘 맞아떨어져 다시 신해철 본인이 쓰기로 했다는 「민물장어의 꿈」이 장식한다. 신해철의 발라드답게 흔한 감정 소비 대신 자아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진하게 묻어나는 이 곡은, 미니멀한 반주 위에서 30대에 접어든 뒤 조금씩 힘에 부쳐가는 삶에 대한 고단함을 반추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인생과 음악에 대한) 도전의 길을 이어나가겠다며 각오를 다잡는다. 기실 지극히 아티스트 본인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지만, 고달픈 현 시대를 하루하루 버텨가는 한 마리 민물장어와 같은 우리네 모두에게도 큰 울림을 전한다. 허나 이 곡의 사뭇 비장한 다짐을 비웃듯 신해철과 우리 모두에게 찬란했던 90년대는 이내 끝나버렸고, 2000년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된 그의 고군분투에도 불구, 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음들에게 신해철이란 이름과 그의 음악, 그가 던진 메시지는 제대로 흡수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10여 년 넘게 이어지며(얄궂게도 신해철은 『Monocrom』을 마지막으로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판매량 10만장의 벽을 넘지 못했고, 『99 Crom Live & Homemade Cookies』 이후 팬서비스 차원의 라이브 앨범 역시 더 이상 발매되지 못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한참의 세월이 흘러 대중과 미디어가 문득 다시 90년대를 회한하며 슬며시 당대의 전설들을 되살려내려는 움직임을 보일 즈음엔 운명의 장난인지 신해철 자신이 갑작스레 모두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한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뮤지션의 의지가 담겨있던 「민물장어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련 없이 긴 여행을 끝내’지도 못한 채 떠나버린 그의 장례식 진혼곡으로 사용된 뒤 새 시대의 차트 꼭대기에 오르며 뒤늦게 대중의 귀를 적셨다.

 

 

Credit

[99 Crom Live]
Produced & Performed by Monocrom
Mixed by 성지훈

Steven Stylianou : Guitars
Tim Hole : Keyboards, Vox
민영치 : Korean Traditional Percussion & Winds
장재효 : Korean Traditional Percussion & Vocals
이자람 : Korean Traditional Vocal & Backing Vocal, Rapping
Energizer(고지영) : Dancer, Rapper
Duracell(장효리) : Dancer, Rapper
임형빈 : Keyboards

[Homemade Cookies]
Produced by 신해철
Written, Composed, Arranged & Performed by 신해철
Engineered by 신해철, 고현정 (for Dream Factory)
Mixed by 신해철
Assistant by 김훈
Recorded at Cromotron Studio, NJ, Dream Factory, Seoul
Mixed at Cromotron Studio, NY
Mastered by Tom Brick at Absolute Audio, NY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Machine Messiah
    -
    -
    -
  • 2
    The Grinder
    -
    -
    -
  • 3
    I'm Your Man
    -
    -
    -
  • 4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
    -
    -
  • 5
    안녕
    -
    -
    -
  • 6
    Go with the Light
    -
    -
    -
  • 7
    Drum Solo
    -
    -
    -
  • 8
    Jazz Cafe
    -
    -
    -
  • 9
    날아라 병아리
    -
    -
    -
  • 10
    아주 가끔은
    -
    -
    -
  • 11
    나에게 쓰는 편지
    -
    -
    -
  • 12
    It's Alright
    -
    -
    -
  • 13
    그대에게
    -
    -
    -
  • 14
    Introductions
    -
    -
    -
  • 15
    그들만의 세상 Part 1
    -
    -
    -
  • 16
    그들만의 세상 Part 2
    -
    -
    -
  • 17
    그들만의 세상 Part 3
    -
    -
    -
  • 18
    너네가 뭔데
    -
    -
    -
  • 19
    일상으로의 초대
    -
    -
    -
  • 20
    여름은 쉽게 가버렸다
    -
    -
    -
  • 21
    민물장어의 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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