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자연주의적 증강현실

김소라 『비가 올 징조』
1,10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8.10
Volume 1
장르 국악
레이블 트레드박스, 비트프로덕션
유통사 에스피뮤직
공식사이트 [Click]
순수 전통 악곡이 아닌 창작 국악 혹은 국악이 가미된 크로스오버 음악 등 범-국악 계열의 음악들은 대중성과 장르성에 국악의 페이소스를 어떻게 섞을지 늘 고민한다. 이 같은 고심과 실험의 강박은 이미 성공한 전례를 안전하게 답습하거나, 신선한 악기 편성이나 새로운 장르성의 접목과 같은 물리적 변화에 천착하는 결과를 낳기 일쑤다.

김소라의 본 앨범은 다행히 현실의 함정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나 있다. 전통의 레퍼런스는 물론 가락과 기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온 기존 장구 연주의 미학에도 매이지 않는다. 리드 악기라는 과시욕을 버리고, 앨범이 의도하는 전체적인 서사와 소리의 종합이 그리는 구상에 집중한 결과, 작금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온전한 창작국악 앨범이자 대중적인 크로스오버 음악으로서 높은 가치를 획득했다.
 

비의, 비에 의한, 비를 위한

국악에서 장구의 소리는 흔히 ‘비’에 비유된다. 장구가 판소리를 제외한 국악 대부분의 장르에서 다른 악기들을 떠받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동시에 양손으로 쉬지 않고 연주되어 마치 쉬지 않고 퍼붓는 비처럼 그 존재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편과 채편 각 위치에 따른 다양한 울림에 따라 맑기도 둔탁하기도 한 장구의 소리는, 여러 종류의 지면과 맞부딪는 빗방울의 그것과 유사하게 들리기도 한다. 앨범은 이 흔한 공통의 인식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완성도 높게 구현한다.

『비가 올 징조』는 오롯이 하나의 주제와 서사를 관통하는 콘셉트 앨범이다. 주제는 타이틀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바로 ‘비’다. 그리고 이 비는 적당한 상상에 의해 즉흥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닌 치밀한 계획과 묘사에 의해 그려진다. 앨범은 비가 오기 전의 세상을 그리는 첫 곡 「노마딕」으로부터 출발해, 비 내리는 풍경의 「똑똑똑」을 거쳐 비가 그친 후의 세상인 「비 그치다」로 끝을 맺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충실한 스토리텔링 덕에 『비가 올 징조』는 트랙 순서대로 들을 때 그 가치가 진정으로 빛난다.

잘 짜인 서사로서 시간적 흐름에 따라 나열된 6개의 트랙은 단 한 곡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앨범은 '장구의 세계화'를 천명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지만, 음악 자체는 상업적인 논리나 목표 지향적인 명분에서 벗어나 오롯이 통일된 주제와 맥락을 구현하는 데 힘쓴다. 악기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만을 담당하며, 심지어 김소라의 장구마저 앨범의 주제를 관철하는 도구일 따름이다.
 
 
리얼리스틱 레이니즘

앨범의 악기 구성은 사실 단출하다. 크게 장구, 꽹과리, 징 등의 타악기와 피리, 가야금 등의 선율악기 몇 개로 추릴 수 있다. 적은 수이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악기들을 통해 앨범의 구상은 거대한 자연의 현현으로써 무척이나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완성된다.

예를 들어 첫 트랙 「노마딕」은 비가 오기 전 흔히 느낄 수 있는 전조로써, 습윤한 공기의 냄새, 부는 바람이 주는 청각, 촉감 등 여러 감각들을 종과 징, 정주 사운드만으로 표현한다. 맑은 공간감과 여운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악기 고유의 소리와 각 악기가 연쇄적으로 중첩하여 입체적인 거리감을 남기는 곡의 구상은, 이 싱글이 타악기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자랑한다.

비 내리는 순간을 그리는 「똑똑똑」은 징, 장구, 꽹과리 타악기들의 긴장과 이완의 반복을 통해 놀라운 사운드의 종합을 이룬다. 작고 미세한 울림으로부터 출발해 절묘하게 패턴을 반복하고, 섬세한 셈여림으로 긴장을 점차 증폭하더니 결국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곡의 서사와 표현,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된 디테일한 관찰력은 전통 타악곡은 물론 현대의 사물놀이나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모사 너머의 서정

앨범은 ‘자연의 모사’라는 고전적인 예술 가치를 따른다. 그렇다고 그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다. 여느 국악기보다도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피리와 가야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단지 타악의 리드미컬한 구상만으로는 얻기 힘든 화려한 추상과 극적인 정서를 부가적으로 획득하는 식이다.

「구름은 달을 따라」는 장구와 피리의 쫓고 쫓기는 호흡이 드라마틱한 감상을 낳는 곡이다. 김소라는 밤하늘 달무리와 주변의 구름을 두고 ‘외로움’이라는 새로운 서정을 부여했다. 이는 1차적으로 구름과 달이라는 대상에 부여된 정서지만 더 나아가 이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보다 격한 감응으로 발전한다. 근 리듬을 떠받치는 장구의 장단이 서서히 감정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점차 치닫는 템포와 함께 피리는 짧고 굵게 화려한 시김새를 얹었다.

앨범 타이틀이자 유일한 독주곡 「비가 올 징조」의 경우 특정한 장단과 주법의 차용을 중시하고 이를 전시하는 방식이 아닌, 자유로이 장단과 주법을 넘나들며 장대비의 전조로써 점차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의 소리와 풍경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시적 표현 방식을 취한다. 이 곡의 여백미는 직전 트랙 「밤을 삼킨 별」의 별을 상징하는 가야금의 영롱한 선율과 대조되어 상상력을 더욱 집중시킨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기교 위주의 타악 연주와 맥락과 서정이 가미된 김소라의 연주를 비교하여, 각각 리스트와 쇼팽으로 비유했다. 쉽게 와닿는 평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실감나고 정밀한 구상과 정서적인 추상을 동시에 실현해내는 이 앨범의 미학을,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현실과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했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접점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는 사진의 출현 및 과학적 산물 이후의 난해한 추상이나 머나먼 초현실로 가기 직전, 최후의 인간미를 갖추었던 예술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앨범에서 마치 그처럼 한 장구 연주자의 특수한 미학이 아니라 국악이 담을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되새긴다.
 

Credit

[Musician]
김소라 : 장구
현승훈 : 퍼커션
임지혜 : 가야금
오노을 : 피리

[Staff]
Producer : 김소라
Director : 김주
Mixing & Mastering : 손홍희@스튜디오파주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노마딕
    -
    김소라
    김소라
  • 2
    구름은 달을 따라
    -
    김소라, 오노을
    김소라, 오노을
  • 3
    밤을 삼킨 별
    -
    김소라, 임지혜
    김소라, 임지혜
  • 4
    비가 올 징조
    -
    김소라
    김소라
  • 5
    똑똑똑
    -
    김소라, 현승훈
    김소라, 현승훈
  • 6
    비 그치다
    -
    김소라, 현승훈, 임지혜, 오노을
    김소라, 현승훈, 임지혜, 오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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