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성급한지라 결론부터 말하겠다. 아방 트리오의 『Blue Suns』는 일일사운드가 만들어낸 여덟 장의 앨범 중 가히 최고작이다. 한지연(피아노), 김성배(베이스), 김오키(색소폰). 탐미와 실험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유수의 매체와 관계자, 마니아들의 주목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인해 콜라보를 진행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기가 찰 정도의 시너지와 그들의 음악처럼 차고 넘치는 즉흥성은 그들의 앨범과 더불어 연주하는 본인들마저 이야기의 일부가 되도록 이끌었다. 거침없는 행보와 강단을 방패로, 또 무기로 삼은 레이블이 국내에서 록도 일렉트로닉도 아닌 재즈, 정확히는 연주음악을 등에 업고 생겨날 줄 누가 알았을까. 멋들어진 영웅담은 사기꾼의 소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앨범을 들으며 일일사운드가 만들어가는 전설의 목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의 시작은 「Abdul-Him」으로 귀담아듣지 않으면 적당히 모던하며 임프로비제이션이 강조된 양식으로 하여금 곡을 ‘꾸미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실제로 첫 곡 내내 그들의 연주는 매우 서정적이다. 여기서 아방가르드, 프리의 교묘한 차이를 판가름하려 애쓰곤 하는데, 실상 바로 다음 트랙의 철저한 즉흥성을 만끽할 수 있는 「Cohesive Forse」에 이르면 그 추정은 소용없게 돼버린다. 우둔하게 홀짝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규칙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어느 한 시대, 이를테면 모달재즈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배경은 모던재즈라는 넓은 그림 중 딱 한 부분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쿨재즈든 하드밥이든 넓은 스펙트럼이 모여 『Blue Suns』를 구성하고 있다. 이 부분이 매우 프리하고 작법도 그와 상통한다. 들리는 대로 믿어도 될 것 같다.

소규모 편성이라 단언하는 것은 드럼의 부재 탓이다. 곡을 어그러뜨리는 리듬의 중첩도 없거니와 앙상블의 합만으로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기는 쉽지 않다. 재밌는 건, 이들 각자의 앨범에서도 이러한 작법이 드물다는 점. 세 연주자의 디스코를 살필 필요가 있다. 처음 이 앨범을 듣고 놀란 건 각자의 앨범에서 찾을 수 없던 존중과 배려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지금껏 독선적이라 여겼던 한지연의 연주는 저보다 더 열성적으로 깃발을 드는 김오키의 색소폰을 배려하며 김성배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조화롭다. 리더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느껴지는 건 꽤 긍정적인 일이다. 그룹이라도 그렇다. 반드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차지하는 이가 없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

무엇이 현대적인가. 이 물음에 완벽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일말의 추측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방 트리오를 이해하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하다. 사이키한 접근도, 소울풀한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는 객기마저 없는 『Blue Suns』는 되레 전통적인 연주의 힘을 숭상하는 무리의 집합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재기 넘치는 언어와 넓은 그림을 동시에 형성하겠다는 고집이 이 앨범엔 있다. 그로 인해 이 앨범은 근래에 나온 그 어떤 프리재즈 앨범보다 더욱 현대적인 위치를 손에 넣는다. 고루한 틀 속에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야심가들의 앨범인 것이다. 그 야심의 목격자가 되고 싶다면 당장 CD부터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