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무정형의 불꽃놀이

이랑 (Lang Lee) 『신의 놀이』
1,886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 7
Volume 2
레이블 소모임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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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 유머에신의 놀이의 중요한 노래 중 하나다. "하하하하 히히히히 호호호호 헤헤헤헤" 이렇게 웃기만 하는 요상한 노래가 중요하다니. 아마도 이 노래를 편들어 주는 방법은 웃음을 받치는 첼로의 연주가 서정성과 자유분방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데, 이유인 즉 이 노래의 중요성은 첼로라는 음악적 근거뿐만 아니라 동명 타이틀의 문집 속에 마련된 문학적 근거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집 44p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매일매일 나가고 웃고 떠들며

선물을 선물하고 또 선물을 받고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잘 모르는데

이 내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어 있는지

큰 소리로 확실히 웃지 않으면 안 돼

뭔가에 반응하는 걸 보여주란 말이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불안하지 않게

여기에 있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리게

 

웃어, 유머에

 

이 문단이 웃어, 유머에란 노래에 중대한 의미와 힘을 실어주고 있는 건 자명하다. 대체로 앨범 신의 놀이와 문집 신의 놀이는 이런 관계에 놓여 있다. 가족을 찾아서란 곡에 등장하는 "키우는 고양일 세게 때렸던 것" 이란 노랫말이 그토록 예리한 칼날처럼 다가왔던 이유는 무얼까? 아무래도 "준이치는 어쨌든 내 고양이니까, 내가 걔보다 먼저 죽을 수는 없어. 그런 식으로 준이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아."라고 써 놓은, 죽고 싶지만 차마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대는 문집 속의 대목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앨범 수록곡들이 문집 덕분에 더 빛을 발한다는 위의 가치 판단 과정은 과연 정당할까? 돌연 이런 의심이 스쳐간다. 음악 자체만 놓고 보자면 앨범 신의 놀이는 성글게 치는 기타 스트로크와 이랑의 화장기 없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협업 뮤지션들이 적절히 보좌해준 조금은 특이하고 조금은 풋풋한 노래들의 집합인데, 이게 문집 신의 놀이로 인해 당의정을 입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생각을 몰아가면서, 앨범 신의 놀이는 애초부터 음악적 성취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암암리에 상정하고 가는 건 아닌지 문득 움찔했다는 얘기다. 한편 반대로, 앨범 신의 놀이와 문집 신의 놀이의 가치를 분리하려고 하는 판단의 첫 단추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왜 그걸 쓸 데 없이 음악과 문학으로 나눠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신의 놀이는 그냥 하나의 복합체이며 그렇게 복합적으로 얽히고 읽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면 될 것을, 지금 음악 평론의 시선에서 우선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모양 빠지게 음악+문학이라는 분리질이나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결론 같은 이런 고백을 벌써 해버린 게 과연 잘한 짓일까?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건 김윤아의 Shadow Of Your Smile(2001)이나 오지은/서영호의 작은 마음(2016)을 앞에 두고도 앞 문단을 똑같이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낄까 하는 점이다.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윤아와 오지은 음악의 차이는 두 사람과 이랑 음악의 차이에 비하면 그 간격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것과, 김윤아와 오지은 문집의 구성과 문체와 분위기 옆에 이랑 문집의 그것들을 가깝게 붙여두는 게 어색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앞 문단의 문제의식은 마치 손바닥 뒤집듯 한 쌍으로 이루어진 결론의 반대편 얼굴로 향한다. 글이 음악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 혹은 글과 음악을 분리하여 서로 간섭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이랑의 신의 놀이복합체를 이해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김윤아와 오지은 음악에서 나오는 어떤 풍부한 존엄이 이랑의 음악에는 없다. 이건 후지다는 뜻과는 다르다. 존엄-없음이라 불릴 이랑 특유의 음악색은 그 엉성한 허의 공간을 동봉된 문집 속에 그대로 박아버린다. 반대로 일과 친구와 죽음과 사랑과 신에 대해 문학적 허세의 포장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알맹이를 드러내 놓는 이랑의 글은 음악 속으로 스며 무정형의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음악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문집을 읽었을 때 맨 마지막 92~94p를 장식하는 그 글들이 노래 가사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건 그냥 앞 문단과 자연스럽게 붙은 글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랑은 그 글들을 그대로 주절주절거리며 7분에 육박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 선율 같지 않은 선율, 위태롭게 이어지는 리듬으로 이랑은 아주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노래는 그저 웃음으로만 채워진 웃어, 유머에와 정반대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두 노래 사이에는 어떤 이질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회고록 나라 없는 사람(2005)을 인용해 만든 마지막 곡 좋은 소식, 나쁜 소식도 마찬가지다. 이랑이 문집에서 보네거트를 엄청 좋아한다고 발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랑의 글들이 인용구와 비슷한 정서를 띄기 때문이기도 하며, 만든 노래가 계속 막무가내로 끝 음절을 "하네~~~" "말게~~~" 질질 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세가지 이유가 한 지붕 세 가족처럼 골고루 섞여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타인의 글임에도 완벽히 이랑 자신의 음악이 된다.

 

내가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에는 교훈이 없다. 교훈을 노래에 넣기에는 내가 아직 어린 것 같다. 대신 나는 노래 속에서 꽤나 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날은 질문만 던지다 잠이 들기도 한다. 때때로 내가 만든 노래를 들으며 나는 왜 이렇게 바보인가 생각한다. 여전히 질문은 끝이 없고, 어떤 땐 그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나에게 질리고, 화가 난다. '넌 언제까지 이렇게 묻기만 할래?"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답을 주지 않기에 계속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저는 왜 이렇게 아는 게 많고,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요?

 

82p에서 이랑은 자기 노래의 핵심을 이렇게 밝혔다. 이것이 비범함의 근거이자 자유로운 예술가의 초상일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또 퍼뜩 드는 생각은 문집 신의 놀이가 특유의 관심사와 독특한 행동거지와 남다른 사유 방식을 드러내는 만큼이나 보편적인 문제들을 곧장 찔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 싶다, 가족이 밉다,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친구가 보고 싶다, 이런 문제들을 곱씹는 기회를 신의 놀이는 제공한다. 나는 왜 알아요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아래의 내레이션 같은 문제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놓는다.

 

저의 존재는 무겁고 힘든데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요

한 사람을 감명시키기도 어렵고요

다시는 못 볼 사람들과 인사하고요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그걸 말하거나 노래하는 건 더 힘들어지고요

 

그런데

나는 왜 다 알아요?      

Credit

프로듀싱, 녹음, 믹싱, 디자인: 김경모(선결)
드럼 녹음: 천학주(머쉬룸 스튜디오)
녹음 장소: 아메노히 커피점, 집, 머쉬룸 스튜디오, 예술가의 집('소설을 읽는 10가지 방법' 행사)
마스터링: 이재수(소노리티 마스터링)
사진: 박정근(조광 사진관)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신의 놀이
    이랑
    이랑
    -
  • 2
    가족을 찾아서
    이랑
    이랑
    -
  • 3
    이야기속으로
    이랑
    이랑
    -
  • 4
    슬프게 화가 난다
    이랑
    이랑
    -
  • 5
    웃어, 유머에
    이랑
    이랑
    -
  • 6
    도쿄의 친구
    이랑
    이랑
    -
  • 7
    평범한 사람
    이랑
    이랑
    -
  • 8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랑
    이랑
    -
  • 9
    나는 왜 알아요
    이랑
    이랑
    -
  • 10
    좋은 소식, 나쁜 소식
    Kurt Vonnegut
    이랑
    -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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