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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보다 뛰어난 집합 : 레드벨벳이 그리는 세계

레드벨벳 (Red Velvet) 『The Red Summer : Summer Mini Album』
2,24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7.07
Volume EP
레이블 SM
공식사이트 [Click]

레드벨벳의 다섯 번째 미니앨범 『The Red Summer』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일된 앨범의 가치를 역설하는 앨범이다. 타이틀 곡 「빨간 맛」, 특히 「빨간 맛」의 사운드나 퍼포먼스만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다른 아이돌과 좀 달랐던 레드벨벳의 앞선 타이틀에 비해 조금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빨간 맛」에는 「Ice Cream Cake」(2015)와 「Dumb Dumb」(2015)의 선진적인 비트가 없고, 「Ice Cream Cake」와 「Russian Roulette」(2016)의 빼곡히 들어찬 사운드도 없다. 「Dumb Dumb」과 「Rookie」(2017)의 허를 찌르는 병맛도 없고, 「Dumb Dumb」, 「Russian Roulette」, 「Rookie」로 이어지며 으레 있어왔던 중독적인 반복구도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강렬하면서도 매끄럽게 잘 빠진 SMP 사운드 스케이프를 기조로 삼지만, 높아질대로 높아진 작금의 기준이나 그룹 전작의 퀄리티에 비한다면 사운드는 차별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다 오히려 '평범한'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본 앨범은 대부분의 아이돌 음악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만의 세계를, 그것도 싱글 단위가 아닌 앨범 단위로 구축하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비범함'이 빛난다.


 

RED + VELVET: 완성된 비정형의 주체

 

레드벨벳이 자기만의 세계를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더 이상 주체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아이돌 음악에서 노래 속 주인공에 동화되어 왔다. 소년소녀, 청소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성숙한 나, 진정으로 나다운 나. 그와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노래는 주로 자기감정을 내비치고, 순종적인 혹은 적극적인 사랑을 드러내거나, 당당한 자기를 과시하는 도구가 되었다. 자아나 사랑 얘기를 벗어나 꿈을 찾고 행복을 추구하기도 했고, 주체가 특정한 태도나 행동를 취함으로써 구체적인 스토리를 낳기도 하였다. 그러나, 레드벨벳은 데뷔 후 꾸준히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여왔던 덕에, 『The Red Summer』에서는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주체의 스토리를 뛰어넘어 오롯이 자기 콘셉트와 구체적인 세계를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레드벨벳의 정체성은 완성도 높은 '비정형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레드벨벳의 첫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미니앨범의 제목은 각기 『Ice Cream Cake』(2015), 『Russican Roulette』(2016), 『Rookie』(2017)으로  수록된 타이틀곡의 제목을 고스란히 앨범 타이틀로 차용했다. 앨범 타이틀을 수록곡에서 따오지 않은 때는, 첫 번째 정규앨범 『The Red』(2015)과 두 번째 미니앨범 『The Velvet』(2016) 뿐인데, 두 차례 모두 레드벨벳의 그룹명을 각기 레드 콘셉트와 벨벳 콘셉트의 두 가지 정체성으로 나누어 제목으로 차용한 것으로 양가적인 그룹의 음악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역할을 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앞서 앨범 타이틀에 "Red"나 "Velvet"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앨범은 모두 이분된 레드벨벳의 정체성으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레드벨벳은 소녀(「행복 : Happiness」(2014))로 출발했지만 이내 숙녀(「Be Natural」(2014))가 되었고, 그 사이 경계적인 청소년(「Ice Cream Cake」, 「Russian Roulette」)의 모습이나 인형 같은 중성성(「Dumb Dumb」, 「Rookie」 )을 내비치기도 했다. "Red"와 "Velvet" 사이 소녀와 숙녀 사이 그와 같은 앨범의 색과 주체의 콘셉트가 레드벨벳의 정체성을 흐렸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강화했다. 소녀에서 숙녀로 확실한 선형적 성장을 거친 소녀시대와 불가해한 소녀에서 SM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대표하는 웰메이드 아티스트로 성장한 에프엑스라는 두 언니 그룹들 사이로 알듯 모를듯한 난해함을 상징하는 소녀로 남은 레드벨벳의 정체성은, 오히려 앞선 정체성을 모조리 끌어안는 여집합이자 또 하나의 합집합으로서 결코 다른 아이돌이 넘볼 수 없는 경계적 보편의 색깔로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


