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근거 있는 실력, 리부트

이센스 (E Sens) 『The Anecdote』
1,886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8
Volume 1
레이블 비스츠앤네이티브스
공식사이트 [Click]

사실 판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뻔했다. 온갖 수사와 증언이 속출했고 심지어 방송사까지 곧 강림할 메시아에 앞서 발광하는 죄악들 마냥 굴어주었다. ‘한국의 『Illmatic』’이라는 칭호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만큼 씬의 고름이 터지기 직전이었으므로 단 한 명의 그를 향한 신뢰는 천장을 뚫은 지 오래였다. 대마초로 대중의 반응까지 집중된 마당에 어쩌면 2년 이상 지체될 뻔했던 앨범은 다들 손톱을 뜯던 차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정반만 해도 웬만한 국내 힙합 앨범 예닐곱개의 판매량을 제쳐버렸다. 그리고 지금의 환호는 분명 기대 이상의 것이다. 앞서 말한 모든 게 이센스의 『The Anecdote』 얘기다.


힙합 아이돌, 슈프림팀으로 확연히 팬덤을 구축했던 이센스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부정할 수 없이 그가 속한 팀의 노래가 시작이었다. 병아리를 데려다 닭이 못 될지언정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는 방식, 일단 완전히 자란 닭을 모아놓고 싸움을 붙이는 방식의 차이. 명목 상으로만 힙합인 곳에서 얼떨결에 메이저가 돼버린 이센스, 겉치레만 블랙뮤직에 속은 영락없이 가요를 표해야 했던 그가 어떻게 일탈했고, 다사다난한 과정 끝에 ‘근거 있는 실력’의 진짜 주인이 되었는지를 논하는 건 실상 무용하다. 답은 그저 실력과 태도거든.


GQ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앨범을 두고 “이 음반에서만큼은 그냥 사는 얘기.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한국이 보여야 돼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힙합의 인상을 약간은 교포로 단정짓기도 했다. 니플라와 루피 말고도 코홀트, 일리네어와 여타 흐름을 관통한 대답이다. 이것은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그것의 정당성을 배제하고 봐도 어설픈 한영혼용 없이 단단한 구성, 대놓고 폼 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폼으로 스킬을 뽐내는 식이다. 친구, 학교, 계약과 별 볼일 없는 씬. 이센스의 랩은 시작부터 자신의 전제를 더욱 공고히 한다.


때문에 음감회에서 「주사위」가 어째서 1번 트랙인지 의아했으나 곧 풀렸다. 이센스는 대다수의 곡에서 씬을 바라보는 반쯤은 외부자의 입장으로, 혹은 그마저도 않는 사적인 삶을 지속하는 중이다. 「Sh All Day」 같은 곡이 수록되지 않은 이유, 「Next Level」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씬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 근사한 건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라 짐작한다. 일정한 패턴 이후 나오는 「The Anecdote」와 「Back In Time」의 교차 역시 비슷한 의미로 작동한다. 앨범은 이센스의 자의식을 경험을 토대로 여과 없이 드러내며 구성을 다진다. 『The Anecdote』 속 이센스는 틀림없이 사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마음껏 말하고 스스로 금기냐고 물으며 엿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작업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Writer's Block」는 차분히 톤을 높여 가는 루프와 축을 잡는 드럼이 나서는 방향으로 곡이 진행된다. 랩퍼로서 난감한 구성에 이센스는 치밀하게 구성된 랩으로 응답한다. 킥과는 다른 리듬으로 신스가 부차적인 멜로디 요소를 담당하면, 이미 구리다고 말하곤 수차례 고쳤을 가사가 훅으로 빠르게 치고 나온다. 고속으로 속도를 올린 작법을 연상케 할 만큼 끊임없이 각인하고 나서야 곡이 끝난다. 「삐끗」은 코러스 역할의 보컬이 가세해서 한층 더 확고하게 랩이 날뛰도록 이끈다. 그제야 더욱 명확해진다. 뜨끈한 냉소는 익숙하지만 그걸 담당하는 이센스의 랩은 역시나 최상의 수준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게토 흉내를 내는 한국 랩퍼들이 쇼쟁이로 밖에 남을 수 없는 예시를 몇 차례 대곤 마침내는 이 바닥이 시작부터 ‘삐끗’이란다. 이 얼마나 통쾌한가.


Obi가 담당한 프로덕션은 단일 프로듀서 체제를 고수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이센스는 Nas와 Jay Z 같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힙합의 맹주들을 듣고 있지만, 그가 만들어낸 사운드는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소리들과 비슷하다. D.I.T.C.와 Boot Camp Clik로 요약할 수 있는 사운드들. 그것들의 위에서 춤을 추는 이센스의 랩은 Diamond D나 O.C의 중간 정도 되는 톤이 아닌가 싶을 만큼 기시감이 들면서도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 즉, 전설들을 레퍼런스로 무작정 들이민 게 아니다. DJ Premier로 대표되는 붐뱁의 특정 사운드보다 느슨하고 서정적인 무드를 가진 이러한 소리들은 리릭시즘에 기초를 두었던 이들이 자주 애용한 것이다. 이센스야 말로 한국힙합에서 그러한 맥락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그들은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스킬, 단단한 서사와 곱게 맺은 갈래들. 이센스가 내놓은 건 결단코 한국힙합 리부트가 아니다. 리부트가 될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사적이고, 혁신을 촉구하는 웅장한 선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센스라는 뮤지션이 내놓은 탁월한 기술은 같은 직종의 이들마저 감탄을 마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담보하고 있다. 그것은 태도, 씬에 필요한 메시지, 가족과 친구를 바라보는 특유의 염세적인 시선을 아우르며 앨범 전체를 감싸 안는다. 하나의 앨범이 지금의 부패된 찌꺼기를 청소해줄 거란 확신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믿게끔 해주는 것,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 그것이 『The Anecdote』가 쌓은 업적이다.


Credit

All tracks produced and arranged by OBI for DEEKAY Music.
All lyrics by 이센스, except for 「Tick Tock」 by 이센스 & 김동현
All programming and instruments by OBI except guitars on 「Writer's Block」 performed by Johannes "Josh" Joergensen.
Additional keyboards and background vocals by Permille Sejlund on 「Back in Time」.
Various acoustic instruments performed by Permille Sejlund on 「The Anecdote」.
「A-G-E」 & 「The Anecdote」 contain samples from the album 『Time For Reflection』 by Permille Sejlund, all right reserved.
All songs recorded and engineered by OBI at DEEKAY Studios, Copenhagen
All songs mixed and mastered by Martin Larsson at DEEKAY Studios

Executiver Producer : Keyon Kim
Album Producer : Keyon Kim, 이센스
A&R Direction & Coordination : Keyon Kim
International A&R & Promotion : 조한나
Publicity : 임대범
Art Direction & Design : 김현지
Cover Photography : Teh Kang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주사위
    이센스
    Obi
    Obi
  • 2
    A-G-E
    이센스
    Obi
    Obi
  • 3
    Writer\'s Block
    이센스
    Obi
    Obi
  • 4
    Next Level
    이센스
    Obi
    Obi
  • 5
    삐끗
    이센스
    Obi
    Obi
  • 6
    10.18.14
    이센스
    Obi
    Obi
  • 7
    The Anecdote
    이센스
    Obi
    Obi
  • 8
    Back In Time
    이센스
    Obi, Pernille Sejlund
    Obi
  • 9
    Tick Tock (feat. Kim Ximya)
    이센스, 김동현
    Obi
    Obi
  • 10
    Unknown Verses
    이센스
    Obi
    Obi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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