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모두의 구원을 읊조리는 시

사비나앤드론즈 (Savina & Drones)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
1,43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05
Volume 2
레이블 포크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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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과 정념을 빼앗는 것은 아름답다. '파격'이라고 일컬을 만한 이성 밖의 도전이 그러하고, 때로 '충격'이라고 표현할 감정의 쓰나미 또한 그러하다. 사비나앤드론즈의 노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매번 아름다워 왔다. 5년을 기다렸다. 물론 사비나앤드론즈만을 "기다렸다"는 건 아무리 개인적인 감상으로라도 과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장인 까닭은, 덜 기다렸기 때문이기보다 EP와 1집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가깝다. 무심코 뒤통수를 맞은 마냥 강렬했던 첫 등장처럼, 이번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은, 시점이나 결과 모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뜻밖이었고 충분했다. 그 이름을 실제로 간절히 기다린 이에게도, 이름을 잠시 잊고 있었던 이에게도 오랜 시간을 지나온 보람을 주었다.

 

 

1. 상처를 전시하는 예언가

 

"푸른 것은 아름답다. 멍은 푸르다. 그러므로 멍든 것은 늘 아름답다."

... 시인 김승희 「시계풀의 편지」중에서 ...

 

워낙 첫인상부터 강렬했던 그이다. 2집을 사유하며 굳이 1집 『Gayo』과 더불어 EP 『Does To Live』까지 언급하는 것이 괜한 부언이라고 생각될지라도 결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등장이었다. 스러질 듯한 톤을 짙게, 조심스러운 발성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사비나(Savina)의 세심한 보컬은 어떠한 레퍼런스 한두 가지와 비교할 수 없는 그녀 고유의 것이었다. 건반이나 스트링이 서늘하고 느린 걸음으로 앞을 이끌든지(「Stay」, 「Where Are You」), 어쿠스틱 기타나 쉐이커의 정겨운 사운드가 리드미컬하게 뒤따르든지(「Backer」, 「Moon Light」)  오롯이 사비나로 수렴하는 보컬이 첫 소절부터 인상을 남겨내곤 하였다. 농익은 열정과 차갑고 쓰디쓴 서정이 동시에 서려, 중독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목소리를 두고 '에스프레소'와 같은 독한 비유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지경이었다. 전위적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중음악의 외연을 넓혔다"는 상투적 상찬이 전혀 밉지 않을 '보컬'이었다.

 

정서의 전달은 더욱 놀라웠다. 가사의 경우, 격한 내면의 감정들이 번역을 중재할 수 없는 국적불명의 언어로 흩어져 얼마 되지도 않는 한글 가사의 의미만을 겨우 쫓을 뿐이었지만, 제목이 선사하는 직관과 순간 스치는 어구·가사의 표현만으로도 정서의 매개는 충분했다. 기나긴 서사의 줄거리보다 핵심적인 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다르게 몰입하고 읊어내는 것만으로 노래의 감정에 동화시키는 주술적 효과는 충분했다. 이는 단지 보컬이나 작법의 기술적인 측면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창작자가 가장 절절하게 부딪혔던 내면의 감성들을 조각 하나 빼놓지 않고 노래에 온전히 갈아넣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앨범 안에 건조한 포크와 녹진한 블루스가 맥락 없이 교차하고, 따스한 모던록 사운드와 차가운 포스트록의 기운이 공존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그 이유였다. 언어와 비언어를 오가는 사비나의 메시지는, 평범한 일상에 문득 스치는 강렬한 잠언처럼, 광야에 외치는 예언가의 선포처럼, 치열함과 먼 거리에 머물던 청자의 감성에 바투 다가서서 심금을 울려대었다.

 

어둠이 빛을 가리고(「Medusa」)·나에게서 멀어지는 그댈 잡으려 애써도(「Stay」)·어디 있을지 모를 그 누군가가 날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적인 고백(「Where Are You」)처럼, 사비나는 언제나 부재와 상실의 슬픔을 담아내는 것(「불새」) 에 익숙해 차라리 "지옥같은 어둠으로 날 버려"(「Moon Light」) 달라고까지 말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노골적인 내면의 전시와 절망적인 슬픔이, 텍스트를 통해서 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주문처럼 뱉어낸 노래와 연주의 백업으로, 가장 내밀한 것을 제일 혹독한 분위기와 깨질 듯한 감정으로 전달하였던 사비나의 계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했다. 고의적인 상처의 전시가 도리어 직설적이지 않았던 까닭에, 청자는 노래의 슬픔을 쉬이 각자의 것으로 치환하였고, 저마다의 슬픔은 사비나 보컬의 신비로운 외형을 입고 극히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되었다.

 

 

2. 고통과 소통하는 구원자

 

"침묵을 깨는 소리의 눌림이 파문을 낳고, 공간을 형성해 빛의 줄기를 허락한다."

... 음악취향y 박병운의 싱글 리뷰 중에서 ...

