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괜찮은 음악

호란 『괜찮은 여자』
1,65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5
Volume EP
레이블 플럭서스
공식사이트 [Click]

클래지콰이의 소임은 2009년의 『Mucho Punk』에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2004년 데뷔 이래 해를 거르지 않고 정규와 리믹스를 발표해왔던 동력은 이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 후 대략 5년 사이에 클래지는 알렉스와 호란과 콰이를 떼어낸 자기만의 이름으로 다른 보컬들과 『Infant』(2012)를 발표했고, 알렉스는 솔로 앨범 2장, 호란은 밴드 이바디로 앨범 2장을 발표했다. 이제 알렉스와 호란의 목소리가 클래지콰이에서 줄 수 있는 그 무엇은 별로 없었고, 2013년 발표한 다섯 번째 앨범 『Blessed』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다. 클래지콰이의 음악에 무슨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클래지콰이는 여전했다. 하지만 세월은 이미 세 사람에게서 뭔가 다른 걸 들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대략의 5년 동안 알렉스와 호란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렉스는 빵빵한 작곡가들과 함께 보편적 팝에 접근하려 했고 호란은 어쿠스틱이라는 이름의 깊은 우물을 파내려갔다. 둘 다 온전한 음악적 성취를 거뒀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비교 우위에 있었던 건 확실히 호란이었다. 앨범 2장 모두 이도 저도 아닌 발라드 쪽으로 기울고 만 알렉스에 비한다면 이바디는 뛰어난 몇몇 트랙에서 정말로 깊은 맛을 보여주었다. 기타와 피아노의 단아함 위에서 호란은 미세한 바이브레이션과 감정 표현을 능숙하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바디는 어쿠스틱이라는 화두 자체를 핸디캡으로 안고 있는 밴드였다. 밋밋한 어쿠스틱은 밋밋한 일렉트로닉보다 비평적 시선으로부터 더 많은 의심을 받게 마련이다. 햄릿의 오필리어로 일관된 주제를 잡은 『Songs For Ophelia』(2009)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Voyage』(2011)의 신곡들은 어쿠스틱 품격의 공허한 속살을 드러냈다. 이바디도 여기까지구나 싶었고, 실제로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괜찮은 여자』에서 호란은 일렉트로닉도 어쿠스틱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일관된 주제나 흐름 속에서 음악 스타일의 변주를 시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기타의 감각적인 훅과 편안한 드럼 프로그래밍으로 알싸함을 주는 「댄싱쓰루」, 까칠한 톤을 섞어 넣은 기타 스트로크 중심의 모던록 「Insomnia」, 슬로우 템포의 일렉트로닉 팝 「Favorite Nightmare」 3곡은 제각각 음악적 결을 달리 한다. 그렇지만 연이은 3곡은 제목과 노랫말과 전체적인 무드에서 밤+사랑이라는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며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 3곡의 앞에 놓인 「괜찮은 여자」와 「연예인」도 여성+연예인의 정체성/자의식을 다루며 역시 하나로 묶인다. 전자는 쿵짝거리는 스카 리듬이, 후자는 어쿠스틱 기타의 조촐한 아르페지오가 중심을 잡지만 상반된 스타일의 두 곡은 당연히 한 쌍으로 여겨진다. 이효리의 「미스코리아」에 대한 어떤 화답이랄까. 엠씨, 패널, 심사위원, 배우 등등 누구 못지않게 다방면이었던 방송인 호란에 대한 작은 회고로 읽힌다.


「연예인」은 곡이 좋아서 슬픈 사랑 노래로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고, 「Insomnia」는 예상치 못했던 록 사운드여서 신선하게 들렸다. 이 두 곡이 이바디 시절 그녀가 썼던 곡들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는 점과, 3~5번의 밤 3연작을 정말 잘 구성해냈다는 점과, 이 3연작이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클래지콰이의 옛 소임을 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여자』는 괜찮은 음악을 담은 EP다. 좀 더 진일보하고 야심찬 음악이 아니어서 대충 고개 끄덕거리고 말 음악일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호란의 방향성은 직선적이지 않았다. 호란의 목소리는 클래지콰이 시절부터 가능성의 영역이었고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한 지금도 똑같이 가능성의 영역이다. 팝, 일렉트로니카, 포크, 재즈, 모던록 등등 다양한 장르에서 골고루 통용될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어떤 완성형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뛰어난 음악은 아닐지라도, 『괜찮은 여자』 같은 괜찮은 음악은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다. 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나 괜찮은 음악 옆에 자리 잡은 보컬로 남을 것이다. 3~5번 같은 3연작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괜찮은 여자
    호란
    지쿠
    지쿠
  • 2
    연예인
    호란
    호란
    지쿠
  • 3
    댄싱쓰루
    호란
    지쿠
    지쿠
  • 4
    Insomnia
    호란
    호란
    지쿠
  • 5
    Favorite Nightmare
    호란
    지쿠
    지쿠
  • 6
    꽃가루
    호란
    지쿠
    지쿠

Editor

  • About 윤호준 ( 84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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