 

THE RED + SUMMER : 다채로운 감각의 세계

 

다 된 밥이라고 할 수 있는 레드벨벳이 모처럼 나름의 분명한 콘셉트('Red')까지 가지고 그것을 깨뜨리지 않은 채 뚜렷한 주제('Summer')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The Red Summer』는 이미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나머지 절반이 적당히 아무렇게나 채워진 것은 아니다. 미니앨범 5곡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통일된 맥락의 다채로운 공감각적 감상으로 그만의 세계를 묘사되고 있다. 이때 그려지는 세계는 당연하게도 앨범의 타이틀 'Red Summer'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목에서 방점이 찍힌 것이 'Summer'가 아닌 'Red' 라는 점과 'Red'의 의미가 마치 레드벨벳의 그것처럼 구체적인 감각이 아닌 '객관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 여름을 겨냥했던 무수히 많은 아이돌 음악들을 기억한다. 그것은 때로 더운 여름의 계절감에 착안하여 빠르고 신나는 비트의 음악을 내세우거나, 직설적인 가사로 더위를 표현하기도 했다. 전자의 예로 씨스타의 노래들이 있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에프엑스의 「Hot Summer」(2011)가 있다. 인피니트의 「그 해 여름」(2016)처럼 여름의 기억을 연상한 곡이 있는가 하면, 피에스타가 아이유와 함께 한 「달빛 바다」(2012), 티아라와 다비치가 함께 했던 「비키니 (feat. 스컬)」(2013)처럼 여름과 관련된 시감각적 풍경들을 묘사한 노래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레드벨벳이 그리는 여름은 이와 같은 전례와는 달리 조금 비전형적이다. 「빨간 맛」, 「여름빛」, 「바다가 들려」에서 '여름'이라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빨간 맛」 가사의 이미지는 여름 아닌 '과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여름빛」이 그려내는 여름의 풍경은 시각적 감각 외에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름밤의 기억을 그린 「바다가 들려」 속 표현도 마찬가지다. 「You Better Know」나 「Zoo」는 아예 여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연관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레드벨벳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뻔한 공통의 여름이 아닌, 레드벨벳이 이미 보여준 여러 모습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아우르는 귀납적 개념으로써 비정형의 'The Red'임을 알 수 있다.

 

곧 'The Red Summer'의 'Red'는 일반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전형적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레드벨벳만의 고유한 'The Red'다. "뜨겁다"는 의미의 원초적 의미의 빨강이 아닌 여름의 계절감을 역으로 활용하는 가볍고 시원한 이미지로서의 빨강이라서 더욱 비전형적이다. "빨간 건 현아" 따위의 억지스런 언어유희나(「빨개요」(2014)) 지오디의 「하늘색 풍선」(2000), 신화의 「오렌지」(2016)처럼 한정된 상징(팬)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과일'이라는 서브 콘셉트를 중첩했으며, 그 동안 레드벨벳이 본래의 빨간색 상징 못지 않게 자주 사용해온 블루 컬러를 이번에도 역시 무대의상과 같은 부분에 곳곳마다 배치해 원하는 이미지를 안정적으로 보완하였다. 서로 전혀 다른 보색의 색채 조합이 "물리적으로 좋은 배합을 이룬다."는 이론이 인지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The Red Summer'의 감각은 꽤나 복합적이거나 다중적이기도 하다.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첫 트랙인 「빨간 맛」에서의 "빨간 맛"이 대표적이다. 색감과 계절감, 시각과 미각이라는 서로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양태의 지각 경험을 하나의 표현으로 쓰고 있다. 공감각이라고 부르는 이와 같은 감각은 시적 표현으로 흔히 쓰이는 것과 다르게 실제로는 전체 인구 중 극히 일부만 느낄 수 있다는 감각이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공감각적 표현, 색채로서 잘 표현되는 공감각의 인지 개념을 앨범의 핵심 콘셉트로 당당히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한 개념어를 감각어와 연결 짓는 표현, 비유와 상징, 시에서 쓰일 법한 비시각적 표현을 본 앨범에서 유독 빈번하게 쓰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가사의 주제가 노래의 주체와 ‘너’가 그리는 달콤한 사랑의 세계로 합치되고 있다.