 

스스로 요동치고 듣는 이도 뒤흔드는 마음의 격류가 몇번이고 출렁이어, 긴 시간 끝에 2집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가 이른 곳은 의외로 잔잔한 바다였다. 첫 곡 「Du:by 」의 인트로에서는 볼륨을 더해가는 페이드 인과 신비롭고 영롱한 공간감의 사운드가 전작 「Stay」와 「Medusa」의 시작을 연상시켜, 앨범의 기조가 전작의 몽환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듯 했다. 이어서 두 번째 트랙 「Don't Break Your Heart」의 문을 여는 건반의 소리가 유독 침착했음에도, 「Stay」나  「Where Are You」에서의 시린 격정을 예상하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사비나의 목소리가 낮은 저음으로 담담히 흘러들었을 때, 이 노래는 가사의 "don't breaking heart" 주제 자체가 되었다. 심지어 3번 트랙 「우리는 모두(We Are)」의 가사가 노골적으로 상실을 노래하고, 건반이 그 톤에 부유감을 더하며, 절정의 가른 비트 위로 조용민의 기타가 절정에 치닫아도 사비나는 예전처럼 쉬이 폭발하지도 흐느끼지도 않는다. 1번부터 3번에 이르는 세 트랙의 느리고 서정적인 호흡은 결코 전작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서사의 방식이다.

 

사실 이전의 EP앨범과 1집이 사비나 자신의 지난 삶을 태워낸 불꽃과 같았기에, 이미 감정의 폭풍이 화려하게 휩쓸고 간 자리가 쓸쓸한 잿더미로 남아 그녀가 들려줄 다른 무엇인가가 더 이상 없으면 어떡할까 싶기도 했다. 이에 2집에 담아낸 사비나의 답변은 어려울 게 없었다. 그저 시간을 새로이 채워넣는 것. 여전히 사비나는 지난 시간의 격정과 슬픔을 노래한다. 다만 한없이 발산하던 그녀는 조금씩 그것을 삼키고 나누기 시작했다. 샅샅이 비워낸 마음 한 켠을 차곡차곡 다시 쌓아가는 2집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는, 앞선 원시적 주술과 다른 거룩한 기도를 통해 듣는 이를 새로운 영적 세계로 인도한다. 첨예한 움직임과 서늘한 기운으로 내리쳤던 세로의 섬광은,  널리 퍼져가는 평행면의 파동으로 변화하여 공감하고 또 소통한다.

 

한결 부드러운 노래의 감성은 1집의 마지막 트랙 「우리는 가슴만으로 사랑했네」를 통해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쟁글쟁글한 기타와 처연하고 꺼끌한 사비나의 감성이 차분히 가라앉았던 이 싱글은, 유독 김영준의 더더 시절 한 귀퉁이를 연상시키며 사비나앤드론즈의 상이한 음악 방향을 짐작하게 했었다. 허나 「Don't Break Your Heart」와 「우리는 모두(We Are)」는 그와도 확실히 다르다. 비슷한 감성이나 같은 주제의 가사일지라도, 내면의 온 감정을 텅 비우도록 들어내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던 황량함이, 또렷한 점성의 나긋한 고백이 되어 청자를 설득한다. 중반부 「So When It Goes」나 후반부 「그리운 봄날」까지 전부 사비나가 작곡한 곡에서 드러난 감성과 보컬의 변모한 표현은, 공백과 새 창작의 시간 뚜렷이 변화된 사비나의 생각을 반영한다. 선언적인 전언이 가시화된 구원의 지각이 되는 순간, 듣는 이의 감상 역시 달라진다. 5년 전 그녀의 선언 앞에 일순 빨려들었던 청자는,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는 그녀의 구원 앞에 다시 살며시 잡아 당겨진다.

 

 

3. 슬픔을 분담하는 시인

 

더욱 새로운 것은, 사비나가 초대하는 구원에 당도했을 때 듣는 이가 마주하는 것이 사비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 사비나앤드론즈 역시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소리를 걷어내기도 채우기도 하며 여러 장르적 어프로치를 들려주었다고는 하지만, 이 모두는 결국 특정한 시대나 장르의 양식에 기대지 않는 사비나의 음악 그 자체였다. 김영준이 마련한 공간 위에 사비나가 입힌 디자인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그 이름 아래 헤쳐 모여 「Backer」, 「Stay」, 「Take It Slow Way」 등 몇 가지 사비나앤드론즈가 대표하는 이미지의 총체로 귀결되었다. 반면 이번 음반에서는 사비나 한 점을 통해 다양한 시도들이 퍼져 나가는 조용한 파문이 일어난다.

 

트랙을 먼저 녹음한 후 멜로디를 얹고 노래를 입히는 이전 방식으로부터, 멜로디와 노래를 만든 뒤 악기 파트를 완성하는 형태로, 작·편곡 순서가 아예 뒤바뀌었기 때문일까. 전 앨범에서 이미 함께 했던 조용민(기타)의 존재감은 「La Fee Verte」, 「Bird」와 같은 단촐한 어쿠스틱 아르페지오 반주에서마저 더욱 빛을 발하고, 특히 정현서(베이스)와 유승혜(키보드)가 작곡한 곡들은 사비나의 곡들과 전연 다른 색으로 감동을 준다. 세밀하게 프로그래밍된 「Falling 」의 환상적인 공기나 「그때 내가 처음 본 너의 두 눈」의 어둡고 습한 트립합 분위기 속 사비나의 메아리는, 오히려 과거 그녀에 가까운 감성으로 각기 낙하하고 침잠하며 휘몰아친다. 거꾸로 「고양이로트(Catrot)」의 통통 튀는 건반과 새치름한 정서는 사비나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장면으로서, 앨범 정가운데 위치해 가벼운 낭만으로 앨범의 어두운 정서를 환기한다.

