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동충하초

쾅 프로그램 (Kuang Program) 『감은 눈』
1,46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 10
Volume 2
레이블 헬리콥터 레코드
공식사이트 [Click]

불길하게 딱딱거리는 비트와 신디사이저의 원색적인 불협화음으로 채운 1번 트랙 「Little Shop Of Horror」는 전작의 1번 트랙과 비슷한 출발인 듯 보인다. 3년 전의 1번 트랙도 시작은 노이즈였다. 하지만 2번 트랙 「감은 눈이」까지 들으면 과거와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과거의 2번 트랙 「30km」는 기타와 드럼이 중심이 된 강렬한 하드록이었지만 이번에는 1번을 지나 2번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록 드럼이 나오지 않는다. 기타의 디스토션도 없다. 「감은 눈이」의 후반에 등장하는 드러밍이 뭔가를 기분 좋게 소환해내지만 그것은 록 밴드에 대한 반가움과 거리가 멀다. 「감은 눈이」의 드러밍은 전작의 공간감만을 소환한다. 불길하고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어떤 곳, 미지의 축축한 기운이 코를 찌르는 곳, 드럼이 그런 곳에 들어앉아 있는 건 예전과 똑같다. 하지만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은 이제 전자음이다. 「30km」와 「625720」의 인트로를 장식했던 잡음 뭉치, 「Gangs Are Blue」의 바닥에 깔려있던 전자음이 『감은 눈』에서는 전면에 나선다. 「감은 눈이」는 반경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메아리의 폭음, 신호음으로 만들어진 단절적인 루프, 미세함과 과감함을 넘나드는 노이즈들로 이루어진 다크 엠비언트다.


귀에 쏙 들어오는 보컬 훅을 지녔던 「30km」와 달리 3번 트랙 「감은 눈」의 보컬은 지저분한 기타 트레몰로와 어지러운 신디사이저 속에 떨궈진 몽유병자의 횡설수설이다. 이어지는 「팔근육」은 드럼이라는 큰 줄기에 온갖 소리를 접붙인 괴이한 생명체다. 슥삭거리고 웅웅거리고 왱왱거리는 소리들이 드럼의 각 부위에 들러붙어 드럼은 졸지에 동충하초가 되고 『플라이』의 파리인간이 된다. 심벌즈가 징처럼 들리는 「팔근육」의 마지막 절정은 『곡성』의 무시무시한 굿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막대한 음의 덩어리를 쏟아낸다. 이쯤 되면 『나 아니면 너』(2013)와 『감은 눈』의 간격은 완전히 벌어진 듯 보인다. 『나 아니면 너』에 수록된 「도깨비 시장」은 Happy Mondays 류의 댄스록이었는데, 『감은 눈』의 「팔근육」은 굿판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쾅프로그램은 여전히 최태현과 드러머의 2인조라는 점에서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 기타가 줄고 기계음이 늘어났을 뿐, 자기만의 공간에 예사롭지 않은 사운드를 펼쳐놓는 그의 노선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드럼에게 그 공간을 장악할 큰 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변함이 없다. 로큰롤 리듬을 걸쳤던 쾅 프로그램은 엠비언트와 인더스트리얼로 옷을 갈아입었다.


「This Filthy Water」를 듣고도 이들의 새 옷에 불만을 표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드럼이 드넓은 공간을 관장하고 무슨 강연인지 토크쇼인지 모를 영어의 지껄임 위에 여러 색의 노이즈 폭탄을 투하하는 이 곡은 『감은 눈』의 성취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나 아니면 너』를 그리워할 이유는 없어진다. 틱 장애에 걸린 듯 기타가 1초짜리 트레몰로를 끝없이 긁어대는 「WEYUM!」, 단순무결한 글리치 위에 잔뜩 왜곡시킨 기타와 드럼을 얹은 「Why Always Me?」, 재잘대는 잡음으로 시작하여 타악의 미친 향연으로 치닫는 「브라질리언 연지곤지」까지 『감은 눈』은 후반부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다.


앨범을 쭉 듣고 있으면 Einsturzwnde Neubauten, Throbbing Gristle, Nurse With Wound 등이 자연스럽게 주위를 스친다. 하지만 그저 잠시 맴돌 뿐, 수십 년 전의 그들과 비슷하다는 뜻도 아니고 그들의 후예라는 얘기도 아니다. 쾅프로그램은 여전히 쾅프로그램 자신으로 끝가지 남아 있다. 이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전작만큼 즐겨 듣지 않을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상황 판단을 내리고는 뭔가 한 마디 보태고 싶어졌을 뿐이다. 이 장르의 수작들이 그렇듯 『감은 눈』은 사운드의 육화와 물화에 관한 흥미로운 텍스트이며 수십 년 전의 그들만큼 해냈다. 이 앨범은 한국산 노이즈 일렉트로닉과 인더스트리얼의 흔치 않은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Credit

Recorded, mixed and mastered by Taehyun Choi
Illustration by Byoung Jae Lee
Design by qkrwodud
Special Thanks to Jaeyoung Park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Little Shop Of Horror
    -
    -
    -
  • 2
    감은 눈이
    -
    -
    -
  • 3
    감은 눈
    -
    -
    -
  • 4
    팔근육
    -
    -
    -
  • 5
    울 수 없나요
    -
    -
    -
  • 6
    This Filthy Water
    -
    -
    -
  • 7
    WEYUM!
    -
    -
    -
  • 8
    은진면 온라인 라이더
    -
    -
    -
  • 9
    zzz
    -
    -
    -
  • 10
    Why Always Me?
    -
    -
    -
  • 11
    브라질리언 연지곤지
    -
    -
    -
  • 12
    유니콘
    -
    -
    -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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