 

ex 1.
「빨간 맛」의 "빨간 맛", 「You Better Know」의 "포근하게 널 감싸줄 나의 이 노래", "향기롭게 불어오는 나의 이 노래", 「여름빛」의 "간지러운 너의 목소린 초록빛", "두발 아래 스친 모래는 레몬빛",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푸른빛" 등이 대표적인 공감각적 표현이다. 앨범 메인자켓에서 여러 과일들로 멤버 한 명, 한 명을 대변하면서도 유난히 하단의 보라색을 강조한 것은 알파벳 'R'과 연결되는 색-자소 간 공감각을 유발한다. 한편 색-청의 공감각이 가장 빈번한 연합인 것과 앨범 전체의 주제가 계절감과 연결되는 것을 떠올릴 때 본 앨범의 타이틀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여름빛」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 2.
「빨간 맛」 의 "여름 그 맛", "빨간 네 사랑의 색깔 내가 가질래", "사랑에 그을려 우린 RED", "너의 색깔로 날 물들여줘", "여름의 너", 「여름빛」 의 "여름빛", 「바다가 들려」의 "여름이 들린다", "바다가 들려" 등은 개념어와 감각어의 구분을 없앤 표현이다.

 

ex 3.
그 밖에 "넌 달콤한 Drink 모히또" 는 감각적인 비유,  "귓 속은 쨍 코가 맹", "아이스크림 같이 이러다 녹을지 몰라" 등은 비시각적인 표현, "새벽이 잠을 깨우고", "꿈이 널 부를 때" 등은 의인화된 표현이다.

 

 

 

THE RED WORLD : 빨간 맛, 익숙한 여름 그 맛

 

「빨간 맛」의 첫 구절 "빨간 맛~"은 『The Red』 의 수록곡 「Cool World」의 후렴구 "Cool~ World"와 같은 음정으로 시작된다. 어디에서도 낯선 '내 밖의 세상'을 벗어나 나만을 위한 'Cool World'를 찾고 느끼라는 「Cool World」의 진지한 태도는 「빨간 맛」의 가벼운 기조와 사뭇 다르지만, 적어도 주제와 가사를 통해 레드벨벳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리려 했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앨범의 아트워크가 숲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총천연 원색을 활용한다는 점, 「빨간 맛」이 멤버별 캐릭터를 달리 한 색상 이미지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점, 「Zoo」의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과 이국적인 콘셉트 등은 처음으로 돌아가 그들의 데뷔싱글이었던 「행복 : Happiness」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반대로 파워풀하고 큰 몸동작 대신 업템포에 대조되는 귀엽고 가벼운 안무를 택한 것은 「Russian Roulette」과 「Rookie」를 떠올리게 한다.

 

익숙한 요소들의 조합, 그러나 새로운 감각과 일관된 주제로 통일된 가사. 이쯤 되면 레드벨벳이 착실히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영진의 「행복 : Happiness」과 「Be Natural」로 출발해 「Ice Cream Cake」, 「Dumb Dumb」, 「Russian Roulette」 등 서지음, 조윤경 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레드벨벳 가사의 정신은, 바로 직전 앨범 『Rookie』에서 그 이름이 등장한 이스란, JQ를 중심으로 보다 견고한 그들만의 세계를 부르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결론은 사실이 아닌 당사자도 모르는 분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해석의 여지가 바로 레드벨벳의 세계가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빨간 맛 : Red Flavor
    켄지
    Daniel Caesar, Ludwig Lindell
    Caesar & Loui
  • 2
    You Better Know
    이스란, 제이큐, 최지혜
    Becky Jerams, Pontus Persson, Kanata Okajima
    Pontus Persson
  • 3
    Zoo
    이스란
    LDN Noise, Courtney Woolsey, Alice Penrose
    LDN Noise
  • 4
    여름빛 : Mojito
    제이큐, 현지원
    Johannes Joergensen, Lars Halvor Jensen, Marissa Jack
    Johannes Joergensen, Lars Halvor Jensen
  • 5
    바다가 들려 : Hear The Sea
    황현
    황현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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