 

2집의 전환은 무엇보다 사비나 스스로 외롭지 않게 된 까닭이 크다. 음악을 통한 외면화를 체득해 나가며 홀로 분투했던 사비나는, 가사와 작법 등 소통의 외연을 확연히 넓혀내 감성을 공유한다. 사비나의 사비나앤드론즈가 아닌 밴드 사비나앤드론즈의 사비나로 유영하듯 흘러가는 작금의 사비나는, "공명하여 울리는 소리"로 의도한 '드론즈'의 의미를 가장 충실히 수행한다. 가사는 계속 그래왔듯 우울한 시선을 견지하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아픈 상처들을 돌아보지만, 이제는 슬픔의 내부로 파고들기보다 외부로 빠져나온다. 뜻을 가늠할 수 없던 방언은 청자에게도 닿을 기도문이 된다. "애가 타는 것들은 닿을 길이 없고"(「Don't Break Your Heart」) "시간과 함께 그 아픔도 머문다"(「So When It Goes」)는 초연과 감내의 메시지는 2집의 사비나가 느끼는 솔직한 심정임에도 자연스럽게 너와 나의 기도가 된다.

 

 

결(結)

 

사비나앤드론즈가 2집에 이르는 여정은 일련의 서사가 짐작된다. EP앨범 마지막 트랙「R」의 지독한 사운드가 1집의 「Medusa」나 「Vertigo」로 이어진 것이나, 1집 「Dosed U」와 「우리는 가슴만으로 사랑했네」에서 2집의 공기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서사는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결국 모든 이의 구원을 희망하며 읊조리는 시이다. 헤어진 가족의 고통을 노래한 1집 「Where Are You」나 위안부 할머니의 슬픔을 담아낸 2집 「그리운 봄날」 모두 마찬가지이다.  상처를 전시하는 절규나, 고통을 인고하는 시간 묘사 일체는 불행히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다. 사비나와 사비나앤드론즈는, 여전히 정서의 메타포로서 그 어떤 언어보다 유창한 음악의 전달력을 제대로 들려주며, 무엇보다 변화된 감성으로도 그만의 정체성을 부드럽게 지켜낸다. 이는 뮤지션만이 아닌 청자에게도 중요한 서사적 경험이며 진보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과 정념을 빼앗는 것은 아름답다. 충격적인 감성의 토로를 통해 우리의 귀를 빼앗았던 사비나앤드론즈는  이제 굳이 파격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 선택으로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는 아름답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수용 가능하기에 아름다운, 자연스러운 '역전'이 일어난다.

 

Credit

Produced by SAVINA &DRONES
Vocal SAVINA
Bass 정현서
Acoustic &Electric Guitar 조용민
Keyboard &Chorus 유승혜
Programming 민경준
Drums 김동률
Recording Studio : KT&G 상상마당 춘천 라이브 스튜디오, 프렐류드 스튜디오 (Prelude Studio)
Recording Engineer : 이승환 at KT&G 상상마당 춘천 라이브 스튜디오
Song Recording &Mixing Engineer: 이창선 at 프릴루드 스튜디오 (Prelude studio)
Assistant Engineer : 노상준 at 프릴루드 스튜디오 (Prelude studio)
Mixing Engineer : 이창선
Mixing Studio : 프릴루드 스튜디오 (Prelude studio)
Mastering Engineer : 황홍철
Mastering Studio : 미드웨이 마스터링 스튜디오 (Midway Mastering Studio)
Photographed by 리에(Rie)
Album Designed by 리에 (Rie)
Stylist : 리에 (Rie)
Hair &Make up : 양아름
Supported by - KT&G 상상마당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Du:by
    사비나
    사비나
    사비나
  • 2
    Don't Break Your Heart
    사비나
    사비나
    정현서, 조용민, 민경준, 유승혜
  • 3
    우리는 모두
    사비나
    사비나
    정현서, 조용민, 유승혜
  • 4
    La Fee Verte
    사비나
    사비나
    조용민
  • 5
    Faling
    사비나
    정현서
    -
  • 6
    So When It Goes
    사비나
    사비나
    조용민
  • 7
    고양이로트
    사비나
    유승혜
    -
  • 8
    There Are
    사비나
    사비나
    정현서, 조용민, 민경준, 유승혜
  • 9
    Bird
    사비나
    사비나
    조용민
  • 10
    그리운 봄날
    사비나
    사비나
    정현서, 조용민, 유승혜
  • 11
    그때 내가 처음 본 너의 두 눈
    사비나
    사비나
    정현서, 조용민, 민경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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