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살아 있는 화석을 만드는 방법

정미조 『37년』
1,050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02
레이블 JNH
공식사이트 [Click]

정미조는 패티김과 양희은의 절충이었다. 물론 패티김에 비하면 카리스마는 덜하고 양희은보다는 조금 덜 뭉클했다. 하지만 패티김도 양희은도 쇼 무대와 캠퍼스에서 동시에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니 저마다의 향수를 가질 수 밖에. 늙은 사람들이 술 한잔하고 「개여울」을 부르며 잊지 못한 첫사랑을 떠올리는 궁상을 종종 본 일이 있다.


정미조가 가진 드문 캐릭터는 이런 리이슈 프로젝트와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마음을 흔들어 놓고 종적을 감춘 목소리. 아름다운 모습을 각인한 채 사라진 여자. 그러니 지금 찾은 목소리는 새롭고 익숙하고 또한 간절히 열망하는 목소리가 된다. 그녀는 환상의 여인이었다. 「개여울」로 시작하고 「휘파람을 부세요」로 닫는 앨범의 전략은 그러므로 의미심장하다. 관건은 그 사이다. 패티김과 양희은 사이, 세련과 낭만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말이다.


앨범은 세 가지 방법을 취한다. 하나는 「귀로」에서 처럼 아지랑이 피는 나이론 기타 소리다. 그 뒤에는 고즈넉하게 현악기가 울려퍼진다. 무지개 너머를 그리고, 담벼락에 기대 울던 아이를 소환하며 추억을 종용한다. 이것은 동면했던 가수를 불러내는 다소 손쉬운 방법이다. 「미워하지 않아요」의 룸바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의 피아노 발라드도 마찬가지다. “탄식”같은 낱말이나 “라일락 피던 오월”과 “수국이 피던 유월”의 호응을 통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추억을 가공하고 가수의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교양 있는 어른들의 팝이라고 부르겠다. 실제로 그런 어른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래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확인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게 하는 묘한 환타지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그렇지 않다고? 당신의 반론은 잠깐 미뤄두고 두 번째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두 번째 방법은 고상지의 반도네온이다. 그 옆에는 왈츠의 세 박자와 탱고의 나른함이 있다. 때때로 샹송도 있다. 이 방법은 사실 첫 번째 방법과 다르지 않다. 한국 스탠더드 팝을 말할 때, 샹송과 라틴의 영향은 지대하다. 60년대 이후 서구화의 강렬한 욕망은 구닥다리 트로트와 되바라진 로큰롤을 빼고 남은 것들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정미조가 환상의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런 영역에 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대를 나온 미술하는 예쁜 여자였다. 37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영향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시점에서 앨범을 제작한 JNH 뮤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와 민경인같은 재즈부터 전제덕, 박주원같은 괴물 연주자들은 물론이고 로스 아미고스같은 독특한 포맷까지 보유한 레이블로 재즈로 시작했지만 한국적인 스탠더드 팝, 혹은 한국적인 어덜트 컨템포러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레이블이다. 말로의 『동백아가씨』(2010)부터 시작해서 최백호와 권진원을 거쳐 정미조에 이르기 까지 남다른 영역을 개척해 왔다. 이들의 작업에 큰 박수를 보내는 입장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말하고픈 것은 한국적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가진 몇 가지 고정된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세련된 어른들의 팝이 가진 고즈넉함, 고풍스러움, 세련된, 라틴이나 샹송의 요소들 말이다. 이것은 고급음악으로서의 재즈의 이미지를 학습한 뒤에 등장한 요소들로서 어떤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취향에 쉽게 마음을 주게 된다. 하지만 가끔씩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 역시 고백한다. 언젠가 재즈를 소비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전문직 여성에 대해 비판했던 적이 있는데 이런 경향의 앨범에서는 장르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근처의 386세대들이 떠올려진다. 좋은 음악을 듣는데 세대나 집단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냐만은 이런 경향 안에 은근히 흐르는 고급스러움, 세련된 음악이라는 이념이 느껴져 까끌거린다. 고급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세련됨에는 동의할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 평면적이다. 성격 없는 기성품을 보는듯하달까? 최백호의 『다시 길위에서』(2012)를 듣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최백호가 가진 서민적인 직관과 부르주아적인 세련은 듣기 민망할정도로 어색했다.


이제 정미조를 현대적으로 꾸미는 세 번째 방법에 대해서 말 할 차례다. 정미조가 가진 역사는 JNH뮤직이 만든 어른들을 위한 세련된 팝의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사연을 가진 어른들의 품격 높은 음악. 여기에서의 품격은 재즈, 탱고, 반도네온, 라틴, 고학력, 미술, 탄식, 수국 같은 낱말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때문에 첫번째와 두 번째 방법만으로도 나름대로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나는 이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앨범에는 다른 유사 경향들과 다른 캐릭터가 발견된다. 「그대와 춤을」은 낯선 기타로 시작해서 베이스와 유니즌하며 인트로를 만들어낸다. 「다시 만나요」는 70년대스러운 펜더로즈 풍의 건반을 중심으로 훵키와 부갈루의 유산을 적절히 활용하며 곡을 진행한다. 「도대체」 역시 건반과 명징한 기타 톤의 활용이 도드라진다. 이런 편곡은 분명 편곡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것은 온전히 손성제의 몫이다. 꼭 손성제가 아니더라도 한 가수와 그 가수의 시대를 이해하는 음악감독의 역할이 이런 리이슈 프로젝트에는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앨범 최고의 트랙은 「끝이 없는 이별」이다. 역설적이다. 세련된 앨범 속에서 가장 구닥다리 같은 곡이다. 구식 카바레에서 20년대식 스팽글 원피스를 입고 스웨이드 장갑을 낀 긴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노래하는 여가수가 떠오른다. 이것 역시 전형적인 클리세일까? 하지만 고독한 기타와 비브라폰이 하몬드 올갠과 함께 수를 놓는 이 구식 노래는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며 만들어졌고 그 시절의 환상의 여인이 다시 돌아와 노래하고 있다. 이런 찐한 감정이야말로 정미조를 박제된 화석이 아니고,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한 세련된 재즈 싱어도 아니고, 펄펄 살아 있는 강렬한 생명체로 만드는 것이다.

Credit

[Staff]
Producer : 손성제
All Arrangement : 손성제
String Arrangement : 김은영, 변동욱, 손성제
Recording Studio : Yireh Recording Studio
Recording Engineer : 김용근, 신대섭
Mixing Studio : Monkey Music Studio
Mixing Engineer : 윤정오
Music Editing : 김보성
Mastering Studio : Sound Mirror
Matering Engineer : 황병준
Art Direction : 손재익
Executive Producer : 이주엽

[Musician]
Electric Guitar : 정수욱 (Track 8, 11, 12)
Acoustic Guitar : 박윤우 (Track 2, 5, 13)
Acoustic Bass : 이순용 (Track 3~13)
Drums : 서수진 (Track 3, 5, 7~13)
Percussion : 김정균 (Track 3, 5, 9, 11, 13)
Bandoneon : 고상지 (Track 3, 7, 10)
Piano : 김은영 (Track 1, 3, 4, 6, 7, 10)
Vibraphone : 이희경 (Track 3, 5, 12, 13)
Marimba : 이희경 (Track 5, 8)
Keyboard : 남메아리 (Track 9, 11, 12)
Clarinet : 손성제 (Track 13)
Bass Clarinet : 손성제 (Track 1)
Midi Programming : 손성제 (Track 5)
Strings : 육나겸, 안세연, 박은희, 장예은, 서예슬, 장희재, 유경진, 박선민 (Track 2, 4, 6)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개여울 (feat. 손성제)
    김소월
    이희목
    손성제
  • 2
    귀로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3
    인생은 아름다워 (feat. 고상지)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4
    미워하지 않아요
    박창학
    이지영
    손성제
  • 5
    7번 국도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6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손성제
  • 7
    낙타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8
    그대와 춤을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9
    다시 만나요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10
    피려거든, 그 꽃이여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11
    도대체
    이주엽
    손성제
    손성제
  • 12
    끝이 없는 이별
    박창학
    손성제
    손성제
  • 13
    휘파람을 부세요
    이장희
    이장희
    손성제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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